은평 소방서만 전달 10여건 신고 아파트 단지·공원 등에 지속 출몰 “산책 중 부스럭 소리에도 화들짝” 지자체, 포획틀·펜스 설치 대응만 “서식지·동선 분리 근본대책 필요”
“2∼3m 크기 멧돼지가 출몰했는데 인도 바로 옆이라 깜짝 놀랐어요.”
지난달 24일 오후 8시, 서울 은평구 진관동 한 아파트 단지에서 대형 멧돼지 한 마리를 목격했다는 신고가 접수됐다. 다행히 인명 피해는 없었지만 주민들은 놀란 가슴을 쓸어내렸다.
서울 은평소방서는 마취총을 들고 출동했지만 멧돼지가 산속으로 도망치는 바람에 “추후 발견하면 신고해달라”고 한 뒤 철수했다. 소방 관계자는 “멧돼지가 자주 출몰하는 늦가을과 겨울에는 3일에 한 번꼴로 신고받는다”며 “봄은 멧돼지가 자주 출몰하는 시기가 아닌데 최근 신고가 잇따르고 있다”고 했다. 은평소방서에만 지난달 멧돼지 관련 신고가 10여건 접수됐다.
이 이미지는 기사의 이해를 돕기 위해 생성형 AI로 제작된 가상 연출 컷입니다. 실제 인물이나 장소와는 관련이 없음을 밝힙니다. 사진=구글 gemini 생성 이미지
북한산에 서식하는 멧돼지가 인근 아파트 단지 등 주거지역과 공원 등에 지속 출몰하면서 인근 주민들의 불안감이 커지고 있다.
불광동 북한산 둘레길을 산책하던 정은경(66)씨는 2일 “둘레길 등산객들이 음식을 버리거나 먹이를 나눠주는지 멧돼지와 들고양이, 들개가 모인다”며 “혼자 다닐 때 부스럭 소리가 나면 혹시 멧돼지일까 봐 깜짝 놀란다”고 호소했다. 근처 한 경로당에서 만난 한성현(75)씨도 “지난해 봄 은평경찰서 뒤쪽 불광사 가는 길에 멧돼지가 떼 지어 다니는 것을 봤다”며 “우리끼리 ‘산책하며 봤다’고 이야기 나눴지만 일이 번거로워질까 봐 경찰 신고는 하지 않았다”고 말했다.
북한산을 둘러싼 서울 강북 지역은 멧돼지 주요 출몰지로 꼽힌다.
기후에너지환경부 소속 국립생물자원관은 2023년부터 무인카메라와 드론을 통해 관찰한 결과 서울 도봉구, 강북구, 성북구, 종로구, 서대문구, 은평구 일대를 멧돼지 주요 출몰 지점으로 지목했다.
은평구는 서울 25개 자치구 중 도심지역 출몰이 가장 많은 지역으로 꼽힌다. 서울시소방재난본부에 따르면 2022∼2024년 서울 도심 멧돼지 안전조치 출동 건수는 1479건인데 은평구 접수 신고가 16.4%(241건)로 1위였다. 종로구(225건), 중랑구(194건), 강북구(157건)가 뒤를 이었다.
지속적인 멧돼지 출몰에도 자치구 차원의 추가적인 대책은 마땅치 않다. 은평구 관계자는 “멧돼지 포획틀 설치와 펜스 운영 등 기존 시설 관리 위주로 대응하고 있다”고 밝혔지만 시설 유지 외 추가적인 사업 계획이나 근본 대응책 마련은 없다고 했다.
전문가들은 포획틀 설치, 총기 사살 등의 대책을 넘어 상생할 수 있는 대책 마련이 필요하다고 입을 모았다.
최인수 동물자유연대 위기동물대응팀 활동가는 “도심지 개발로 인한 서식지 침범이나 먹이가 없어서 멧돼지가 도심으로 내려오는 것”이라고 진단했다. 그러면서 “포획틀 설치나 포수를 부르는 방식은 시민 안전을 위해 필요하지만 멧돼지가 출몰한 이후 대응하는 ‘수동적 포획’”이라며 “공존을 위해선 야생동물의 서식지를 고려해 개발 지역을 선정하는 등 고민이 필요하다”고 전했다.
인공지능(AI) 기반 ‘멧돼지 출몰 예측 지도’를 구축한 정승규 국립생물자원관 연구사는 “멧돼지의 이동 통로 위로 사람의 동선을 분리하는 데크길 조성과 유도 펜스 설치 등 인간과의 접점을 물리적으로 차단하는 데이터 기반 공존 인프라 구축이 필요하다”고 제언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