삼성전자가 지난해 출시한 일부 구형 스마트폰의 출고가를 전격 인상했다. 신형이 아닌 구형 제품의 출고가를 올리는 것은 스마트폰 시장에선 매우 드문 현상이다. 이례적인 가격 인상 배경에는 인공지능(AI) 열풍이 있다. AI 열풍에 메모리 반도체 수요가 폭증하고 스마트폰과 PC에 들어가는 핵심 부품인 D램 가격이 치솟자, 원가부담을 이기지 못한 삼성전자가 구형 모델마저 가격을 올린 것이다. 전자업계에서는 D램 가격 상승세가 꺾이지 않고 있는 만큼 칩 가격 상승이 전자제품 가격 상승을 촉발하는 ‘칩플레이션’ 현상이 심화할 것으로 본다.
2일 전자업계에 따르면, 삼성전자는 지난해 출시한 갤럭시S25 엣지, 갤럭시Z 폴드7, 갤럭시Z 플립7의 일부 모델 출고가를 인상했다. 갤럭시S25 엣지 512GB 모델은 163만9000원에서 174만9000원으로 11만원 올랐다. 갤럭시Z 폴드7은 512GB 모델이 253만7700원에서 263만2300원으로 9만4600원, 1TB 모델은 293만3700원에서 312만7300원으로 19만3600원 인상됐다. 갤럭시Z 플립7 512GB 모델은 164만3400원에서 173만8000원으로 9만4600원 뛰었다.
일반적으로 스마트폰 출고가는 출시 직후가 가장 비싸다. 이후 후속 모델이 나올 때쯤 인기가 떨어진 기존 모델 판매 촉진을 위해 출고가를 내리는 것이 관행이었다. 이번처럼 출시 시점이 1년이 다 돼가는 모델의 출고가를 인상하는 것은 전례가 드물다. 한 전자업계 관계자는 “(삼성전자가) 최근 10년 내 구형 모델의 출고가를 올린 사례는 없는 것으로 안다”고 말했다.
삼성전자의 구형 모델 가격 인상은 메모리 반도체 가격 급등 때문이다. AI 산업 확장으로 D램과 낸드, HBM을 포함한 메모리 칩의 수요가 급격히 늘었다. 삼성전자와 SK하이닉스, 마이크론 메모리 3사가 생산 역량을 총동원해 칩을 만들고 있지만, 시장 수요를 따라가지 못하고 있다. 공급이 달리면서 메모리 반도체 칩 가격이 크게 올랐다. 스마트폰에 들어가는 D램 가격도 예외는 아니다. 시장분석업체 D램익스체인지 조사 결과 범용 D램 DDR4 8GB 단가는 지난해 2월 2.1달러에서 올해 3월 13달러로 급등했다. 스마트폰 제조 원가에서 메모리가 차지하는 비중은 약 20%에 달한다. 제조비용의 5분의 1을 차지하는 칩 가격이 6배 넘게 오르자, 부품 값 상승분을 제품 가격에 반영하지 않고서는 수익성을 유지하기 어려운 구조가 됐다. 삼성전자 관계자는 “환율 상승과 메모리 반도체 등 핵심 부품 가격 폭등으로 제품 가격 인상이 불가피했다”고 배경을 전했다.
업계에선 추후 스마트폰과 노트북, PC, 비디오 게임기 같은 전자제품의 가격이 더 오를 것으로 전망한다. 핵심 부품인 D램 가격 상승세가 꺾일 기미가 보이지 않아서다. D램익스체인지는 올해 2분기 PC용 D램 계약가격이 전 분기 대비 40∼45% 추가 상승할 것으로 예상했다. 여기에 더해 미국·이란 전쟁 여파로 유가 급등과 고환율까지 겹쳤다. 고물가˙고비용˙고환율의 삼중고로 제조사가 더 이상 버티기 힘든 상황이다. 다른 전자업계 관계자는 “전자제품은 저렴한 가격으로 부품을 사 와서, 최대한 비용을 아껴 조립해야 수익이 난다”며 “칩플레이션에 유가폭등, 환율 상승까지 겹쳐 업체들로선 가격 인상을 고려할 수밖에 없을 것”이라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