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동 전쟁 여파로 원·달러 환율이 일평균 11원 넘게 널뛰는 높은 변동성을 보이면서 지난달 외환 시장 거래량이 역대 최대를 기록했다. 외환 당국이 보유한 달러를 활용해 급등하는 환율 방어에 나선 영향으로 우리나라 외환보유액은 40억달러가량 줄어 11개월 만에 최대폭으로 하락했다. 한국은 2000년 이후 처음으로 외환보유액 순위가 전 세계 10위권 밖으로 밀려났다.
5일 연합인포맥스에 따르면 지난달 서울 외환시장에서 원·달러 현물환 거래량(서울외국환중개·한국자금중개 합산, 주간 거래 기준)은 일평균 139억1900만달러로 집계됐다. 외환 거래량은 2000년대 들어서 20여년간 하루 평균 60억∼90억달러에서 움직이다가 2023년에 105억9700만달러로 처음 100억달러를 넘었다. 이후 100억∼110억달러선을 유지했는데 지난달에는 140억달러(약 21조원)에 육박했다.
지난달 거래량 급증은 중동사태로 높아진 환율 변동성에 대한 대응으로 풀이된다. 환율이 출렁일 때는 환차익을 노린 거래와 환 리스크를 줄이려는 헤지 물량이 늘며 거래량이 증가한다.
한은 관계자는 “이란 전쟁에 따른 달러 강세로 기타 통화 외화 자산의 달러화 환산액이 줄어들었고, 국민연금과 외환 스와프 등 외환시장 안정화 조치도 함께 실행되면서 외환보유액이 줄었다”고 설명했다. 환율이 오르면 시장 안정화를 위해 외환 당국은 보유한 달러를 매도할 수 있다. 국민연금이 해외 투자를 할 때 한은과 맺은 외환 스와프 계약을 통해 달러를 공급받는 과정에서도 외환보유액이 줄어들게 된다.
한국의 외환보유액 규모는 지난 2월 말 기준(4276억달러)으로 세계 12위 수준으로 집계됐다. 지난 1월 말 10위에서 한 달 사이 두 계단 떨어졌다. 한은이 국가별 통계를 집계한 2000년대 이후 10위권 밖으로 밀린 것은 이번이 처음이다.
우리나라를 제치고 8, 9위로 각각 올라선 이탈리아와 프랑스는 금값 상승 효과를 본 것으로 파악된다. 두 나라는 세계 금 보유량 3위·4위 국가로 외환보유액 산정 때 금을 시장가격으로 평가해 반영한다. 반면 한국은 금 보유액 평가 시 매입 가격을 기준으로 잡아 금값 상승이 외환보유액 증가로 이어지지 않는다.
다만 우리나라의 절대적 달러 보유액이 많아 당장 위기를 걱정해야 할 수준은 아니라는 분석도 있다. 최근처럼 트럼프 대통령의 말 한마디에 시장 전체가 출렁거리는 극도의 불확실성 장세에서는 달러를 풀어 환율을 진정시키는 효과가 사실상 크지 않다는 지적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