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정기의호모커뮤니쿠스] ‘재래식(?) 언론’ 유감

‘재래식 언론’이라는 용어가 출몰 중이다. 유시민 작가가 작명한 이후에 지명도를 높이며 세를 확장하는 듯싶다. 학계 용어가 아닌 사적 용어라 명료하게 정의하기는 어렵다. 느슨하게 설명하면 자신의 마음에 들지 않는 콘텐츠를 생산하는 언론을 통칭하는 것으로 생각된다. 좀 엄밀하게는 디지털 미디어 기술 체제 이전의 정보 생산 가공 유통 양식을 지닌 신문, 지상파 텔레비전 방송, 종합편성채널을 포함하는 전통 미디어, 올드 미디어, 레거시 미디어를 의미하는 듯싶다.

재래식이라는 용어 자체가 늘 부정적인 건 아니지만 언론 앞에 붙으면 재래식 화장실처럼 이미지가 긍정적이지 않다. 이제는 불편하고 적절하지 않아서 필요하지 않은 ‘구식’이라는 뉘앙스를 풍긴다. 예전부터 전해오는 방식이라는 뜻의 외연적·명시적 의미(denotation)보다는 고치거나 버려야 한다는 뜻의 내포적·함축적 의미(connotation)가 강조되니 구식인 전통 미디어가 부정되고 신식(?)인 디지털 미디어가 우대된다.



언론의 최우선적 사명은 넓디넓은 세상에서 일어나고 있는 어떤 사실을 알리고 공론장에 부치는 것이다. 디지털 미디어든 전통 미디어든 사실에 근거하는 보도와 논평을 잘하는 게 좋은 언론이다. 그 점에서 신식이든 구식이든 미디어는 대안적(alternative)이기보다는 각자 나름의 특성에 따른 보완적(complementary) 존재이다.

정보의 완결성, 공정성, 균형성을 고려하면 구식(?) 미디어의 존재감은 훨씬 중요하다. 레거시 미디어가 없다면 세상의 사실성은 더욱 협소해지고 파편화되고 분열적일 것이다.

예를 들어 ‘신식’ 언론의 선두주자가 된 유투브 방송을 보자. 전한길 방송은 어이없는 ‘윤 어게인’의 보루가 되어 미래로 가려는 대한민국의 발목을 잡는다. 김어준 방송은 ‘안 되면 말고 식’의 무책임한 방식에 상투적이다.

세계의 언론 발달사는 신문 독주, 신문과 지상파방송의 경쟁, 방송의 우세 시기를 거쳐 뉴미디어의 시기를 거치고 있다. 우리나라도 신문과 방송의 시대를 지나 다매체 다채널, 초기 인터넷, 포털사이트, 소셜미디어, AI 미디어(‘한국의 언론 신뢰도’ 김위근·안수찬·백영민)라는 뉴미디어 시대를 맞으며 독자, 시청자, 이용자, 수용자를 유치하려고 각축하고 있다.

이미 경쟁에서 정처 없이 밀리고 있는 전통 미디어를 재래식 언론, 기레기 언론으로 통째로 비하하지 말고, 객관적인 시시비비의 비판을 통해 세상의 사실성을 알리려는 노력에 힘을 보태줄 일이다.

 

김정기 한양대 명예교수·언론학