검찰의 쌍방울그룹 대북송금 사건 수사 과정에서 불거진 ‘연어·술 파티 진술 회유’ 의혹과 관련해 최근 국정조사와 잇단 녹음파일 공개로 진실공방이 거세게 이어지면서 ‘유죄협상제도(플리바게닝)’가 덩달아 주목받고 있다. 플리바게닝이란 피고인이 유죄를 인정하거나 다른 사람에 대해 증언을 하는 대가로 검찰 측이 형을 낮추거나 가벼운 죄목으로 다루기로 거래하는 제도로, 현재 우리 법제에선 허용되지 않고 있다.
5일 판결문 검색 서비스 엘박스를 통해 플리바게닝이 언급된 판결문 14건을 분석한 결과, 재판부는 플리바게닝에 대해 법적 근거가 없다고 판단하면서도 그 행위 자체로는 처벌하지 않는 것으로 파악됐다.
수원지법은 2021년 한 지방공기업 사장이 경기 안산시장을 상대로 낸 해임처분취소 소송에서 “현행 법령상 플리바게닝에 관한 명시적인 근거 규정은 없다”면서도 “플리바게닝은 감사기법 중에 하나이므로 명시적인 근거 규정이 없다고 하더라도 그 자체가 위법하다고 보기는 어렵다”고 판시했다.
A 변호사는 2013년 회사에 대한 2차 압수수색으로 위기감을 느끼던 전·현직 경영진을 상대로 ‘별건 범죄정보를 수십억원을 주고 사서 수사 검사에게 제공하고, 이를 통해 수사 중단이나 축소 등 선처를 받게 해주겠다’며 협상했다. 이후 수사 검사에게 제공할 범죄정보 구매비용 명목으로 34억3600만원의 변호사 보수약정 등을 체결했다.
서울중앙지법은 “설령 범죄정보의 제공에 따른 협상이 수사 실무상 관행적으로 있었다고 하더라도, 협상의 대상인 범죄정보의 취득에 있어 금전 등의 대가가 결부되는 것은 간접적으로 사법작용의 불가매수성 내지 대가무관성을 훼손하는 것으로서 허용될 수 없다”며 A 변호사의 행위를 유죄로 판결했다.
현행법에선 플리바게닝을 허용하지 않고 있지만, 지난해 내란 특별검사법 개정 당시 ‘형벌 등의 감경 또는 면제’ 조항이 명시되는 등 유사한 제도가 제한적으로 허용된 경우는 있었다. 내란 특검법의 해당 조항은 자수한 경우나 타인을 고발 또는 타인의 범행을 방해한 경우 등에는 형을 감경하거나 면제할 수 있다고 규정하고 있다.
법조계에서는 플리바게닝으로 인해 진실이 왜곡될 수 있다는 우려의 목소리도 나온다. 수도권의 한 부장판사는 “자기 범죄를 자백하면 형량이 더 가벼운 죄명으로 기소하는 식으로 플리바게닝을 할 수는 있어도, 타인 범죄를 진술하면 형량을 깎아주겠다는 식의 플리바게닝은 허위진술 문제를 야기할 수 있다”고 짚었다.
한 부장판사 출신 변호사는 “플리바게닝은 도의적으로 적절하다고 볼 수는 없을 것 같다”며 “그간 검찰은 마치 그림을 그려놓고 타깃을 맞춰 증거를 만들려고 하는 경향이 있었다”고 지적했다.
반면 수사기관에서는 범죄 대응을 위해 플리바게닝이 도입될 필요가 있다는 주장이 나온다. 검찰의 한 관계자는 “마약 사건의 경우 검사나 수사관이 먼저 플리바게닝을 얘기하는 경우도 있고, 특히 마약사범들이 ‘다른 사건을 제보할 게 있다’며 ‘수사에 협조했으니 대신 구형을 낮춰 달라’고 요구할 때도 있다”며 “이런 경우는 검찰이 법원에 형량을 낮춰 달라고 요청하기도 한다”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