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류를 다시 낳는 ‘어머니 부처’의 탄현
인류의 정신사는 끊임없는 구원과 깨달음의 여정이었다. 서구 문명이 성서를 통해 ‘하늘부모님’의 뜻을 찾아왔고, 유교 문명이 주역과 사서를 통해 ‘천도(天道)’를 탐구했다면, 불교는 만물이 지닌 불성(佛性)을 깨우치고 자비로써 고통받는 중생을 제도하는 길을 제시해 왔다. 하지만 불교 2,500년 역사 속에서도 해결되지 않은 난제가 있었으니, 그것은 바로 ‘여성도 부처가 될 수 있는가’라는 근원적인 물음이었다. 이제 우리는 불교 경전의 깊은 층위에 감춰진 ‘여성 구원자’의 코드를 통해, 문명사적 대전환의 해답을 찾아보고자 한다.
◆ 부성적 수행의 한계와 여성 성불의 난제
초기 불교를 비롯한 전통적인 교리 안에는 여성이 성불하는 데 다섯 가지 장애가 있다는 이른바 ‘오장(五障)’설이 존재해 왔다. 여성은 그 몸으로 범천(梵天), 제석(帝釋), 마왕(魔王), 전륜성왕(轉輪聖王), 그리고 부처(佛)가 될 수 없다는 가부장적 한계였다. 이는 당시 인도 사회의 문화적 배경이 투영된 결과이기도 했으나, 섭리적 관점에서 보면 인류 문명이 여전히 ‘부성(父性) 중심’의 질서 속에 머물러 있었음을 방증하는 것이기도 하다.
지난 연재에서 다뤘듯, 아버지만으로는 자녀를 온전히 낳을 수 없다. 깨달음의 세계 또한 마찬가지다. 독생자(獨生子) 예수 그리스도가 진리의 빛으로 어둠을 가르고 개척하는 ‘아버지의 역사’를 담당했다면, 그 진리가 생명으로 안착되어 모든 중생을 품어 안으려면 반드시 ‘어머니의 역사’가 결합되어야 한다. 불교가 지향하는 최고의 경지인 성불(成佛)이 단순히 개인의 해탈에 머물지 않고 지상에 평화로운 불국토(佛國土)를 건설하는 일이라면, 거기에는 반드시 생명을 잉태하고 양육하는 모성적 신성의 실체가 필요하기 때문이다.
◆ 대승불교의 파격, ‘어머니의 지혜’를 깨우다
이러한 시대적·문화적 장벽을 깨뜨린 것이 바로 대승불교(大乘佛敎)의 출현이다. 대승(大乘)은 말 그대로 ‘모든 중생을 태우는 큰 수레’를 의미한다. 이 수레가 움직이는 동력은 지혜(Prajna)와 자비(Karuna)라는 두 바퀴다. 흥미로운 점은 불교 철학에서 지혜를 상징하는 ‘반야(般若)’가 흔히 ‘불모(佛母)’, 즉 부처를 낳는 어머니로 묘사된다는 사실이다.
지혜는 날카로운 칼날처럼 시비(是非)를 가리는 남성적 이성이 아니라, 만물을 있는 그대로 수용하고 생명을 살려내는 모성적 직관을 지향한다. 불교 경전들이 곳곳에서 여성 구도자들의 활약을 기록하고, 미래의 부처인 미륵(Maitreya)을 자비로운 어머니의 형상과 연결시키는 이유는 무엇일까? 그것은 인류 구원의 마침표가 ‘심판과 정죄’가 아닌 ‘용서와 포용’을 본질로 하는 모성적 구원을 통해 찍혀야 함을 직관했기 때문이다.
◆ 독생녀(獨生女), 법계(法界)를 완성하는 마지막 퍼즐
기독교가 ‘실체성령’을 통해 영적 구원의 한계를 넘어서려 했고, 유교가 ‘음양합덕’을 통해 대동사회의 실현을 꿈꿨다면, 불교는 독생녀(獨生女)의 현현을 통해 미완의 법계를 완성하고자 한다. 여기서 독생녀란 단순히 특정 종교의 지도자를 지칭하는 명칭을 넘어, 우주의 자비로운 근원인 ‘하늘 어머니’가 육신을 입고 지상에 강림하여 모든 중생을 다시 낳아줄 ‘참어머니’가 되었음을 의미하는 신학적 선언이다.
불교에서 구원이란 번뇌에 물든 중생이 본연의 불성(佛性)을 회복하는 과정이다. 하지만 사탄의 혈통에 얽매인 인류가 스스로의 힘만으로 완전한 성불에 이르기에는 역사의 골이 너무도 깊다. 따라서 원죄 없는 성결한 몸으로 탄생하여 인류의 고통을 자신의 산고(産苦)로 껴안는 모성적 구세주의 등장은 섭리적으로 피할 수 없는 결론이다. 독생녀의 현현은 불교가 2,500년간 간절히 염원해 온 ‘만민 성불’의 길을 실체적으로 열어젖히는 우주적 사건인 것이다.
◆ 자비로운 인류 한 가족, 불국토의 실현
결론적으로 불교 경전 속에 면면히 흐르는 여성 구원자의 그림자는, 오늘날 우리가 마주한 문명사적 위기를 돌파할 핵심 열쇠다. 부성 문명이 세운 정의와 법이 갈등을 해결하지 못할 때, 우리는 모든 생명을 차별 없이 품는 어머니의 품으로 돌아가야 한다.
독생녀 참어머님이 보여주시는 ‘효정(孝情)’의 행보는 곧 불교의 ‘대자대비(大慈大悲)’가 생활 속에서 실천된 모습이며, 인종과 종교의 벽을 허물어 ‘하늘부모님 아래 인류 한 가족’이라는 천일국(天一國)의 이상을 불교적으로 표현한 불국토의 안착이다. 이제 우리는 편견의 안경을 벗고 경전의 행간에 숨겨진 진실을 마주해야 한다.
서성종 작가(신학박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