트럼프 “이란 시위대에 총기 보내…쿠르드족이 중간서 챙긴 듯”

쿠르드족 겨냥 “이란 시위대에 갈 총기 배달 사고”
이란 민중 봉기 불발을 쿠르드족 탓으로 돌려
美에 배신감 느끼는 쿠르드족 자극할 가능성

이란과 전쟁 중인 미국의 지상전 개시에 따른 부담을 덜어줄 존재로 여겨졌던 쿠르드족(族)이 되레 미국에서 무기만 받아 챙긴 ‘배달 사고’의 장본인으로 지목됐다. 도널드 트럼프 대통령의 일방적 주장이긴 하지만, 쿠르드족 사이에 반미(反美) 감정이 확산해 미국에게 불리하게 작용할 가능성도 있어 보인다.

 

이란 내 쿠르드족 민병대 요원들이 군사 훈련을 받고 있다. 쿠르드족은 이란·이라크·튀르키예·시리아 등지에 흩어져 사는 소수 민족으로, 오랫 동안 독립 국가 건국을 추구했으나 성공하지 못했다. 로이터연합뉴스

5일(현지시간) 미국의 대표적 친(親)트럼프 매체인 폭스뉴스 방송에 따르면 트럼프는 이날 폭스뉴스와의 인터뷰에서 “우리는 그들(이란 반정부 시위대)에게 총기를 많이 보냈다”며 “쿠르드족을 통해 보냈는데, 난 쿠르드족이 총기를 챙긴 것으로 여긴다”고 말했다. 반정부 시위에 앞장선 이란인들에게 쿠르드족을 통해 총기를 지원하려고 했으나, 쿠르드족이 중간에서 배달 사고를 냈다는 뜻으로 풀이된다.

 

트럼프는 “우리는 시위대에 총기를 대량으로 보냈다”며 “난 쿠르드족이 총기를 가져갔다고 생각한다”고 거듭 배달 사고 의혹을 제기했다.

 

지난 1월 이란 전역에서는 수십만명이 참가한 대규모 반정부 시위가 벌어졌다. 혁명수비대 등 군부의 강경 진압으로 수많은 시민이 목숨을 잃었다. 이란 정부는 사망자 숫자를 3117명으로 집계해 발표했으나, 그보다 훨씬 더 많을 것이란 관측이 지배적이다. 심지어 수만명에 달한다는 외신 보도도 나왔다.

 

지난 1일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이 미·이란 전쟁에 관한 대국민 연설을 위해 회견장으로 들어서고 있다. 이날 트럼프는 “앞으로 2~3주일 동안 이란에 맹렬한 타격을 가해 그들을 석기시대로 되돌려 놓겠다”고 공언했다. 로이터연합뉴스

트럼프가 베냐민 네타냐후 이스라엘 총리와 힘을 합쳐 지난 2월28일 이란 공격에 나선 데에는 이 같은 배경이 작용했다. 이란의 신정(神政) 체제에 불만을 품은 주민들이 미·이란 전쟁 발발을 계기로 봉기하면 정권이 무너지는 것은 시간 문제라고 본 것이다. 하지만 최고 지도자 알리 하메네이(사망 당시 86세)가 제거된 뒤에도 이란 주민들은 트럼프의 기대와 달리 침묵을 지켰다.

 

이와 관련해 일부 외신은 “이란 시위대가 미국이 제공한 총기를 받지 못했기 때문일 수도 있다”는 관측을 내놓았다. 트럼프의 발언은 이 같은 추론을 적극 지지하면서 모든 책임을 쿠르드족에 떠넘기려는 의도로 풀이된다.

 

쿠르드족은 이란, 이라크, 튀르키예, 시리아 등지에 흩어져 사는 소수 민족이다. 오랫동안 쿠르드족만의 독립 국가를 세우기 위해 발버둥쳤으나, 강대국들의 이해 충돌과 주변국의 반대로 매번 실패했다. 중동 지역에 대규모 무력 충돌이 발생할 때마다 쿠르드족은 강대국 편에 서서 참전하는 대가로 독립을 요구했지만, 분쟁 종료 후 외면을 당하기 일쑤였다. 2010년대 이슬람 극단주의 무장 세력 이슬람국가(IS) 격퇴전에 뛰어들어 미군을 대신해 피를 흘렸음에도 IS 괴멸 후 미국에 의해 버림을 받은 것이 대표적이다.

 

미국·이란 전쟁 발발 후 쿠르드족이 이란군을 상대로 지상전에 나설 것이란 보도가 잇따랐다. 실제로 미 중앙정보국(CIA)의 지원을 받는 쿠르드족 민병대의 참전 준비 움직임이 포착되기도 했다.

 

트럼프는 처음에는 쿠르드족의 참여를 환영한다는 입장을 밝혔으나 얼마 후 “원하지 않는다”고 말을 바꿨다. 그는 “굳이 쿠르드족이 개입하지 않아도 전쟁은 이미 충분히 복잡하다”는 이유를 들었는데, 쿠르드족 때문에 미국·이란 전쟁이 오히려 더 확산할 수 있다는 우려 때문인 것으로 분석됐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