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근 샤오미가 익명으로 공개한 인공지능(AI) 모델이 거대언어모델(LLM) 플랫폼에서 오픈AI와 구글, 앤트로픽 모델을 제치고 사용량 1위에 올라 화제가 됐다. 지난해 같은 기간 미국 빅테크(거대기술기업) 모델이 상위권을 독차지한 것과는 딴판이다. ‘가성비’(가격 대비 성능)가 좋은 중국산 모델 활용도가 고성능의 미국산보다 높았던 셈이다.
국내에서 가성비 가전 기업으로 유명한 샤오미는 사실 AI 산업을 선도하는 대표 기업이다. 집(AIoT·인공지능 사물인터넷)과 회사, 차(전기차), 일상을 연결하는 제품을 모두 서비스하고, 이를 연결할 AI 플랫폼 역량도 갖췄다. AI 시대 일반 소비자와 기업을 샤오미 생태계에 묶어둘 잠재력이 ‘가성비 모델’에서 나온 것이다.
이정한 산업부 기자
지난달 스페인 바르셀로나에서 열린 세계 최대 모바일 전시회 ‘MWC 2026’을 갔을 때가 떠올랐다. 당시 샤오미 등 중국 기업들의 눈부신 미래 기술력을 두 눈으로 확인하고 놀랐던 기억이 난다. 샤오미 부스에는 전기 콘셉트 하이퍼카 ‘비전 그란투리스모’를 보기 위해 관람객들이 몰렸고, 로봇 폰을 갖고 온 중국 스마트폰 기업 아너(Honor)는 전시 내내 주목을 받았다. 아너의 첫 휴머노이드(인간형 로봇)는 댄서와 맞춰 춤을 추며 화려한 데뷔전을 선보였다. 화웨이는 삼성전자와 국내 통신 3사 전시관을 모두 합친 것보다 두 배 이상 큰 9000㎡(약 2700평) 규모의 부스를 차렸다.
중국 기업들이 놀랍고도 두려웠던 건 하나의 뛰어난 기술이 아닌 기술을 생태계로 확장하는 역량 때문이었다. 샤오미의 스마트폰은 삼성전자와 애플과 비교해 경쟁력이 떨어지지만 가전과 디바이스(기기), 모빌리티를 모두 잇는 통합 생태계를 구축했다. 정재헌 SK텔레콤 사장이 샤오미 부스를 방문한 뒤 기자들과 만나 “사실 좀 놀랐다”고 말한 이유다. AI 시대엔 연결성이 산업으로 확대되는데, 플랫폼과 디바이스를 모두 활용할 수 있는 기반이 향후 산업 패권을 잡는 데 결정적일 것으로 보여서다.
혁신을 현실로 끌어온 중국 기업들과 달리 정보통신 강국을 자부해 온 한국의 기업들은 돋보이는 경쟁력을 보여주지 못했다. SK텔레콤은 인프라부터 서비스까지 전 영역을 자체 확보하는 ‘풀스택 AI’를 강조했지만 이전 전략과 크게 다르지 않았고, KT도 AI와 네트워크 영역에서 특별함이 없었다. LG유플러스는 AI 에이전트 ‘익시오’를 AI 플랫폼 연결 도구로 제시했지만, 다른 기업들이 구축한 AI 생태계에 비집고 들어갈 수 있을지 지켜봐야 한다. 이번 MWC가 AI 기술과 수익성을 증명하는 자리였기에 우리 기업들의 위기감은 더 크게 느껴졌다. 통신사들의 모바일 영역 성장세가 둔화하고, 빅테크의 산업 장악력이 커지면서 시장을 뺏길 수 있다는 우려가 큰 상황이어서다. 업계 한 관계자는 “미국과는 자본력, 중국과는 속도 경쟁에서 뒤처졌다”고 평가했다.
국내 정치 환경이 AI 산업 경쟁을 뒷받침하지 못하는 것도 문제다. 데이터센터 등 당장 급한 AI 인프라 구축 과정에선 선거철과 맞물린 지역 간 유치전 과열 양상으로 속도가 나지 않고 있다. 지역균형발전 담론과 엮이면서 전력망과 인허가, 사업구조 등 실제 AI인프라 구축에 필요한 논의가 뒤로 밀리고, 데이터센터 지원법 역시 관계 부처 간 교통정리가 잘 안 돼 지지부진한 형국이다.
속도 경쟁이 치열한 AI 산업에서 기회를 놓치면 치명상이 불가피하다. 우리 AI 생태계 발전에 가속도가 붙도록 빠르고 과감한 지원이 절실한 때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