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채희창칼럼] 민생 수사 공백 방치할 건가

검사 차출·사표로 미제 사건 급증
경찰도 민생 사건 처리에 하세월
피해 구제 지연, 범죄자만 좋을 판
정부·여당이 실효적 해법 내놔야

지인이 억대의 물품 사기를 당해 지난해 9월 서울의 한 경찰서에 고소했는데 아직 수사 결과가 안 나와 애를 태우고 있다. 담당 경찰은 피의자를 한 번 소환한 뒤 “처리할 사건이 많아 그러니 기다려 달라”는 말만 한다고 한다. 지인은 피해 구제가 안 되고 흐지부지될까 봐 불안하다. 요즘 수사기관에 고소·고발을 해놓고 마음고생을 하는 피해자가 적지 않다. 대형 사건 수사와 정권이 요구하는 특별 수사가 경찰에 몰리면서 민생 범죄 수사가 지연되고 있어서다.

검찰은 이미 ‘파산’ 상태다. 이재명 대통령이 지난주 국무회의에서 “검사 1인당 사건이 500건이 넘고 처리를 못하고 있다던데 실제 상황이 어떠냐”고 묻자, 구자현 검찰총장 직무대행은 “한계치에 다다른 상황이라 인력 문제가 보강이 안 될 경우 많은 어려움이 예상된다”고 답했다. 전세 사기, 보이스피싱 등으로 삶이 무너진 서민들의 절박한 호소가 일선 검찰청의 서류 더미 속에 묻히고 있다. 이러다간 범죄자들만 좋은 세상이 될 판이다.

채희창 논설위원

중대범죄수사청(중수청)법·공수청법 제정으로 검찰청이 폐지되는 게 10월 초다. 새 형사사법 시스템이 실행되기까진 6개월이나 남았는데 민생 사건 수사 현장은 아수라장이다. 검사 정원 35명 가운데 12명밖에 남지 않은 천안지청의 경우, 근무 중인 검사의 절반이 2∼3년 차 검사다. 지난달 기준으로 검사 1인당 미제 사건이 500건을 넘었다. 평일 야근, 주말 출근을 해도 감당이 안 될 정도란다. 부산지검, 수원지검 등 대형 검찰청도 비슷한 상황이다. 두 곳에서 근무하는 평검사도 정원의 절반 수준이다. 일선 검사들은 업무 과부하로 아우성이다. 오죽하면 ‘무간지옥(無間地獄)’이란 말까지 나올까.



가장 큰 원인은 특검 차출이다. 현재 3특검, 상설특검, 2차 종합특검 등 5개 특검에 파견된 검사만 68명에 달한다. 정교유착 합동수사본부 파견 인력까지 합치면 약 90명의 검사들이 현장을 떠났다. 특검 수사가 마무리된다고 파견 나간 검사들이 모두 복귀하는 건 아니다. 내란 특검에만 30여명의 검사가 남아 공소 유지를 맡고 있다. 게다가 더불어민주당이 ‘조작 기소’ 의혹 국정조사를 시작해 증인으로 채택된 현직 검사 40명은 수시로 불려 다닐 판이다.

검사 사직도 심각하다. 지난 한 해 사직한 검사는 175명으로 역대 최다를 기록했다. 올해도 3개월 만에 58명이 검찰을 떠났다. 작년과 올해 퇴직한 검사 233명 중 65%가 경력 15년 이상 베테랑 검사다. 검찰청 폐지로 사명감은 바닥에 떨어졌고, 가중되는 업무를 견디다 못해 사직하면 남은 인력의 부담이 더 커지는 악순환에 빠졌다.

이렇다 보니 사건이 제대로 처리될 리 없다. 전국 검찰청의 미제 사건은 2024년 6만4546건에서 지난해 9만6256건으로 급증했고, 올해 2월 기준으론 12만1563건에 달했다. 수사 개시부터 3개월을 초과한 장기 미제 사건도 3만7421건에 이른다. 대부분 사기, 폭행, 성범죄 등 주로 서민들이 피해자인 사건들이다. 공소시효를 넘겨 범인을 아예 처벌하지 못하는 사례도 늘어 우려스럽다.

이런 민생 수사 공백은 민주당이 충분한 사전 준비도 없이 검찰청 해체 법안을 강행 처리한 탓이 크다. ‘정치 수사’ 오명을 산 특수부만 없애면 될 것을 민생 범죄를 처리하는 형사부까지 망가뜨린 건 도무지 납득하기 어렵다. 빈대 잡으려다 초가삼간을 태운 것 아닌가. 그러고도 여권은 특수부 출신 검사들을 특검에 대거 파견해 ‘정치 수사’를 맡기는 행태를 되풀이하고 있다. 앞뒤가 맞지 않는 모순이다.

법무부가 경력 및 신규 검사를 채용하겠다고 했지만, 미래가 안 보이는 조직에 누가 지원할지 의문이다. “중수청이 출범하면 문제가 해결될 것”이라는 여당의 기대는 ‘희망 고문’일 뿐이다. 명분만 앞세운 허술한 제도 개편이 어떤 결과를 초래하는지는 이미 공수처 실패로 드러나지 않았나. 어떤 이유로든 범죄 수사에 차질이 생기면 피해는 국민에게 돌아간다. ‘검찰 지우기’를 하겠다면 그 공백을 메우는 책임도 정부·여당이 져야 한다. 실효적 해법이 시급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