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잠실 나들이
오랜만에 잠실을 찾았다. 집에서는 멀지 않지만 쉽게 발길이 가는 곳은 아니다. 어릴 적엔 친구들 따라 롯데월드, 부모님과 잠실 운동장에 갈 때나 종종 갔던 것 같다. 근처 건대는 자주 찾았었는데, 한 다리 건너 잠실은 가까우면서도 먼 동네로 인식됐었다. 와이프는 광진구에서 태어나 서울의 랜드마크라고 볼 수 있는 롯데타워가 지어지는 걸 보며 살았다. 혼자 버스를 탈 수 있는 나이가 되어서는 친구들과 삼삼오오 모여 잠실대교를 넘어 학원을 가고 롯데월드에 종일권을 끊어 놀았다고 하는 추억 이야기는 언제 들어도 참 즐겁다.
◆직장인들의 안식처, 잠실 고박사
잠실 고박사 테이블 위에는 미리 세팅된 반찬들이 놓여 있었다. 아마도 점심시간 짧은 시간을 이용해야 하는 직장인들을 위해 조금이라도 빨리 음식을 내기 위한 가게의 효율적인 동선과 배려가 깔려 있지 않을까 싶다.
직장인들을 위한 든든한 메뉴들이 다양하게 포진돼 있다. 김치찌개부터 순두부찌개, 된장찌개 같은 여느 식당에서도 편하게 만날 수 있는 메뉴들이 있는데, 손님에게 대접에 담긴 계란 프라이와 찌개를 같이 주는 간장계란밥 세트가 특히 인기가 많다고 한다. 우리는 헛헛한 마음에 갈비탕을 시켰다. 그저 가격이 제일 높아 위로가 될까 싶어 주문한 메뉴였다. 정갈하게 깔린 반찬들은 손수 만든 티가 확연했다. 겉절이 김치와 나물들, 그리고 매일 나오는지는 모르겠지만 계란말이가 무척 마음에 와 닿았다. 고된 일상 중 쉴 수 있는 시간이 되는 점심 한 끼를 먹을 때 반찬이 계란말이라면 두말할 것 없는 행복으로 다가올 수밖에 없다. 콩나물 무침과 시금치 무침은 밥반찬으로 먹기에 아주 안성맞춤이었다. 반찬만으로도 밥 한 공기를 먹을 수 있을 것 같았다.
곧 갈비탕이 나왔다. 뜨거운 뚝배기에 노른자 지단, 대추, 당면이 들어간 옛날 방식의 갈비탕이다. 송송 썰어 넣은 대파를 넣은 국물에서 단맛이 스며 나온다. 어디서 먹어봤을까. 분명 익숙한 듯 그리운 맛이 올라온다. 옛날 시골 읍내 백반집에서 먹어본 그런 느낌이다. 어린 시절 결혼식장에서 먹었던 갈비탕 같다. 요즘처럼 구색 맞추기 갈비탕이 아닌 한 그릇에 정성을 담아 대접했던 투박하지만 정감이 가던 그 느낌이 난다. 맑거나 깊거나가 아닌 진한 정이 나던 그 맛. 뜨끈한 국물에 밥을 말고 겉절이를 한입 먹는다. 점심시간에 직장인들이 많이 찾는 이유를 알 것 같다. ‘집밥’이라는 게 흐려진 요즘, 누구나 그리워하는 그 맛이 이곳 잠실 고박사에는 준비돼 있었다. 겉절이를 두 번 더 리필하고서야 탕그릇의 바닥이 보였다. 사라진 옛 가게 대신에 기억에 새겨질 새로운 가게를 찾게 되어 기분이 나아졌다.
◆갈비탕
갈비탕은 한국인의 기억 속에 깊게 자리 잡은 음식이다. 화려하지 않지만, 한 그릇으로 충분한 위로가 되는 갈비탕의 시작은 조선시대 궁중과 양반가에서 비롯됐다고 알려져 있다. 소고기, 그중에서도 갈비는 귀한 부위였기에 주로 잔치나 특별한 날에 쓰였다. 뼈째 고아낸 국물은 단순한 탕이 아니라 시간을 들인 정성의 상징이었다. 이후 시대가 흐르며 갈비탕은 점차 대중화됐고 산업화 이후 외식문화가 자리 잡으면서 결혼식장, 백반집, 그리고 동네 식당의 대표 메뉴로 자리 잡았다.
누구에게나 갈비탕의 기억은 하나쯤 있다. 어릴 적 부모님의 손을 잡고 갔던 결혼식장의 스테인리스 그릇에 담겨 나오던 뜨거운 갈비탕 한 그릇 안에는 얇게 부친 지단과 대추, 당면이 얹혀 있었고 그 모습만으로도 대접받는다는 기분이 들었다. 맛은 자극적이지 않다. 맑지만 가볍지 않고, 깊지만 과하지 않다. 오랜 시간 끓여낸 국물에서는 고기의 단맛이 은은하게 올라오고 송송 썬 대파를 넣는 순간 비로소 완성된다. 갈비탕의 본질은 ‘진함’이 아니라 ‘균형’에 있다. 유럽에서는 비슷한 메뉴로 소꼬리를 푹 삶아 내는 소꼬리 오소부코, 프랑스식 소고기 수프 포토푀 같은 요리가 있다.
김동기 청담 일판 총괄셰프 paychey@naver.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