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 달 넘게 이어지는 중동사태로 한국 경제 전반의 하방 위험이 커지고 있다는 국책연구기관의 경고가 나왔다. 국제유가 급등과 공급망 불안이 물가와 소비, 투자, 수출 전반에 끼치는 부정적 영향이 커질 수 있다는 분석이다. 이미 우리 국민의 경제 심리는 중동사태 여파로 11개월 만에 가장 낮은 수준까지 떨어졌다.
한국개발연구원(KDI)은 7일 ‘KDI 경제동향 4월호’에서 “3월 들어 중동 전쟁에 따른 국제유가 급등, 글로벌 공급망 불안 등으로 경기 하방 위험이 확대되는 모습”이라고 진단했다. 불과 한 달 전까지만 해도 KDI는 중동사태에 관해 “대외 불확실성 확대”, “하방 위험으로 작용할 가능성”을 언급했는데, 이번에는 “경기 하방 위험 확대”를 직접적으로 명시하며 위험 신호의 수위를 높였다.
아직은 반도체를 중심으로 수출의 성장세가 유지되고, 내수도 완만하게 성장하고 있다는 것이 KDI의 진단이다. 수출의 경우 중동사태 이후에도 인공지능(AI) 관련 수요가 지속되며 높은 증가세를 이어갔다. 3월에는 반도체(이하 전년 대비, 140.5%)와 컴퓨터(176.6%)를 중심으로 일평균 수출액이 41.9% 증가했다. 내수 지표인 소매판매액은 1∼2월 평균이 2.7% 증가했고, 이 기간 서비스업 생산도 3.3% 개선됐다. 설비투자 역시 반도체 호황에 힘입어 1∼2월 평균 9.3% 성장했다. 건설업의 부진은 지속되고 있지만, 감소세는 완화하는 있다는 진단이다.
다만 3월 들어 소비자물가가 반등하기 시작하며 산업 전반에 위험 신호를 보내고 있다. 3월 소비자물가 상승률은 2.2%로 물가안정목표치(2.0%)에 근접한 수준이지만, 중동사태의 영향이 파급되면서 향후 물가 상승 압력이 커질 것으로 KDI는 내다봤다.
이미 소비심리는 악화하고 있다. 3월 소비자심리지수는 107.0으로 여전히 기준치(100)보다 높은 수준을 유지하고 있지만, 전월(112.1)보다 5.1포인트 떨어져 비상계엄 이후 1년3개월 만에 가장 큰 하락폭을 보였다. 설비투자 역시 불확실성이 확대되며 회복세가 제약될 것으로 전망했고, 건설의 경우 중동사태에 따른 비용 상승이 하방요인으로 작용할 것으로 내다봤다. 경기를 지탱하고 있는 수출 역시 수요가 축소될 경우 여건이 악화할 가능성이 있다고 평가했다.
이미 우리 국민의 경제심리는 11개월 만에 최저 수준으로 위축됐다. 한국은행 경제통계시스템에 따르면 지난달 월간 뉴스심리지수는 101.08로, 전월(116.13)보다 15.05포인트 하락했다. 미국 관세 충격이 있던 지난해 4월(97.67) 이후 11개월 만에 가장 낮은 수준이다.
지난달 뉴스심리지수 하락 폭은 우크라이나 전쟁으로 스태그플레이션(경기침체 속 물가상승) 우려가 고조됐던 2022년 6월(-19.39포인트) 이후 3년9개월 만에 가장 컸다.
뉴스심리지수는 한은이 경제 분야 언론기사에 나타난 경제 심리를 지수화한 것이다. 2022년 1월 개발해 매주 실험적 통계로 공표한다. 기사에서 표본 문장을 추출해 긍정·부정·중립의 감성을 기계학습으로 분류하고, 각 문장 수 차이를 계산해 지수를 산출한다. 지수가 100보다 높으면 경제 심리가 과거 장기 평균보다 낙관적이라는 뜻이다. 이 지수는 올해 1월 118.63까지 올랐고 2월(116.13)에도 낙관적 전망이 지배적이었으나 지난달 미국·이란 전쟁 발발로 급락했다.
뉴스심리지수는 통상 소비자심리지수(CCSI)보다 1개월쯤, 제조업 업황 기업경기실사지수(BSI)보다 2개월쯤 선행하는 것으로 평가된다. 향후 다른 경제 심리지수도 저조할 가능성이 크다는 의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