거장 피카소 며느리, 97세 일기로 프랑스에서 별세

시아버지의 유산 보전·계승에 평생 바쳐
피카소 고향 말라가에 미술관 세워 운영

파블로 피카소(1881∼1973)의 며느리이자 ‘말라가 피카소 미술관’(MPM)의 공동 창립자인 크리스티네 루이즈-피카소가 97세를 일기로 별세했다.

 

7일(현지시간) dpa 통신에 따르면 루이즈-피카소는 전날(6일) 프랑스 남부 프로방스의 자택에서 숨을 거뒀다. MPM 측은 이 사실을 공식 발표하고 고인의 명복을 빌었다.

 

크리스티네 루이즈-피카소(1928∼2026). 거장 파블로 피카소의 며느리이자 스페인 말라가 피카소 미술관(MPM)의 공동 창립자다. MPM 홈페이지

루이즈-피카소는 스페인이 낳은 천재 화가 피카소와 우크라이나 출신 무용수 올가 코클로바(1891∼1955) 사이에 태어난 파울로 루이즈-피카소(1975년 사망)의 부인이다. 러시아 극단 소속 발레리나인 코클로바는 피카소에게 가장 큰 예술적 영감을 준 연인으로 알려져 있다. 두 사람은 1918년 결혼하고 1921년에는 아들 파울로를 낳았으나, 피카소의 극심한 여성 편력 탓에 이들의 부부 생활은 파국을 맞았다. 1930년대 들어 피카소가 17세 여성과 불륜을 저지르고 임신까지 시킨 사실을 알게 된 코클로바는 파울로와 함께 피카소 곁을 떠났다.

 

루이즈-피카소는 1928년 프랑스에서 출생했다. 1950년대에 우연히 만난 파울로와 사귀다가 1959년 아들 베르나르 루이즈-피카소를 출산했다. 피카소가 프랑스에서 창작에 전념하던 시절 파리에서 태어난 파울로는 프랑스어가 유창했다. 두 사람은 1962년 정식으로 결혼했는데, 이로써 루이즈-피카소는 거장의 며느리가 되었다.

 

피카소 가문의 일원으로서 루이즈-피카소는 시아버지의 예술적 업적을 널리 홍보하는 데 앞장섰다. 1975년 남편 파울로가 세상을 떠난 뒤로는 아들 베르나르와 함께 피카소가 남긴 문화 유산을 보전하고 계승하는 사업에 전념했다.

 

스페인 내전(1936∼1939)의 결과 독재자 프란시스코 프랑코 정권이 출범한 뒤 피카소는 절망한 나머지 고국 땅을 밟지 않았다. 스페인 정부 또한 내전 당시 ‘게르니카’(1937)라는 그림으로 프랑코를 비판한 피카소를 위험 인물로 여겼다. 피카소가 생전에 “스페인이 민주화되기 전에는 ‘게르니카’를 스페인에 걸 수 없다”고 말했다는 것은 유명한 일화다.

 

1975년 프랑코 사망 후 스페인이 민주화의 길을 걸으며 루이즈-피카소는 시아버지의 고향인 스페인 안달루시아주(州) 말라가에 피카소를 기리는 미술관 건립을 추진하고 나섰다. 훗날 루이즈-피카소는 “1954년 말라가를 처음 방문했을 때 시아버지의 작품을 당신 고향에 전시하고 싶다는 열망을 느꼈다”며 “하지만 당시(프랑코 정권)의 정치적 분위기 때문에 그 계획은 실현되지 못했다”고 회고했다.

 

스페인 마드리드의 레이나 소피아 미술관에 전시된 파블로 피카소의 대표작 ‘게르니카’(1937). 스페인 내전 당시의 비극을 묘사한 이 작품으로 피카소는 독재자 프란시스코 프랑코 정권의 기피 인물이 되었다. AFP연합뉴스

MPM은 루이즈-피카소와 베르나르 모자를 공동 창립자로 2003년 10월 문을 열었다. 당시 개관 행사에 후안 카를로스 1세 스페인 국왕이 직접 참석할 만큼 화제가 됐다. MPM은 유화, 드로잉, 판화, 도자기 등 피카소의 작품 230여점을 소장하고 있는데, 그중 절반이 넘는 133점은 루이즈-피카소가 기증했다. 오늘날 MPM은 매년 전 세계에서 80만명 이상이 찾는 관광 명소로 부상했다. 지난 2023년에는 개관 20주년을 맞아 미술관 내부 강당을 ‘크리스티네 루이즈-피카소’로 명명(命名)했다.

 

루이즈-피카소의 별세 소식에 MPM은 성명을 통해 “파블로 피카소의 오랜 꿈은 며느리인 고인의 애정과 열정 덕분에 실현될 수 있었다”고 밝혔다. 이어 “고인의 아들 베르나르가 큰 슬픔을 표했다”고 덧붙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