강원도 정선 민둥산의 삶과 기억을 현대 서정으로 재창조한 정선 출신 서예일 시인의 시집 '민둥산역 플랫폼에서-어머니는 기차보다 먼저 울었다'가 출간됐다.
이번 시집은 전통 민요 정선아리랑의 정서를 계승하면서도, 이를 생활의 리듬과 언어 구조 속에서 새롭게 재구성한 이른바 '신(新) 정선아리랑'의 시학을 구현한 작품으로 주목받고 있다.
특히 이번 시집에서 가장 주목할 점은 '신(新) 정선아리랑'으로 대표되는 '리듬의 시학'이다. 시인은 정선아리랑을 단순히 재현하거나 노래하지 않는다. 대신 북소리, 밥 짓는 소리, 젓가락 부딪히는 소리와 같은 생활의 리듬을 시의 구조로 끌어들여, 민요의 호흡을 현대 자유시로 전환한다.
이 과정에서 아리랑은 무대 위의 전통이 아니라 부엌과 담장, 플랫폼 위에서 살아 움직이는 현재형의 삶으로 재탄생한다.
서예일 시의 중심에는 ‘어머니’가 있다. 이번에 출간한 ‘어머니의 부엌’에서는 부엌이 돌봄의 공간을 넘어 노동과 사유가 동시에 이루어지는 생산의 장소로 재해석된다. 이는 감상적 가족 서사를 넘어, 가장 낮은 자리에서 형성된 인간 윤리의 깊이를 보여준다.
이번 시집은 지역성과 세계성을 동시에 획득한 작품으로, 한국적 삶의 방식이 어떻게 보편적 인간 경험으로 확장될 수 있는지를 보여주는 중요한 성과로 평가된다.
정유지 경남정보대 디지털문예창작과 교수는 “서예일의 시는 향토문학이 아니라 현대적 민중 서사시의 계보에 위치하고 있다. 북소리에서 밥물 소리로, 담장에서 부엌 바닥으로 이어지는 이 소리의 계보는 한국 서정시가 도달한 가장 낮고 가장 깊은 자리에서 울리는 아리랑의 현재형이며 민둥산은 ‘버팀’의 시학”이라고 비평했다.
이어 “시인은 정선아리랑을 노래하지 않는다. 대신 그 리듬과 호흡을 문장 구조 속에 이식해 민둥산이 아무것도 숨겨주지 않는 벌거벗은 땅에서 인간이 어떻게 살아남는지를 묻는다”면서 “시인은 태백산맥 서편 민둥산의 시인으로 한국 시사에 남을 것이며, 그의 시는 가장 한국적인 방식으로 세계문학의 자리에 닿아 있다”고 평가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