말뿐인 협진망… 응급 산모는 오늘도 뺑뺑이

대구 28주 쌍둥이 1명 사망 파장
市 ‘책임형 응급 의료’ 무용지물
7곳서 퇴짜… 4시간 헤매다 비극
“의사·병상·장비 없다” 이유 들면
‘강제 이송 권한’ 작동은 어려워

올해 2월28일 임신 28주 차인 미국인 임신부 A씨가 조산 증세를 보였다. 남편 B씨는 다급히 119에 도움을 요청했고, 구급대가 인근 병원 7곳에 연락을 돌렸지만 “전문의와 신생아 치료 시설이 부족해 수용할 수 없다”는 답만 돌아왔다.

 

결국 남편은 직접 운전대를 잡고 신고 후 4시간이 흐른 뒤에야 분당서울대병원에 도착했다. 수술 결과 쌍둥이 중 첫째는 숨지고 둘째는 뇌 손상을 입었다. A씨는 “‘마지막으로 아기를 안아줘야 할 것 같다’는 간호사의 연락을 받고 면회실에서 작별인사를 했다”며 한참을 흐느꼈다.

119 구급대. 연합뉴스

이어 지난달 25일에도 대구에서 복통을 호소한 임신 20주 임신부가 대구?경북 16개 의료기관에 이송을 요청하다 ‘수용불가’ 판정을 받고 3시간 만에 충남 아산의 한 병원에 이송되기도 했다.

 

대구시가 ‘응급실 거부 사태를 뿌리 뽑겠다’며 내놓은 ‘책임형 응급의료 대책’이 생명이 위급한 응급 산모 앞에서는 가동조차 하지 못한 것으로 드러났다. 2023년 10대 응급환자 사망 사건 이후 이송 지연과 수용 거부 문제를 해소하기 위해 구축한 가이드라인이지만 특정 질환에는 제대로 작동하지 못한다는 지적이 나오는 이유다.

 

8일 대구시에 따르면 시는 이른바 ‘응급실 뺑뺑이’로 불리는 응급질환자 미수용 사고를 막기 위해 실행 시스템인 ‘다중이송전원 협진망’을 전국 최초로 도입했다. 병원 선정이 어려운 중증응급환자는 의료기관과 소방, 대구시 간 협의를 하면 구급상황관리센터가 직권으로 특정 병원에 배정해 이송한다.

 

하지만 응급의료기관의 응급환자 미수용 사례는 해마다 급증하고 있다. 더불어민주당 서영석 의원실이 보건복지부에서 받은 자료에 따르면 응급실이 환자 수용이 어렵다고 사전 고지한 건수는 2023년 5만8520건에서 2024년 11만33건으로 두 배 가까이 늘었다. 병원 수용이 어려워 장시간 이송이 이뤄지는 사례도 늘고 있다. 대구소방본부에 따르면 구급대원이 현장에 도착한 시점부터 병원 도착까지 2시간 이상 소요된 관외 이송 사례는 2024년 7건, 2025년 13건이었다.

하지만 이번 응급 산모에는 ‘다중이송전원 협진망’이 작동되지 않았다. 산부인과 수술실과 신생아 중환자실 등 특수 설비가 필수적인데 병원 측이 “장비나 병상, 전문의가 없다”는 이유를 들면 강제 이송 권한마저 무력화하기 때문이다. 시 관계자는 “응급 산모 진료 여건이 안 돼 협진망을 통한 병원 강제 지정이 어려웠다”고 해명했다.

 

비수도권 필수의료 인력과 병상 부족도 문제다. 대구의 산모?태아 집중치료실 전문의는 16명, 병상은 32개에 불과하다. 24시간 산부인과 전문의가 상주하도록 지정된 권역모자의료센터 2곳조차 당시 신생아 환자가 꽉 차 병상이 없었다. 시 관계자는 “의정 갈등으로 전공의가 복귀하지 않고 상급병원의 필수의료 지원도 끊겼다”며 “다른 지역 환자가 대구 모자의료센터로 몰리는 실정”이라고 토로했다.

 

의료계에서는 ‘법적 리스크’가 현장의 방어 진료를 부추긴다고 입을 모은다. 대구의 한 응급의학과 전문의는 “인력 부족 상태에서 무리하게 환자를 받았다가 결과가 나쁘면 모든 형사처벌과 배상책임을 의료진 개인이 져야 한다”며 “이런 구조가 수용 거부로 이어지는 것”이라고 꼬집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