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2차 세계대전 초반인 1940년 5∼6월 됭케르크 철수 작전은 훗날 여러 차례 영화로 만들어졌다. 프랑스 북부 해안 점령을 노린 나치 독일 군대의 거침없는 진격으로 전멸 위기에 놓인 영국군, 프랑스군 등 연합군 장병 약 34만명이 항구 도시 됭케르크에서 무사히 구출돼 바다 건너 영국으로 피신했다. 이를 위해 영국 해군 소속 함정들은 물론 민간 선박까지 그야말로 총동원됐다. 추격하는 독일군을 저지하기 위해 영국 공군도 근접 공중 지원 등에 전력을 쏟아부었다. ‘4만5000명만 살려도 다행일 것’이란 예상을 뒤엎고 훨씬 많은 병력의 구조에 성공한 작전 결과를 놓고서 영국인들은 마치 전쟁에서 이긴 것처럼 흥분을 감추지 못했다.
훗날 영국 역사학자 필립 벨은 저서 ‘12 전환점으로 읽는 제2차 세계대전’에서 됭케르크 철수 작전에 대해 “대단한 국가적 성취로 영국 국민의 뇌리에 각인되었다”면서도 “그러나 프랑스에게는 다른 패배로 가는 가는 도중 하나의 패배에 불과했다”고 냉정한 평가를 내렸다. 독일의 침략으로부터 프랑스 국토를 지켜야 할 병력 상당수가 영국으로 빠져나가며 연합국 일원인 프랑스 안보에는 구멍이 뻥 뚫렸다. 1940년 6월4일 됭케르크 작전 종료 후 윈스턴 처칠 영국 총리가 의회에 출석해 “우리는 그 구출 작전을 승리의 상징으로 삼지 않도록 유의해야 한다”며 “철군으로 전쟁에서 승리를 획득할 수는 없기 때문”이라고 말한 것은 너무나 당연했다. 실제로 프랑스는 채 20일도 안 지나 같은 해 6월22일 나치 독일에 항복했다.
이란과 전쟁 중인 미국 공군 소속 F-15 스트라이크 이글 전투기 1대가 지난 3일 이란 남서부 상공에서 추락했다. 이란군은 즉각 “우리 혁명수비대 용사가 대공포 사격으로 격추한 것”이라고 밝혔다. 피격 당시 F-15에는 전방석의 조종사와 후방석의 무기체계 장교 2명이 탑승하고 있었다. 조종사는 미군이 신속히 구조했으나, 무기체계 장교는 실종됐다. 만약 그가 이란군에 붙잡혀 포로가 된다면 미군 사기가 저하되며 전쟁 수행에 심각한 영향을 미칠 것이 뻔했다. 이를 잘 아는 이란 당국은 즉각 미군 장교를 상대로 거액의 현상금을 내걸고 신병 확보에 나섰다. 미군 또한 군용기를 무려 155대나 투입해 대대적인 수색 작전을 벌였다.
추락 직후 이란군 추격을 피해 험준한 산속의 바위 틈새에 몸을 숨긴 채 약 36시간을 버틴 해당 장교는 결국 미군에 의해 구출됐다.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은 “역사상 가장 대담한 수색 및 구조 작전”이라고 규정했다. 부활절 다음날인 6일 기자회견에선 “하나님이 우리를 지켜보고 계셨다”며 이번 작전 성공을 신(神)의 가호 덕분이라고 했다. 피트 헤그세스 전쟁부(옛 국방부) 장관은 한술 더 떠 미군 장교 구조를 “예수의 부활”에 비유했다. 앞서 “이란 방공망이 궤멸됐다”고 주장한 것이 거짓말이었음을 반성하기는커녕 자화자찬에만 급급하니 참으로 기가 찰 노릇이다. 미국 지도부는 “구출 작전 성공이 승리는 아니다”라는 86년 전 처칠의 일갈에 귀를 기울여야 할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