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0여년 전 처음 신혼살림을 꾸렸을 땐 주말마다 대청소를 했다. 계절마다 색깔 톤을 맞춰 식탁보와 방석을 바꾸고, 거실과 주방 소품을 새로 배치하기도 했다. 발코니에는 인공 잔디와 화분들을 깔고 아기자기한 티테이블까지 배치해 둔 덕분에 주말이면 아내와 함께 모닝커피를 마시는 게 소소한 낙이었다. 집에 초대한 이웃이나 친구들로부터 “예쁘게 잘 꾸며 놓고 산다”는 얘기를 빠짐없이 들었을 정도였다. 하지만 차례로 두 아들이 태어나면서 상황이 달라졌다. 집안 곳곳에 육아용품이 넘쳐 나면서 점차 발 디딜 곳이 없어졌다. 인테리어를 위해 마련한 소품들은 아이들의 안전을 위해 모조리 깊숙한 곳에 박아뒀다.
올해 첫째 아이가 초등학교에 입학하게 되면서 큰 결심을 하고 공부방을 꾸몄다. “난 도저히 못할 것 같다”고 손을 들었지만, 엄마는 위대했다. 아내는 창고처럼 쓰던 작은방의 물품들을 꺼내 중고거래 플랫폼에 올렸고, 혼자서 가구들을 옮기기도 하고, 온라인으로 주문한 새 책장을 직접 조립해 책을 정리했다. 아내 덕분에 우리 가족 전체의 일상도 달라졌다. 주말마다 다시 청소를 하게 됐고, 아이들은 공부방에서 책을 읽게 됐다.
대표적인 개헌론자인 우원식 국회의장은 사석에서 “헌법 개정을 자꾸 미루다 보니, 어느새 정치권 스스로 ‘못할 것 같다’는 패배감에 젖어들었다”고 했다. 1987년 체제가 단 한 번도 바뀌지 않고, 40년 가까이 흐르면서 개헌의 무게감이 그만큼 커졌다는 의미다. 개헌 논의는 늘 거대한 구상에서 출발하지만 정작 그 거대함이 발목을 붙잡았다. 권력구조 개편부터 지방분권 강화, 선거제 개선, 기본권 확대, 환경권·노동권 강화 등 모든 분야를 아우르려다 보니 협상이 늦어졌다. 어렵사리 만들어진 합의안도 세부내용을 놓고 의견이 틀어지며 아무것도 바꾸지 못하는 상황이 반복됐다. 우 의장이 주장하는 것은 ‘단계적 개헌론’이 아니라 ‘경험적 개헌론’이다. 국민이 개헌투표에 참여해 보고, 그 결과에 따라 헌법이 바뀌고, 삶에 변화가 생기는 경험을 해보자는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