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간첩 누명’ 할아버지의 恨, 손녀가 풀었다

45년 만에 재심서 원심 깨고 무죄
日 방송 듣고 北 언급했다 옥살이
“돌아가실 때까지 고통속에 살아”
“아버지와 형제분들이 수십년간 고통 받고 살았던 것을 생각하면 지금도 너무 억울합니다. 늦게나마 무죄를 선고받아 간첩의 자식, 가족이 아니라는 것을 떳떳하게 밝힐 수 있어 다행이라고 생각합니다.”

 

간첩 누명을 쓰고 억울하게 옥살이를 한 할아버지(1992년 작고) 때문에 평생을 고통 속에 살아온 부모를 곁에서 지켜보다 재심을 청구해 무죄를 이끌어낸 손녀 박모(40대)씨 소감이다.

부산지방법원. 연합뉴스

부산지법 형사4-1부(재판장 정성호)는 7일 박씨의 국가보안법 위반 재심사건 선고 공판에서 원심을 깨고 무죄를 선고했다. 재판부는 “피고(고 박씨)에 대해 이 법원에서 증거 조사한 자료를 종합하면 피고인에 대한 일부 증거는 증거능력이 없고, 나머지 증거를 종합해도 피고인의 행위가 국가보안법 위반에 해당하지 않는 것으로 판단된다”고 판시했다.

 

피고(박씨 할아버지)는 젊은 시절 일본에서 유학을 마치고 귀국해 일본 방송을 자주 접했다. 부산에서 종이봉투 제작업을 하던 그는 이웃들에게 일본 방송을 듣고 북한 관련 이야기를 했다가 간첩으로 몰렸다.

 

당시 안기부는 박씨의 할아버지가 “통일이 되려면 미군이 물러나야 한다거나 북한의 군사력이 (남한보다) 우월하고, 의료 및 교육제도도 (남한보다) 더 낫다고 10여 차례 얘기해 국가보안법(찬양·고무죄)을 위반했다”며 기소 의견으로 부산지검에 송치했다. 법원은 2개월 뒤 징역 3년에 자격정지 3년을 선고했다. 2심 재판부는 박씨 할아버지의 혐의를 반공법·보안법 위반으로 판단해 형량을 징역 1년에 자격정지 1년으로 낮춰 선고했다.

 

조부는 형기를 마치고도 자유롭지 못했다. 형사들이 늘 따라다니는 바람에 박씨 아들 형제들이 제대로 사회생활을 하기 힘들었다.

 

손녀 박씨는 우연히 제주도에 있는 조작사건기념관을 찾았다가 할아버지 사건에 대한 재심을 결심하고, ‘진실화해를 위한 과거사위원회’에 진실 규명을 요청했고, 진화위는 2024년 진실 규명과 재심 권고 결정을 내렸다.

 

박씨는 “할아버지가 겪은 일이 나와도 연관돼 있다는 사실을 확인하고, 할아버지와 부모님의 억울한 한을 풀어드리기 위해 적극적으로 나설 수밖에 없었다”면서 “진실은 반드시 밝혀져야 하고, 또 밝혀진다”고 강조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