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성상품화·성범죄 부추기는 대법원 판결”…‘리얼돌 수입 허가’ 규탄

“여성의 신체를 그대로 본떠 만든 인형을 성적 욕망 해소 도구로 사용하는 것 자체가 존엄을 짓밟는 행위 아닙니까?”

 

8일 오후 1시 서울 서초구 대법원 앞에서 여성의당은 기자회견을 열고 “리얼돌(여성 전신과 비슷한 모양의 인형)은 여성 대상 폭력을 조장할 수 있다는 문제 제기와 사회적 우려가 이어져 왔다”며 대법원 판결을 규탄했다. 대법원은 올해 2월 리얼돌 수입이 막힌 업체가 제기한 행정소송에 대해 ‘리얼돌 사용이 성인의 사적 공간으로 제한될 때는 허용된다’는 취지의 판결을 내렸다. 또 세관이 통관을 보류할 때 리얼돌 수입 목적과 사용 주체·방법 등을 조사했어야 한다고도 봤다.

서울 서초구 대법원 앞에서 여성의당이 ‘리얼돌 수입 허용 대법원 판결 규탄’ 기자회견을 열고 “리얼돌은 여성을 대상화하고 성범죄를 부추기는 강간 인형”이라고 주장하고 있다. 변하윤 인턴기자

기자회견 참가자들은 재판부의 판단이 현실과 동떨어져 있다고 지적했다. 박진숙 여성의당 비상대책위원장은 “대법원 판단과 달리 리얼돌은 여성의 성기를 적나라하게 묘사하고, 허상의 ‘처녀막’ 옵션까지 달 수 있다”며 “음성 기능을 도입해 순종적·저항적 모드까지 선택한다”고 설명했다. 그러면서 “리얼돌은 여성의 형상으로 남성의 지배욕과 정복욕을 마음껏 분출할 수 있도록 제작된 ‘강간인형’”이라고 비판했다. 

 

발언에 나선 10대 청소년 A씨는 법원이 16세 미만 청소년을 본 뜬 리얼돌에 한해 수입을 금지한 규정을 지적했다. A씨는 “17세 이상 청소년을 본 뜬 리얼돌은 괜찮나”라며 “성인이라고 우기며 리얼돌에게 교복을 입혀도 통과가 되는 것이냐”라고 반문했다. 그러면서 “이미 한국과 여러 미국 등 해외 사례에서 리얼돌을 실제로 오인해 신고한 사건들이 발생한다. 이렇게 현실과 유사한 인형이 왜 필요하냐”고 말했다.

 

디지털 성범죄 연구를 주로 하는 백가을 연구자는 법원의 판단과 달리 리얼돌이 사적 공간을 넘어서 활용되고 있다고 지적했다. 백씨는 “2021년 3월 서울 모 여대 인근에서 리얼돌 업체가 ‘여대 아가씨들 미용실 다녀왔다’는 문구와 함께 리얼돌 체험방을 홍보했다”며 “리얼돌 업장은 유명 아이돌과 실존 인물, 특정 학교 학생들까지 우리 사회 여성들을 남성들의 성 도구인 것처럼 격하시킨다”고 말했다. 또 “이런 행위는 온라인과 오프라인을 넘나들며 버젓이 자행되고 있다”며 “이런데도 리얼돌이 성인의 사적 공간에 제한되는 물건인가”라고 물었다.

 

지난 2월26일 대법원 1부(주심 신숙희 대법관)는 유통업체 A사가 김포공항세관장을 상대로 낸 수입통관 보류처분 취소소송에서 원심의 원고 승소 판결을 확정했다. A사는 2020년 3월 리얼돌들에 대한 수입신고를 했지만 성인용품 통관심사위원회 판단에 따라 통관이 보류되자 소송을 냈다. 원심에서 A사는 리얼돌이 관세법 제 234조가 규정하는 ‘풍속을 해치는 물품’에 해당하지 않는다고 주장했지만, 세관은 이를 반박했다.

 

대법원은 1, 2심에 이어 유통업체의 손을 들어주면서 “사용 목적과 주체 등을 조사하지 않고 물품의 외관 검사 결과만으로 보류 처분한 것은 위법하다”는 점을 재확인했다. 또 “모습이 저속하고 문란한 느낌을 주지만 이를 넘어서서 사람의 존엄성과 가치를 심각하게 가치를 심각하게 훼손·왜곡했다고 평가할 수 있을 정도”는 아니라고 봤다. 

 

대법원은 이번 판결에서 “‘풍속을 해치는 물품’에 해당하지 않는 리얼돌이라 하더라도 개인의 사생활 영역에서 성행위 도구로 은밀하게 사용되지 않고 유통돼 사적인 공간 외에서 사용된다면 ‘풍속을 해칠 우려’가 인정될 여지가 있다”고도 했다. 또 “세관장이 ‘풍속을 해칠 우려’를 판단할 때 해당 물품의 수입 목적, 사용 주체, 사용될 공간과 환경, 사용 방법 등을 조사해 구체적 근거가 인정되는 지를 확인할 수 있는 구체적인 근거는 조사하지 않았다”는 점을 들었다. 세관이 리얼돌의 외관만을 보는 것이 아니라, 사용 방법 등을 조사한 뒤 통관 보류 처분을 했어야 한다는 취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