빅토르 오르반 헝가리 총리가 블라디미르 푸틴 러시아 대통령과 대화하는 도중 러시아를 ‘사자’, 헝가리는 ‘쥐’에 각각 비유한 사실이 언론 보도로 알려졌다. 오는 12일 의회 총선거를 앞두고 낮은 지지율에 고심하는 오르반과 여당 ‘피데스’에 끼칠 영향이 주목된다.
8일(현지시간) 블룸버그 통신에 따르면 지난 2025년 10월17일 오르반과 푸틴의 전화 통화 내용이 담긴 헝가리 정부의 녹취록이 유출됐다. 당시 겨울을 앞두고 에너지 등 분야에서 러시아의 적극적인 협력을 요청하며 오르반은 난데없이 헝가리 어린이들이 즐겨 보는 그림책을 언급했다. 그는 “그림책에 쥐가 사자를 도와주는 이야기가 있다”며 “내가 할 수 있는 일이라면 언제든 (러시아를) 돕겠다”고 말했다.
오르반이 지목한 그림책은 ‘이솝 우화’ 속 사자와 쥐 이야기인 것으로 풀이된다. 작은 쥐가 잠든 사자의 몸 위로 올라갔다가 그만 사자를 깨우고 말았다. 성난 사자에게 붙잡힌 쥐는 “한 번만 살려주면 나중에 은혜를 갚겠다”며 싹싹 빌었다. 화가 풀린 사자는 쥐를 그냥 놓아줬다. 얼마 후 사자가 숲속에 설치된 사냥꾼의 그물에 걸려 꼼짝도 못하게 되는 상황이 벌어졌다. 사냥꾼이 돌아와 그물을 확인하면 사자의 목숨은 끝이었다. 그때 쥐가 나타나 이빨로 그물을 긁어 끊음으로써 사자를 구해준다.
이 이야기를 들은 푸틴은 물론 먼저 말을 꺼낸 오르반도 크게 소리내 웃었다고 한다. 푸틴은 오르반에게 “감사하다”며 “나는 우리의 관계를 매우 소중하게 생각한다”고 화답한 것으로 전해졌다.
블룸버그 통신의 논평 요청에 오르반은 맞는 내용이라고 확인하며 “나는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에게도 똑같이 말한다”고 밝혔다. 자신이 푸틴과 절친한 만큼 트럼프와도 막역하게 지낸다는 점을 강조하며, 헝가리가 러시아·미국 사이에서 ‘양다리 외교’를 펼칠 수밖에 없는 현실을 설명한 셈이다.
그래도 헝가리를 ‘쥐’에 비유한 것이 헝가리 국민으로선 자존심 상하지 않겠느냐는 지적에 오르반은 “(국가의) 크기가 중요하다”고 답했다. 러시아나 미국 같은 강대국과 헝가리의 국력 차이를 인정해야 한다는 의미로 해석된다.
불똥은 러시아 정부로도 튀었다. 드미트리 페스코프 크레믈궁 대변인은 관련 질문에 오르반을 “자국 이익을 옹호하는 유능한 국가 지도자”라고 치켜세웠다. 헝가리 총선에서 오르반에게 불리하게 작용할 것이라는 전망에 대해선 “동의하지 않는다”고 선을 그었다.
러시아와 미국으로부터 모두 지지를 받는 오르반이지만 이번 총선은 결코 녹록치 않다. 영국 주간지 이코노미스트에 따르면 지난 1일을 기준으로 집권당 피데스의 지지율은 42%에 그친 반면 페테르 마자르(45) 대표가 이끄는 야당 ‘존중과 자유’는 47%를 기록했다. 서방 언론들은 2010년 취임 후 16년간 장기 집권을 해 온 오르반이 이번에는 권좌에서 물러날 가능성이 크다는 보도를 내놓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