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실력’으로 증명하고 ‘진심’으로 울었던 김동연의 1460일 [오상도의 경기유랑]

임기 내 투자유치 100조 조기 달성…‘경제 도지사’의 저력
이태원 참사 유가족 붙잡고 흘린 눈물…‘국가란 무엇인가’
가치 중심 도정의 혁신 모델 제시…정책 화두는 현재진행형
경선 탈락은 마침표 아닌 쉼표, 개인 잠재력 ‘사회자본’으로 치환

김동연 경기도지사가 가장 빛났던 순간은 역설적으로 가장 슬픈 곳에 있었습니다. 이태원 참사 직후, 김 지사는 광역단체장 중 가장 먼저 도청 1층 로비에 합동분향소를 마련했습니다. 검은 양복을 입고 분향소를 지키던 그는 끝내 고개를 숙였습니다. 

 

도청을 찾은 한 유가족의 거친 손을 두 손으로 꼭 잡은 김 지사의 눈시울은 붉게 달아올라 있었습니다. 흐느끼는 어머니의 어깨를 감싸 안으며 낮은 목소리로 ‘무능한 정부’를 대신해 사죄했습니다.

김동연 경기지사가 2022년 11월3일 수원시 영통구 경기도청 1층에 마련된 이태원 참사 희생자 합동분향소에 헌화하고 있다. 경기도 제공

“죄송합니다. 공직자로서 너무나 부끄럽고 참담합니다.”

 

수행원들의 만류에도 긴 시간 유가족의 호소를 묵묵히 들어주던 그는 끝내 참았던 눈물을 훔치며 “끝까지 잊지 않겠다. 경기도가 여러분의 가족이 되겠다”고 약속했습니다. 그것은 정치적 수사가 아닌, 앞서 자식을 잃었던 아버지이자 도정을 책임지는 행정가로서 토해낸 진심 어린 다짐이었습니다. 

 

◆ 차가운 바닥에서 나눈 뜨거운 위로…尹과 대립각

 

‘실력’으로 증명하고 ‘진심’으로 울었던 김 지사의 1460일은 이제 마지막을 향해 치닫고 있습니다. 더불어민주당 경기지사 경선에서 탈락하며 재선 도전에 마침표를 찍었기 때문입니다.

 

이태원 참사 유가족을 붙잡고 흘린 눈물은, ‘국가란 무엇인가’라는 질문을 던졌죠. 과거 ‘윤석열 정부’에 대한 날 선 비판은 참사를 계기로 고조됐습니다. 윤석열 정부는 ‘따돌림’에 가까운 보복으로 대응했죠. 경기도에서 열린 대규모 기공·준공식에 김 지사는 잇따라 참석조차 못 한 채 배제됐습니다.

청년푸드 마켓을 방문한 김동연 경기지사(오른쪽 세 번째). 경기도 제공

이처럼 사실상 국가의 부재 속에서 증명한 ‘지방정부의 품격’은 눈여겨봐야 할 대목입니다. 단호한 행보로 중앙정부가 책임 회피와 정쟁에 매몰돼 있을 때, 그는 유가족을 가장 먼저 찾고 그들의 목소리를 도정에 담았습니다. 윤석열 정부와의 날 선 대립은 권력 투쟁이 아닌, ‘국가의 존재 이유’에 대한 물음임을 분명히 했죠.

 

“정치는 가장 낮은 곳의 눈물을 닦아주는 것”이라는 평소 지론은 경기도를 넘어 대한민국 지방자치단체가 나아가야 할 인권과 책임의 기준을 한 단계 높였다는 평가를 들었습니다.

 

◆ ‘경제 사령탑’ 100조 유치로 증명…‘기회소득’은 가치 투자

 

‘경제 사령탑’의 이름값은 100조 투자 유치로 증명됐습니다.

해외 투자 유치를 마치고 귀국하는 김동연 경기지사. 경기도 제공

김 지사의 도정은 ‘말’보다 ‘결과’로 말하는 시간이었습니다. 경제부총리 출신답게 취임 초 공언했던 ‘투자유치 100조원+α’ 목표를 임기 종료 8개월이나 앞당겨 조기 달성하는 저력을 보였습니다.

 

단순한 숫자가 아니었습니다. 미국 워싱턴·뉴욕·보스턴, 유럽과 아시아를 넘나드는 ‘글로벌 세일즈’를 거쳐 엑셀리스, 인테그리스 등 반도체 ‘대어들’의 투자를 끌어냈고, 화성 국제테마파크 등 대규모 복합 프로젝트를 궤도에 올렸습니다. “경기도를 대한민국 성장의 엔진으로 만들겠다”는 약속은 평택의 반도체 라인과 판교의 인공지능(AI) 클러스터에서 현실이 됐습니다. 그는 정쟁에 매몰되기보다 현장을 발로 뛰며 ‘돈이 도는 경기도’, ‘일자리가 생기는 경기도’를 만드는 데 도정 역량을 동원했습니다.

김동연(오른쪽) 경기지사가 미국 공화당의 ‘잠룡’인 론 디샌티스 플로리다주지사와 만나 악수하고 있다. 경기도 제공

그의 ‘기회소득’은 시혜적 복지를 넘어 가치 투자를 열었습니다. 도정을 상징하는 단어는 단연 ‘기회’였습니다.

 

새로운 복지 패러다임은 이랬습니다. 예술인, 장애인, 체육인 등 사회적 가치를 창출하지만 시장에서 제대로 보상받지 못하는 이들에게 지급된 기회소득은 단순한 현금 지원이 아니었습니다. 개인이 가진 잠재력을 사회적 자본으로 치환하는 ‘마중물’이었죠.

 

예컨대 예술인 기회소득은 창작의 지속 가능성을 보장하며 문화적 다양성을 확보했습니다. 장애인 기회소득은 사회 참여 유도와 건강 증진을 통한 사회적 비용 절감에 나섰습니다. 기후행동 기회소득은 도민 스스로 탄소 중립 실천에 참여하는 선순환 구조 구축에 일조했습니다. 

 

이런 정책들은 ‘퍼주기식 복지’라는 비판을 정면으로 돌파하며, 도민들의 실질적 삶의 질을 개선하는 성과로 기록됐습니다.

김동연 경기지사(왼쪽)가 중국 공산당 중앙재정경제위원회에서 허리펑 국무원 부총리와 만나 악수하고 있다. 경기도 제공

◆ ‘기회’의 씨앗을 뿌린 ‘유쾌한 반란’…지방정부의 품격

 

그는 도청 내부에서도 ‘일하는 방식’의 혁신을 주도했습니다. ‘기후도지사’를 자처하며 RE100(재생에너지 100% 활용)을 도정의 핵심 가치로 세웠죠. 비록 경선의 문턱을 넘지는 못했지만, 그가 남긴 정책들은 이미 도민의 삶 속에 깊숙이 뿌리내렸습니다.

 

경기도에 기회의 씨앗을 뿌린 ‘유쾌한 반란군’의 총사령관이었습니다.

 

여의도 정치의 문법이 아닌 ‘일터의 문법’으로 도정을 이끌었던 김 지사. 그가 흘린 눈물과 그가 유치한 100조의 자본은, 앞으로 경기도가 나아갈 방향을 가리키는 확실한 이정표가 될 것입니다. ‘실력 있는 행정가’에서 '가슴 뜨거운 정치인'으로 거듭난 그의 유쾌한 반란은 아직 끝이 아닙니다.

경기도의 한 도서관에서 책을 읽는 김동연 경기지사. 경기도 제공

여당의 경선 결과가 발표된 지난 7일 밤. 김 지사에게 위로의 문자를 넣었습니다. 돌아온 답문은 먹먹했습니다. “너무 감사하고 미안합니다. 늘 힘들 때 더 단단해지고, 어려울 때 딛고 일어섰습니다. 더 단단해지겠습니다.”

 

경선 탈락이라는 성적표는 그에게 아픈 기억일 수 있습니다. 하지만 경기도라는 거대한 캔버스에 그려 넣은 ‘기회’와 ‘혁신’의 밑그림은 쉽게 지워지지 않을 겁니다. 

 

비록 잠시 멈춰 섰을지언정 그가 뿌린 씨앗은 경기도정 곳곳에서 이미 싹을 틔우고 있습니다. 소중한 자산이자, 그가 향후 어떤 무대에서든 다시 일어설 수 있는 가장 강력한 자양분이 될 것이 분명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