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삶과문화] 결혼 이야기

고향에서 열린 조카의 결혼식
수십년 못봤던 친지들과 조우
부모, 형 상견례 때 사돈집 원정
오래된 추억 이야기 정감 새록

고향에서 열린 결혼식에 참석한 건 오랜만이었다. 조카아이의 결혼식이었다. 친척 어른들은 그새 세상을 등지고 몇 분 남지 않았다. 당숙 한 분에 이모와 외숙모가 집안 어른들로 참례했다. 하객들도 고향에서 열리는 결혼식이 오랜만이라고 이구동성으로 말했다.

어린 시절에 뵙고 30여년 만에 조우하는 고향 사람도 있었다. 동네 누나가 이웃 동네로 시집갈 때 동네 조무래기들과 얼려서 신방 도배를 도우러 간 추억이 있는데 그 누나가 초로의 할머니가 되어 나타나 놀랍고 반가웠다. 일찍이 중국으로 나가 사업하다가 돌아왔다는 동네 형도 수십년 만이라 얼른 알아보지 못했다. 이런 시간과 마주하리라고는 미처 예상하지 못해 나는 결혼식 내내 옛사람들에게서 눈을 돌릴 수 없었다.



형이 노인 한 분에게 손을 끌었다. 외종숙 어른이라는데 나로서는 초면이었다. 아버지의 외사촌으로 할머니 남동생의 아들이었다. 할머니가 그분의 고모인 셈이었다. 할머니를 여읜 지도 30년이 넘어서 아저씨는 뜻밖의 하객이었다. 광주에 사신다는 아저씨가 먼 길에 어떻게 결혼식을 참례하게 되었는지 궁금했다.

아저씨는 돌아가신 아버지의 하객이었다. 평생 경찰로 지내다가 은퇴한 그는 아버지 생전에 가까이 지냈다고 한다. 아버지는 노년을 객지에서 지내다가 돌아가셨다. 고향에 남은 형이 아버지를 대신해 지인들의 경조사를 챙겨 왔으므로 결혼식 기별이 간 모양이었다.

전성태 소설가 국립순천대 교수

아저씨가 우리 형제에게 말했다. “자네들 아버지가 여기 조카 걱정이 많았네.” 여기 조카라 함은 혼주인 형을 이르는 것으로 형은 오래전 큰 수술을 받았다. 걱정 많던 조카가 살아서 자식 혼사를 치르는 데 와보지 않을 수 없었다는 것이다.

나는 육남매의 아랫자리라서 집안일에 어두운 게 많다. 요새 들어 부모님이나 형님들과 딴 세상을 산 듯 과거 얘기가 나오면 낯설 때가 많다. 큰형과 띠동갑 차이가 나므로 손위 형들과 같은 시간을 살았다고 할 수 없다. 일테면 외종숙 아저씨가 할머니의 형제간을 손가락으로 꼽으며 누구 할머니는 어디로 나가 살았고, 누구 할머니는 어디에서 돌아가셨고 하면서 알려주는데 그 고인들을 형은 알고 나는 알지 못했다. 나는 결혼식을 마치고 돌아오면서 한 번도 가보지 못한 할머니의 친정 마을이 처음으로 궁금했다.

내가 결혼할 때 양가 상견례를 한정식 식당에서 가졌다. 여섯 남매 중에 내가 마지막으로 결혼했으므로 모든 형제가 그렇게 상견례를 했으리라고 생각했다. 그런데 맏형의 상견례 얘기를 듣고 놀랐다. 큰아들을 장가보낼 때 동갑인 부모님 연세는 마흔다섯이었다. 요새로 치면 무척 이른 나이였다. 그때는 두 분이 고향에서 농사를 짓고 있었는데 서울로 나간 맏이가 결혼할 신붓감이 생겼다고 기별하였다. 부모님에게 맏이는 모든 걸 처음으로 경험하게 하는 존재였다. 깜짝 놀란 부모님은 일단 상경해서 며느릿감을 보고 돌아왔다. 전라북도 고창 출신이라는 어린 처자가 마음에 들었다.

한창 가을걷이가 시작되어 바쁘게 지내면서도 부모님은 농사를 짓는다는 사돈 집안이 궁금했다. 사돈네까지 봐야 안심이 될 것 같았다. 추수가 얼추 끝나자 아버지와 어머니는 음식과 선물을 장만해 주소 한 장을 들고 낯선 길을 나섰다. 지금이야 차로 두 시간이면 충분한 길이 당시 교통편으로는 버스와 기차를 여러 번 갈아타고 가야 하는 먼 길이었다. 미리 기별도 못 했다고 한다. 내심 어떤 집안인지 이웃 평판도 들어볼 요량이었다. 고창 너른 들에도 가을걷이가 한창이었다. 물어물어 사돈네를 찾아가는 동안 세평을 들어보니 사돈네는 인품과 인심이 좋은 농부들이었다. 넉넉하지 않은 집안 형편도 서로 비슷하여 안심이 되었노라고 했다. 부모님은 마음에 쏙 드는 사돈네 집에서 하룻밤을 묵고 돌아왔다. 집안 행사에서 종종 사돈어른들을 만나면 그때 이야기를 들려주곤 했다. 거기는 얼마나 당황했을 것인가. 자기네도 첫딸이라 서툴기만 했다고 오래된 이야기를 추억했다.

어느 자식 상견례라고 만만했을까만 나는 서툰 부모가 첫아이를 결혼시키며 했던 그 여행을 다시 만날 수 없는 이야기처럼 아끼지 않을 수 없다.

 

전성태 소설가 국립순천대 교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