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력당국, 민감한 정보 이유 출력제어 등 데이터 비공개 에너지 연구·스타트업 ‘깜깜’ 원활한 정보 공유 정책 절실
‘현재 사용할 수 있는 새로운 유형의 모든 데이터를 활용하고 무엇이 데이터로 간주되는지 광범위한 시각으로 보는 것은 학자들은 물론 기업가들에게도 큰 가치를 지닌다. …… 슈퍼마켓의 대기 줄을 찍은 사진도 귀중한 데이터가 된다. 꽉 찬 슈퍼마켓 쓰레기통도 데이터다. 사과가 잘 익었는지도 데이터다. 우주에서 찍은 사진도 데이터다. 입술의 곡선도 데이터다. 모든 것이 데이터다! 이 모든 새로운 데이터로 사람들의 거짓말을 꿰뚫어 볼 수 있다.’ (세스 스티븐스 다비도위츠 ‘모두 거짓말을 한다’)
빅 데이터라는 단어가 등장한 지 30년이 넘었으니 데이터의 중요성을 언급한다는 게 새삼스러운 이야기일지 모르겠다. 그럼에도 데이터가 중요하단 말은 진부해지기는커녕 갈수록 더 공고한 진리가 돼 가고 있다. 다비도위츠는 책에서 ‘사람들이 남긴 수많은 검색 데이터를 분석하면 무서울 정도로 정확하고, 솔직하게 이 세상을 해석할 수 있게 된다’고 강조한다. 무릇 데이터란 점점 더 복잡해지는 세상을 꿰뚫어 볼 렌즈다.
윤지로 비영리 미디어단체 클리프 대표
에너지 분야에서도 말할 나위 없이 데이터는 중요하다. 분산자원을 실시간 통합 제어하는 VPP(가상발전소), 전력 소비 패턴을 초 단위로 관리하는 DR(수요반응), 전기차를 에너지저장장치(ESS)처럼 전력망에 연계하는 V2G 등 에너지 전환에 수반되는 모든 기술에서 데이터는 알파요 오메가다.
그럼, 한국의 전력 데이터는 필요한 사람들에게 필요한 만큼 제공되고 있을까. 얼마 전 전력 연구자들과 식사를 하다 황당한 이야기를 들었다. 유럽이나 미국에선 클릭 몇 번으로 다운받을 수 있는 자료를, 한국에선 한국전력 용역사업을 하는 교수들을 통해 ‘뒷문’으로 공유받거나, 자료 열람만 가능한 ‘데이터 안심구역’을 방문하거나 이도저도 안 되면 연구를 그냥 포기해야 한다는 것이다.
출력제어 데이터가 대표적이다. 송전 용량 한계로 재생에너지의 발전을 강제로 멈추는 ‘출력제어’ 문제가 심각하다는 이야기는 몇 해 전부터 나왔지만 실제 계통 포화상태가 어느 정도인지, 태양광이 발전을 멈춘 동안 다른 발전기들은 언제 얼마나 전력을 공급했는지 등등의 정보가 모두 비공개다.
변전소에 어떤 송전망이 연결돼 있고 송전망은 어디서 어디로 얼마나 전력을 주고받는지 알려주는 ‘그리드 구조’(grid topology) 역시 비공개다. 그 결과 전력거래소의 출력 제어 명령이 불가피한 것인지, 송전망 건설 계획이 정말 비용 효율적인지, 추가 건설을 최소화할 다른 방법은 없는지 검증하지 못한 채 전력 당국의 결정을 그저 따르는 수밖에 없다. 고도의 공학적 판단이 요구되는 계통 운영이 ‘믿음의 영역’으로 넘겨진 웃지 못할 상황이 돼 버렸다.
이런 상황이 답답한 건 연구자들만이 아니다. 분산에너지 시대에 인공지능(AI)을 활용한 에너지 스타트업을 키우자는 구호는 요란하지만 정작 이 분야에서 꽤 이름이 알려진 스타트업 관계자조차 “한국에선 스타트업이 제대로 할 수 있는 게 없다”고 했다. 영국의 유니콘 기업인 옥토퍼스 에너지처럼 실시간 도매가격에 맞춰 가전제품 가동을 제어하거나 계통 여유 용량을 파악해 최적의 전력 거래를 중개하는 서비스가 한국에선 불가능하다는 것이다. 전력이 언제 남고 부족한지, 어디서 병목이 생기는지 민간은 파악할 길이 없기 때문이다.
이 관계자는 통화에서 “정부가 주재하는 회의를 가 봐도 ‘공공이 에너지 정보를 모아 여러분이 쓸 수 있도록 하겠다’는 말만 할 뿐 한전과 전력거래소가 공유해 줄 수 있는 정보는 무엇인지 리스트조차 내놓지 않는다”며 “쓸 만한 정보를 구축해 놓지 못한 것 아닌가, 하는 의심마저 든다”고 했다.
물론 전력당국도 할 말은 있다. ‘분단국가의 특수성’이다. 한국은 분단국가라 전력 같은 민감 정보를 공개하기 어렵다는 얘기다. 이에 한 연구자는 “유럽도 바로 옆에 러시아가 있지만 어지간한 정보는 공개한다”며 “이들도 모든 정보를 상세히 공개하진 않지만, 비공개 영역을 블랙박스로 놔두는 게 아니라 보완할 수 있는 다른 데이터들로 연구나 사업에 큰 불편함이 없도록 한다”고 했다.
데이터는 분산에너지 시대를 지탱하는 가장 기초적인 공공재다. 분단 탓에 데이터를 닫아두는 게 아니라 데이터를 닫아두기 위해 분단을 ‘치트키’로 활용하는 건 아닌지 묻고 싶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