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자가만난세상] “아내, 치매환자라 부르고 싶지 않다”

몇 년 전 고향 모임에서 알게 된 도상철(72)씨는 치매를 앓는 아내를 9년 넘게 돌보고 있는 남편이다. 식사와 몸을 씻기는 일은 물론 대소변까지 챙기며 하루 24시간 곁을 지킨다. 올해 초 한 종합편성 채널 프로그램에 출연해 ‘치매로 아이가 된 아내 곁을 묵묵히 지키는 남편’의 사연으로 소개돼 시청자들의 눈시울을 적시기도 했다.

끝이 보이지 않는 병수발을 지켜본 주변에서는 “이제는 요양시설에 보내도 되지 않겠느냐”고 권하지만, 그의 생각은 다르다. 그는 “밝게 웃던 젊은 시절의 아내나, 지금 아픈 이 사람이나 제 사랑은 변함이 없다”며 “그나마 제가 건강해서 아내를 돌볼 수 있다는 것이 다행”이라고 담담히 말했다.



이처럼 바쁜 일상 속에서도 그가 힘을 쏟는 일이 있다. ‘치매 새이름 운동본부’ 활동이다. 규모가 크지 않은 모임이지만 대표를 맡아 유튜브와 사회관계망서비스(SNS)를 통해 치매 명칭 변경 필요성을 알리고 있다.

현행 법률에서 사용하는 ‘치매(痴?)’라는 용어는 ‘어리석을 치(痴)’와 ‘어리석을 매(?)’를 결합한 한자어다. 일본식 표현이 유입되면서 ‘늙어 망령이 들었다’는 부정적 뉘앙스를 담게 됐다. 이 때문에 환자와 가족에게 수치심을 주고, 조기 진단과 치료를 가로막는 요인으로 작용한다는 지적이 꾸준히 제기돼 왔다.

실제로 2000년대 중반부터 언론과 환자단체, 우리말 관련 단체를 중심으로 ‘인지증’, ‘인지저하증’, ‘뇌인지저하증’ 등으로 명칭을 바꾸자는 움직임이 이어졌지만 아직까지 뚜렷한 변화는 없다. 최근에도 일부 국회의원이 치매관리법 개정을 통해 용어 변경을 추진했지만 논의는 지지부진한 상황이다.

해외의 경우 이미 변화가 이뤄졌다. 일본은 ‘인지증(認知症)’, 대만은 ‘실지증(失智症)’, 홍콩은 ‘뇌퇴화증(腦退化症)’이라는 표현을 사용하고 있다. 미국 역시 ‘주요 신경인지장애(Major neurocognitive disorder)’라는 용어를 쓴다.

박태해 문화체육부 선임기자

다른 질환 명칭이 인권 침해 논란 속에서 바뀐 사례도 적지 않다. ‘정신지체’는 ‘지적장애’로, ‘간질’은 ‘뇌전증’으로, ‘문둥병’과 ‘나병’은 ‘한센병’으로, ‘정신분열증’은 ‘조현병’으로 각각 변경됐다. 이러한 선례에도 불구하고 유독 ‘치매’라는 용어만은 여전히 그대로 사용되고 있다.

아내를 돌보며 치매 환자의 인권 문제에 눈을 뜨게 됐다는 도씨는 매일 아침 SNS와 단체 대화방에 관련 글을 올리며 용어 개선의 필요성을 알리고 있다. 언론을 향한 호소도 이어가고 있다.

그가 속한 ‘치매 새이름 운동본부’ 회원들은 “환자와 가족이 듣기 힘들어하는 표현을 계속 사용하는 것은 또 다른 낙인”이라며 “인권을 중시하는 사회라면 명칭부터 바뀌어야 한다”고 강조한다. 한 치매 가족은 “기자를 ‘기레기’, 국회의원을 ‘국X의원’이라 부르면 가만히 있겠느냐”고 반문했다. 그만큼 명칭이 주는 상처가 크다는 의미다.

현재 우리나라에서는 65세 이상 노인 10명 중 1명꼴로 치매를 앓고 있다. 초고령사회로 접어들면서 환자 수는 더욱 빠르게 늘어날 것으로 전망된다.

“더 이상 아내를 ‘치매환자’로 부르고 싶지 않아요.” 오늘도 치매 아내 곁을 지키는 도씨의 소박한 바람이다. 그의 작은 소망에 당국이 관심을 보이기를 바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