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스라엘, 헤즈볼라 계속 공습…이란, 호르무즈 재봉쇄 위협 맞불 우라늄 농축 등 쟁점 이견 큰 가운데 양국 모두 협상단 파견 준비
미국과 이란이 휴전 발표 바로 다음 날인 9일(현지시간) 상대방의 합의 위반에 대해 경고하고 갈등을 빚으면서 휴전이 초반부터 흔들리고 있다.
이란은 특히 레바논의 친이란 무장 정파 헤즈볼라를 겨냥한 이스라엘의 공세가 계속되는 상황에 반발하고 있으며, 미국은 이란이 약속한 대로 호르무즈 해협을 개방하지 않으면 미국도 휴전을 지킬 수 없다고 경고했다.
이스라엘 공습으로 파괴된 레바논의 도시. 신화연합뉴스
다만 이번 주말 파키스탄에서 열릴 협상은 예정대로 진행하겠다는 기류가 감지되는 등 불안정한 휴전 속에서도 대화는 일단 이어가려는 모습이다.
미국과 이란의 휴전 발표 후 가장 두드러지게 부각된 쟁점은 이스라엘의 계속되는 레바논 공격이다.
이스라엘군은 8일 레바논 전역에서 100개가 넘는 곳을 공습했다고 발표했다.
레바논 보건부에 따르면 이 공습으로 최소 182명이 숨지고 거의 900명이 부상했으며 나와프 살람 레바논 총리는 국가 애도의 날을 선포했다.
그러나 베냐민 네타냐후 이스라엘 총리는 "이스라엘에는 완수해야 할 목표가 더 많이 남아 있다"면서 "휴전 합의에 헤즈볼라는 포함되지 않는다. 계속 그들을 때릴 것"이라고 밝혔다.
이란은 대리 세력인 헤즈볼라에 대한 공격을 자국에 대한 공격과 마찬가지인 휴전 위반으로 간주하고 강하게 반발했다.
아바스 아라그치 이란 외무장관은 8일 미국이 "휴전 아니면 이스라엘을 통한 계속된 전쟁"을 선택해야 한다고 엑스(X·옛 트위터)를 통해 경고했고, 이란 협상단을 이끌 것으로 알려진 모하마드 바게르 갈리바프 이란 의회 의장은 미국이 휴전 합의를 이미 위반했다고 주장했다.
헤즈볼라는 미국과 이란의 휴전 이후 처음으로 9일 이스라엘 북부에 로켓을 발사했다. 이런 공격은 미국과 이스라엘이 적대 행위를 중단할 때까지 계속된다고 헤즈볼라는 성명을 통해 밝혔다.
쿠웨이트, 바레인, 아랍에미리트(UAE), 카타르, 사우디아라비아에 대한 이란의 드론과 미사일 공격이 8일에도 이뤄지면서 역내 긴장이 계속됐다. 휴전 발표 불과 몇 시간 뒤에 사우디아라비아 국영 석유기업 아람코의 원유 정제시설에서 검은 연기가 솟구치는 모습이 위성에 포착되기도 했다.
이란이 재개방을 약속한 호르무즈 해협의 상황도 정상화와 거리가 멀다.
다수 외신 보도에 따르면 해협 통행은 휴전 합의 전에 비해 크게 나아지지 않았으며, 이란이 해협을 다시 폐쇄했다는 보도가 나오기도 하면서 해협 개방 여부에 대한 혼란이 커지고 있다.
CNN 보도에 따르면 이란혁명수비대(IRGC)는 이스라엘이 레바논을 공격한 뒤로 해협을 통한 "모든 선박 통행"이 중단됐다고 9일 발표했다.
선박 추적 정보 업체 케이플러(Kpler)에 따르면 휴전 발표 이후 해협을 통과한 유조선은 아직 한 척도 없으며, 건화물을 운송하는 상선 4척이 해협을 통행했다.
선박 추적 사이트 마린트래픽에 따르면 유조선 426척, 액화석유가스(LPG) 운반선 34척, 액화천연가스(LNG) 운반선 19척을 포함한 선박 수백척이 여전히 호르무즈 해협을 통과하지 못하고 갇힌 상태다.
월스트리트저널(WSJ)에 따르면 이란은 호르무즈 해협에 매설한 기뢰를 피하기 위해 필요하다는 이유로 해협을 통과하는 선박에 혁명수비대 승인을 받고, 지정 항로로 이동할 것을 요구하고 있다.
이란이 휴전 합의 이후에도 강경한 태세를 유지하자, 미국도 다시 압박성 메시지를 냈다.
도널드 트럼프 대통령은 9일 "진정한 합의"가 타결되고 완전히 준수될 때까지 미군 병력이 그대로 이란 주변에 남아 있을 것이라며 이란이 합의를 이행하지 않으면 강력한 "사격이 시작될 것"이라고 사회관계망서비스(SNS) 트루스소셜에 적었다.
앞서 J.D. 밴스 부통령도 8일 헝가리에서 기자들과 만나 이란이 해협 재개방을 비롯한 휴전 조건을 지키지 않으면 "심각한 대가"를 치르게 될 것이라고 경고했다.
밴스 부통령은 휴전 합의에 레바논은 포함되지 않는다는 행정부 입장도 재확인했다.
다만 밴스 부통령은 이스라엘이 협상을 돕기 위해 휴전 기간에는 레바논 공습을 "좀 자제하겠다"는 의향을 전해왔다고 밝혔다.
밴스 미국 부통령. 로이터연합뉴스
밴스 부통령은 미국 협상단을 이끌고 오는 11일 휴전 합의 중재국인 파키스탄의 이슬라마바드에서 이란과 첫 협상을 한다.
그동안 대(對)이란 협상을 담당해온 트럼프 대통령의 특사 스티브 윗코프와 사위 재러드 쿠슈너도 협상에 참여한다고 캐럴라인 레빗 백악관 대변인이 8일 브리핑에서 밝혔다.
이란도 미국의 합의 위반을 주장하면서도 일단 협상은 준비하고 있다.
아미리 모간담 파키스탄 주재 이란 대사는 9일 X에서 "셰바즈 샤리프 (파키스탄) 총리의 초청을 받은 이란 대표단은 외교적 노력에 훼방을 놓으려는 이스라엘 정권의 반복된 휴전 위반 때문에 회의적인 이란 여론에도 불구하고 이란이 제시한 10개항에 기반한 진지한 대화를 위해 오늘 밤 이슬라마바드에 도착한다"고 밝혔다.
하지만 양국의 입장차를 고려하면 협상 전망이 밝지는 않다.
우선 트럼프 대통령이 협상을 시작할 수 있는 "토대"로 묘사하고, 이란이 미국이 이미 수용했다고 주장하는 '10개항 종전안'에 대한 설명이 서로 배치된다.
이란은 종전안에 이란의 우라늄 농축 허용, 호르무즈 해협 계속 통제, 중동 지역 미군 철수, 대(對)이란 제재 해제 등이 포함된다고 주장하는데 대부분 미국이 받아들이기 쉽지 않은 요구다.
특히 우라늄 농축은 트럼프 대통령이 이란의 핵무기 개발 저지를 전쟁 명분으로 제시해왔다는 점에서 미국이 허용할 가능성이 거의 없다는 관측이 지배적이다.
레빗 대변인은 브리핑에서 우라늄 농축이 이란과의 협상에서 최고 우선순위가 될 것이며 양보할 수 없는 "레드라인"이라고 밝혔다.
레빗 대변인은 이란이 언론에 공개한 10개항 종전안은 미국이 근본적으로 수용할 수 없는 내용이라 폐기됐으며, 이란이 미국과 비공개 논의에서는 "더 합리적이고 완전히 다르며 압축된 계획"을 제시했다고 말했다.
호르무즈 해협 인근의 화물선. 로이터연합뉴스
그러나 지금까지 강경한 태도를 보여온 이란이 호르무즈 해협 재봉쇄라는 카드를 쥔 상황에서 향후 협상에서 요구 사항을 크게 축소하지는 않을 것이라는 지적도 제기된다.
조속한 긴장 완화와 호르무즈 해협 개방을 기대했던 국제사회는 우려 목소리를 냈다.
유엔사무총장 대변인은 이스라엘의 레바논 공습이 휴전에 "중대한 위험"이 되고 있다고 8일 성명을 통해 밝혔다고 AFP통신이 보도했다.
에마뉘엘 마크롱 프랑스 총리는 휴전 합의에 레바논도 포함해야 한다는 입장을 트럼프 대통령과 마수드 페제시키안 이란 대통령에게 전달했다고 8일 밝혔다.
영국 신문 가디언에 따르면 페드로 산체스 스페인 총리는 X 글에서 네타냐후 총리를 공개 비난했으며, 이베트 쿠퍼 영국 외무장관과 앤서니 앨버니지 호주 총리도 휴전을 레바논에도 적용해야 한다고 촉구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