권력중독/카르스텐 C. 셰르물리/곽지원 옮김/미래의창/1만9000원
독일의 조직심리 및 리더십 분야 전문가인 저자가 쓴 ‘권력중독’은 가지면 가질수록 더 원하게 되는 권력의 속성을 심리학적으로 풀어냈다. 권력을 가지거나 잃을 때 우리 뇌와 생리에 어떤 변화가 일어나는지, 왜 권력자는 타인의 고통에 공감하지 못하고 스스로를 통제할 수 있다는 착각에 빠지는지 그 근본적인 메커니즘을 파헤친다.
책에 따르면 권력은 단순한 지위나 영향력이 아니라 인간의 뇌를 자극하는 하나의 ‘경험’이다. 권력을 쥐는 순간, 뇌의 보상 시스템이 활성화되며 강한 쾌감이 형성된다. 그리고 그 감각은 쉽게 사라지지 않는다. 권력을 잃는 순간 우리는 그것을 단순한 상실이 아니라 금단에 가까운 고통으로 경험한다. 이 반복 속에서 권력은 점점 더 강해지고, 인간은 점점 더 권력에 의존하게 된다. 결국 권력은 개인의 선택을 넘어 불안한 시대가 만들어낸 가장 강력한 중독이 된다. 권력을 행사하는 순간 인간은 통제감을 느끼고, 이는 뇌에서 강한 만족과 쾌감을 유발한다. 문제는 이 쾌감이 반복될수록 더 큰 권력을 요구하게 된다는 점이다. 이 과정은 도박이나 약물 의존과 유사한 구조를 갖는다. 즉, 권력은 단순한 지위가 아니라 점점 더 강해지는 욕구의 메커니즘이다.
저자는 요즘같이 세상의 불확실성이 커질수록 사람들은 ‘강한 권력’을 기대한다고 말한다. 불안이 커질수록 사람들은 스스로 판단하기보다 누군가의 권위에 기대려 한다는 것이다. 이를 간파한 대표적인 인물이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이다. 실업과 유색인 이민자의 증가로 인한 미국 백인들의 불안을 읽어낸 트럼프가 “미국을 다시 위대하게”라는 구호로 대중을 결집한 방식은 이를 단적으로 보여준다. 간결하지만 강력한 메시지는 불안을 하나의 방향으로 묶어내고, 그 중심에 선 트럼프는 자연스럽게 영향력을 확대한다. 앙겔라 메르켈 전 독일 총리가 트럼프를 두고 “서열과 지배를 인식하는 데 능한 인물”이라고 평가한 것도 같은 맥락에서 이해할 수 있다. 실제로 그는 정치와 협상을 ‘지배와 복종’의 관계로 바라보며, 언제나 승자가 되려는 욕구를 노골적으로 드러냈다. 최근 미국 이라크전을 둘러싼 트럼프의 강경한 발언 역시 이러한 변화의 연장선 위에서 읽을 수 있다. 권력이 강화될수록 메시지는 단순해지지만 동시에 더 배타적이고 공격적으로 변해간다.
흥미로운 점은 이 현상이 정치에만 국한되지 않는다는 데 있다. 엔론의 최고경영자(CEO)였던 제프리 스킬링의 사례는 이를 극명하게 보여준다. 그가 주도한 기업 부패 사건은 회계 조작과 부채 은폐를 통해 투자자를 기만한 대표적 사례로 꼽힌다. 그는 ‘더 크고, 더 빠르고, 가장 강력한 기업’을 만들겠다는 집착 속에서 현실을 왜곡하기 시작했고, 결국 분식회계를 통해 세상을 속였다. 한때 혁신과 성장의 상징이었던 기업은 순식간에 무너졌고, 그 중심에는 스스로를 통제하지 못한 권력자의 판단이 있었다. 성과에 대한 집착과 권력이 만들어낸 확신이 도덕적 기준을 무너뜨린 결과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