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창용 한국은행 총재는 미국·이란 전쟁이 마무리되면 그간 빠르게 오른 환율이 빠르게 내려올 가능성이 있다고 밝혔다. 환율 수준에 대해서는 1400·1500원 같은 숫자가 아닌 달러 가치와의 상대 평가가 중요하다고 했다. 한국의 대외자산이 풍부하기에, 외환보유액을 기준으로 금융시스템의 안전성을 평가해온 인식도 바꿔야 한다고 지적했다.
이 총재는 10일 금융통화위원회가 기준금리를 연 2.5%로 동결한 뒤 기자간담회를 열어 “최근 외국인 주식 매도가 (환율 상승을) 주도한다는 점에서 (서학개미 투자가 이끈) 작년과는 차이가 있다”며 “올해 1월부터 4월까지 외국인 주식 매도 액수가 478억달러인데, 작년 한 해 전체가 70억달러였다. 올해 3월에만 298억달러가 나갔다”고 밝혔다.
그는 “이란 사태가 안정되면 그 이전에 환율이 굉장히 빠른 속도로 올라간 것만큼 빠르게 내려올 가능성도 있다고 개인적으로 판단한다”고 말했다. 경상수지 흑자 규모가 커서 외화유동성이 풍부하고 개인의 해외주식 투자 역시 감소 추세이기 때문이다. 국민연금의 해외투자도 줄이는 방향으로 제도 개선이 논의 중이다.
한은은 지난해 4분기 환율이 1400원 후반대로 치솟자 외환시장 안정을 위해 약 225억달러를 순매도했다. 이 총재는 당시 외환시장 개입 효과에 대해 “개입하지 않고 그대로 뒀으면 (시장이) 지금 수준보다 더 높아질 수도 있다고 생각했을 것이기 때문에 당시 개입한 것은 당연히 잘한 정책이고, 외환보유고는 그렇게 과도하게 절하될 때 개입하라고 있는 것”이라고 설명했다. 그는 다만 “외환보유고 개입은 일시적으로 조정을 해주는 역할이지 퍼머넌트하게 환율을 조정시키는 역할은 아니다”라고 부연했다.
이 총재는 지난해에는 주요 6개 통화 대비 달러 가치를 나타내는 달러인덱스와 원화 가치의 괴리가 컸기에 한은이 개입했을 때 시장 심리를 바꿀 가능성이 컸다고 밝혔다.
반면 최근 중동 사태로 환율이 1530원까지 치솟았음에도 시장에서는 외환당국의 움직임이 가시화되지 않았다. 이 총재는 이에 대해 “우리가 다른 나라에 비해서 중동사태로 인한 취약성이 높다는 건 누구나 인정하는 것이기 때문”이라며 “원화 절하가 빨랐던 건 우리 주식시장에서 외국인 투자자들이 이익을 실현하기 위해서 돈을 가지고 나가서였는데 그때 개입해서 환율을 낮춰주면 외국인만 더 이익을 보는 국면이 되기 때문에 개입할 이유가 적었다”고 말했다.
그는 “환율 1200원, 1500원, 1100원 이렇게 레벨(수준)을 과거와 비교하는 것에서 좀 벗어나야 된다”며 “달러 인덱스에 비해서 얼마큼 절하·절상됐나를 갖고 판단하면 훨씬 더 거시경제 정책적으로 의미가 있다”고 강조했다.
그는 “최근 언론지상에 환율이 1400원, 1,500원이 되는 것이 고령화 때문에 (고환율이) 구조적으로 자리 잡아서라고 하는데 이론적으로 꼭 동의하기는 어렵다”며 “고령화나 저성장으로 환율이 반드시 절하가 되는 것은 아닌 것 같다. 환율(움직임)에 워낙 많은 요인에 있어서 반드시 동의하지 않는다”고 말했다.
그는 외환보유액을 평가하는 시각을 바꿀 필요도 있다고 주문했다. 한은에 따르면 3월말 기준 우리나라 외환보유액은 4236억6000만달러(약 641조원)로, 전월보다 39억7000만달러 감소했다.
이 총재는 “제가 공직에 오래 있었는데 외환보유고가 2000일 때도 2000선이 무너지면 (외환보유고를) 쓰면 안 된다고 그러고, 3000일 때도 무너지면 쓰면 안 된다고 그러고 4000일 때도 나라 망한다고 하는 사람도 많다”고 돌아봤다. 그러면서 “지금은 해외에 우리 자산도 많고 외환보유고는 이렇게 (환율) 변동이 있을 때 쓰라고 있는 것”이라며 “그래서 저는 외환보유가 어느 선을 안 지키면 큰 위험이 온다는 데 참 동의하기가 어렵다”고 말했다. 이 총재는 “외환보유고는 (환율 움직임의) 속도를 조절하기 위한 거고 실제로 우리 경제의 건전성을 결정하는 것은 거시경제 정책이라든지 정책담당자에 대한 신뢰”라고 강조했다.
이달 20일 퇴임하는 이 총재는 그간 금리 결정에 대해 “후회스러운 면은 없다”고 말했다. 그는 “금리 조기 인하에 실기했다는 분들도 굉장히 많았고, 금리를 너무 안 올려가지고 환율이 이렇게 됐다고 비난하시는 분들도 많고 그러니까 양쪽(비판)이 균형이니까 그래도 (결정을) 잘했구나 생각한다”고 전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