탄생 100주년 기념전 「쉽게 닳지 않는 사람」 김상유 “천년을 의연하게 버티고 있는 저 돌부처처럼” [김용출의 미술의마음]

아니 어떻게 이럴 수 있지. 어느 겨울날, 그는 갤러리에 들어섰다가 깜짝 놀랐다. 관람객이 한 명도 없었기 때문이다. 현대 판화사의 지평을 열고 고요와 멈춤을 시각화해온 김상유 작가의 13번째 개인전이 아닌가. 관람객은 오직 한 사람, 그뿐 이었다. “참 외롭고 쓸쓸한 전시였지요.”

 

당시 40대 후반의 젊은 미술 수집가였던 서울미술관 안병광 회장은 이에 일부러 서울 삼청동 갤러리현대 전시장을 구석구석 둘러보았다. 그런데 전시장을 둘러보면 볼수록 작품에 매료되는 게 아닌가. 이거, 작가의 작품 전체를 다 사야 되겠는데.

 

김상유 작가의 젊은 시절 모습. 뉴시스

2002년 1월, 안 회장은 전시장에 나와 있던 김 작가의 작품 대부분을 구매했다. 비록 작가는 그해 작고했지만, 그는 이후 20년 넘게 작가의 작품을 찾아 헤맸다. 시간이 흐르면서 어느 덧 김 작가의 작품을 100여 점 이상 소장하게 됐다. “김상유 작가의 삶을 통째로 받은 것 같다”고, 안 회장은 회고했다. “그냥 둘 수 없었습니다. 남들이 관심을 두지 않는 김상유 작가를 세상 밖으로 끌어내고 싶었어요.”

 

다시 20년의 시간이 흘러 2022년, 오랫동안 ‘은둔의 화가’로만 알려져 왔던 작가 김상유(1926~2002)가 인터넷 실시간 검색어 1위에 오르는 등 갑자기 화제의 인물이 됐다. 이유를 살펴보니, 세계적 그룹 BTS의 RM(김남준)이 김 작가의 1990년 작 「대산루」를 한 점 구매한 뒤 인스타그램에 작품 사진과 함께 작가 이름을 해시태그로 올렸기 때문이었다. 세계인들이 김상유와 작품 「대산루」를 찾아보기 시작한 것이었다.

 

단아한 기와지붕 아래 두 개의 전통적 복층 건물, 넉넉한 여백 속에 공중에 떠 있는 듯한 정자, 그 정자에 앉아서 명상이나 선을 하는 듯한 사람, 들리는 듯한 귓가의 새 소리와 얼굴을 스치는 바람 소리….

 

‘대산루’, 1990년. 뉴시스

BTS의 RM이 세계에 널리 알린 「대산루」 연작 2점을 비롯해 작가 김상유의 삶과 작품을 한자리에서 만나보는 전시회 「쉽게 닳지 않는 사람」이 막이 올랐다. 김상유 작가 탄생 100주년을 맞아 기념전이 4월 1일부터 서울미술관 부암동 본관에서 열리고 있다.

 

이번 전시는 절제된 미감과 단정한 조형 언어를 통해 한국적 아름다움과 선의 세계를 비범하게 표현해온 작가의 세계를 전면적으로 복원하는 사실상의 ‘결정판 회고전’이라 할 만하다. 안 회장은 “김상유는 충분히 평가받아야 할 작가였다”며 “이번 전시가 그의 작업을 다시 바라보는 계기가 되길 바란다”고 말했다.

 

안진우 서울미술관 이사장은 “이번 전시는 미술관 설립자인 안 회장의 외골수 같은 김상유 사랑 때문에 가능했다”고 말했다. 그러면서 “안 회장은 가끔 ‘내가 김상유의 인생을 예술 세계를 통째로 샀다’고 말씀하셨다”며 “처음에는 김 작가를 워낙 좋아해 마니아적 발언이라고 생각을 했는데, 이번 전시 준비를 하면서 전체 작품을 걸어놓고 보니까 김상유라는 예술가의 숭고한 정신성을 미술 애호가인 자신이 보존해 줘야 되겠다는 접근이었던 것 같다”고 덧붙였다.

 

이번 전시는 미술관 1층 800평 규모 전시장에 모두 여섯 개 장으로 구성해 김 작가의 작품 150여 점을 선보인다. 초기 동판화의 비정형 실험부터 한국적 정서와 전통적 미감이 자리한 목판화, 무위자연을 구현한 유화로 이어지는 김 작가의 반세기 작업 세계를 초기, 중기, 후기로 나눠 연대기적으로 조망한다.

 

전시에는 작가의 작품 외에도 작가의 유품, 제작 도구, 생전 신문 기사 등이 입체적으로 준비됐다. 아울러 김용원, 박주환, 이우복 등 김 작가의 예술 세계를 지탱했던 1세대 후견인들의 비하인드 스토리를 통해 예술가와 후원자의 신뢰가 미술사에 미친 영향도 함께 조명한다. 언론인이자 기업 경영인으로 활동한 미술 컬렉터인 김용원은 “30년 넘게 이어온 인연 중 김상유 선생은 나를 늘 김형이라 부르며 단 한반도 흐트러진 모습을 보인 적이 없었다”며 “그의 작업이 단순해 보일 지라도 무엇 하나 쉽게 한 것이 없었다. 참 겸손했고 끝없이 노력하는 진진한 사람이었다”고 회고했다.

 

 ‘세심단속문’, 1995∼1997년. 뉴시스

“이렇게 끌날 수 없다.” 연희전문학교에서 철학을 공부하고 인천 동산중학교에서 교사로 일하고 있던 청년 김상유는 우연히 책장수가 가져온 책 더미 속에서 한 미국 미술 잡지를 접했다. 잡지를 펼쳐들고 쳐다보던 그의 머리 속에서 오랫동안 잊고 있던 꿈이 스멀스멀 피어오르기 시작했다. 그는 10대 시절 미술을 좋아해 프랑스 유학까지 계획한 소년이었다. 이렇게 하여 김상유는 30대에 다시 창작의 세계로 돌아왔고, 판화의 볼모지 한국에서 동판화 작업을 시작했다.

 

어느 날 장례식장에 가서 관에 시신이 안치된 모습을 보고 그는 생각했다. 인간은 죽으면 네모 상자 속에 누워 있지만, 사실 살아있는 모습 역시 관 같은 세상에 늘 갇혀 있는 건 아닐까. 사람이 죽으나 살아 있으나 처한 상황은 같은 것 아닌가.

 

1926년 평안남도 안주에서 태어나고 평양에서 자랐다가 한국전쟁 때 월남한 그는 1970년 관을 모티브로 인간 삶과 죽음의 모습을 비범하게 고찰한 작품 「막혀버린 출구」로 제1회 서울국제판화비엔날레 대상을 수상하며 미술계의 주목을 받기 시작했다.

 

작품은 검은 배경 위에 가로로 긴 흰색 사각형이 놓여 있고 그 안에 희미하게 사람의 형상이 있는 모습이다. 시간이 흐를수록, 즉 죽음이 가까워질수록 관 속의 사람 형상은 점점 진해진다. 관에 갇힌 인간 존재의 본질.

 

그는 국수 기계를 개조해 프레스를 만들고, 동판 대신 아연판을 사용했다. 공장에서 산을 구하는 등 스스로 판화 도구를 마련해 작업했다. 하지만 동판의 부식 과정에서 발생한 가스는 그의 시력을 조금씩 앗아갔다.

 

시력이 흐려졌지만, 예술에 대한 그의 집념까지 무너뜨리진 못했다. 그는 금속 대신 나무로 향했고, 1970년대 중반부터 목판화 작업을 시작했다. 직접 나무를 잘라 목판을 만들고 먹을 바른 뒤 한지를 놓고 놋쇠 숟가락으로 일일이 문질러 가며 한국적 이미지를 새겼다.

 

이를 위해 카메라와 몇 장의 종이를 들고 전국을 돌아다녔다. 대형 사찰에서 이름 없는 정자까지. 그가 찾은 것은 ‘한국의 시간’이었고, ‘한국인의 마음’이었다. 그의 한국적 풍경이 담긴 판화는 당시 서울 시내 호텔에 있던 화랑에서 판매되면서 외국인들의 기념품으로 큰 인기를 끌었다.

 

하지만 제대로 된 보호구도 없이 화학 물질을 사용한 작업을 이어가고 노동하듯 판화를 찍어내면서 시력 저하에 어깨마저 악화했다. 그는 칼을 내려놓고 붓을 들었다. 빛과 색의 세계로 들어선 것이다.

 

유화는 서양의 물감인데, 기름기를 제거하면 좀더 담백한 동양적, 한국적 미를 표현할 수 있지 않을까. 그는 판화처럼 검은 윤곽선을 그리고 그 안에 색을 채우는 방식으로 작업했는데, 면천에 그림을 그리고, 닦고 지우고를 반복했다. 유화이지만 물감의 기름을 닦아내 색만 남기고 물성을 줄여 수채화나 동양화같이 표현하려 했다.

 

한국 고건축과 기물을 찾는 여행도 계속됐고, 한국의 마음 찾기도 이어졌다. 오래된 풍경, 고택, 정자, 나무의 결, 기와의 선, 돌부처의 형상….

 

이때부터 그의 그림에서 정자에 앉아 가부좌를 틀고 눈을 감은 채 명상에 잠긴 사람이 등장하기 시작했다. 탈속과 달관의 한국적 선화(禪畵)가 탄생한 순간이었다. 그는 “이 인물은 나 자신이며 우리 모두의 자화상이라고 생각하면 틀림없다”고 말했다.

 

인사말 하는 안병광 서울미술관 회장. 뉴시스

1990년 제2회 이중섭미술상을 수상하며 다시 세상의 주목을 받은 그의 작품들은 2000년대 들어서면서 더욱 소박해지고 단출해졌다. 작품 「청산록수」의 명상하는 사람은 이제 머리카락도 없고, 속세를 상징하는 옷도 사라진다. 누각도 사라지면서 산과 태양 아래 사람만이 남았다. 2002년, 동강이 내려다보이는 산에 몸에 뿌려지며 그는 자연으로 돌아갔다.

 

김윤섭 아이프미술경영연구소 대표는 “김상유 작품의 진면목이라면 ‘기교없는 기교의 멋’”이라며 “조용하고 단정하며 세심한 그림 속의 안분지족 정신이 곧 한국적 정서를 투영하고 있는 것 아닐까”라고 설명했다.

 

김상유의 차녀인 김삼봉 김상유문화재단 이사장은 “사람들은 아버지를 은둔과 고독의 작가라고 불렀지만, 그는 혼자의 즐거움을 알고, 여행의 맛을 알며, 자기 수행을 위해 깊은 명상을 즐겼던 작가”라며 “전시 제목처럼, 쉽게 닳지 않는 무해한 사람이었다”고 회고했다. 전시는 8월 17일까지.

 

전시장의 그림을 보고 있자면, 한국의 아름다움과 한국의 마음을 찾아 나선 김상유를 만날지도 모르겠다. 어느 날 큰 사찰을 찾게 됐다가, 절 입구에 ‘세심단속문’이라고 쓰인 문 앞에 앉아 있는 작은 돌부처에서 멈춰선 그를. 마음을 닦고 세속을 끊는 문을 지키는 작은 돌부처에 입을 다물지 못한 그를. 그리하여 스스로 삶과 그림의 일에서 돌부처가 되겠다고 다짐하는 그를.

 

일천년을 저렇듯 의연하게 앉아있을 수 있다니…. 나는 도대체… 그렇다면 나도 이제부터 저 돌부처 같은 사람이 되리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