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한미군 철수 어리석다”… 전 美 하원 외교위원장 별세

뉴욕에서 16선 기록한 엘리엇 엥겔 前 하원의원
트럼프 방위비 압박에 “한·미 동맹 해쳐” 경고도

“주한미군 철수는 어리석은 짓”이라고 단언했던 미국의 지한파(知韓派) 정치인 엘리엇 엥겔 전 연방의회 하원의원이 79세를 일기로 별세했다. 엥겔은 하원 16선을 기록했으며 32년의 의정 활동 대부분을 외교 분야에 바쳤다. 민주당 소속인 엥겔은 생전에 공화당 도널드 트럼프 대통령과 숱하게 충돌했다.

 

10일(현지시간) AP 통신에 따르면 엥겔은 이날 뉴욕의 한 병원에서 파킨슨병 합병증으로 눈을 감았다. 유족은 “공직자로서 44년 넘게 일하면서 미국 국내는 물론 전 세계의 평화와 안보를 위해 끊임없이 투쟁했다”고 고인을 애도했다.

미국 연방의회 하원의원으로 16선을 기록한 엘리엇 엥겔(1947∼2026). AP연합뉴스

엥겔은 1947년 뉴욕에서 태어났다. 그의 할아버지는 우크라이나계 유대인 출신의 이민자였다. 대학에서 역사학을 공부한 엥겔은 졸업 후 한동안 학교 교사로 일했다. 이후 민주당 공천으로 뉴욕주(州) 의회 하원의원에 도전해 당선되며 정계에 입문했다.

 

1977년부터 1988년까지 11년 넘게 주의회 의원으로 활동한 엥겔은 연방의회에 출사표를 던졌다. 1988년 뉴욕을 지역구로 초선 하원의원이 되었고 이후 내리 16선을 기록했다.

 

엥겔은 32년에 걸친 의정 활동 거의 대부분을 외교위원회에서 했다. 1990년대 초 냉전 종식과 더불어 옛 유고슬라비아에서 다양한 민족·종교가 얽힌 내전이 일어났을 때 그는 코소보 주민들의 권익을 적극 옹호했다. 과거 유고 연방 내 세르비아의 일부였던 코소보는 미국의 강력한 도움 아래 오늘날 독립국이 되긴 했으나, 세르비아는 이를 부정하고 아직도 군사력으로 코소보를 위협하는 중이다.

2019년 ‘우크라이나 스캔들’에 연루된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 탄핵에 앞장선 민주당 지도부. 오른쪽부터 당시 하원 외교위원장이던 엘리엇 엥겔, 하원의장이던 낸시 펠로시, 하원 법사위원장이던 제리 네이들러. 게티이미지

조부의 고향인 우크라이나에 관심이 많았던 엥겔은 트럼프 1기 행정부 시절인 2019년 이른바 ‘우크라이나 스캔들’이 터졌을 때 트럼프와 결연히 맞섰다. 이는 트럼프가 볼로디미르 젤렌스키 우크라이나 대통령과 통화하던 중 “조 바이든 전 부통령(훗날 대통령 역임)의 아들이 연루된 비리 의혹을 우크라이나 검찰이 수사하지 않으면 군사 원조를 중단하겠다”고 협박한 것이 핵심이다.

 

당장 트럼프를 향해 ‘사적 이익을 위해 국가 권력을 동원하려 했다’는 비난이 쏟아졌다. 당시 하원 외교위원장이던 엥겔은 트럼프 탄핵 추진에 앞장섰다. 2020년 1월 민주당이 다수당이던 하원은 탄핵소추안을 가결했으나, 한 달 뒤 공화당이 다수당인 상원의 탄핵심판에선 ‘무죄’ 평결이 내려졌다. 당시 엥겔은 트럼프와 공화당을 맹비난하며 “포기하지 않겠다”고 다짐했다.

 

엥겔은 한·미 동맹을 적극 옹호하고 주한미군의 필요성을 강조한 인물로 알려져 있다. 트럼프 행정부 시절인 2019년 주한미군 철수론이 흘러나오자 엥겔은 “어리석은 짓”이라고 반박했다. 이어 한국을 겨냥해 ‘주한미군 방위비 분담금을 대폭 인상하라’는 압박을 가하던 트럼프 행정부를 향해 “미국의 과도한 방위비 요구가 한·미 동맹을 해칠 수 있다”고 경고했다.

 

2020년 미 대선과 함께 치러지는 하원의원 총선을 앞두고 17선 달성을 노리던 엥겔은 지역구 경선에서 정치 신인에게 져 민주당 후보 자격을 잃으며 정계를 떠났다. 유족으로 부인 패트리샤와 세 자녀가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