악보라는 설계도 위에 별자리를 그리다… 도쿄의 밤을 수놓은 피아니스트 임윤찬 [이상권의 카덴자]

9일 산토리홀 리사이틀, 슈베르트·스크랴빈 연주
1부 치밀한 질서의 건축, 2부 초월적 광휘의 폭발
“피아노라는 악기가 여전히 새롭다는 것을 증명해”

지난 9일 일본 도쿄 산토리홀에서 열린 피아니스트 임윤찬 리사이틀은 슈베르트의 형식미에서 스크랴빈의 초월성으로 건너가는 여정이었다. 그러나 이날 무대의 인상은 두 세계의 단순한 대비에 있지 않았다. 전반부가 세운 질서가 후반부의 비상을 낳고, 후반부의 광휘가 다시 전반부의 엄격함을 새로 보이게 하는 식의 하나의 긴 호흡이 공연 전체를 관통했다.

9일 일본 도쿄 산토리홀에서 연주를 마친 후 관객 기립박수에 답례하기 위해 무대 중앙으로 나오고 있는 피아니스트 임윤찬. 이상권 제공

1부 슈베르트 피아노 소나타 17번에서 임윤찬은 이 작품의 서정을 먼저 내세우기보다, 악상들이 서로 맞물리며 하나의 큰 흐름을 이루는 방식을 집요하게 추적했다. 1악장 템포는 빨랐지만 조급하지 않았다. 하프 페달과 플러터 페달로 프레이즈 사이의 틈을 섬세하게 메우며 흐름의 이완을 막았고, 그 덕분에 음악은 한순간도 처지지 않은 채 긴 호흡의 긴장을 유지했다. 제2주제에서는 건반에 밀착한 레가토로 음색의 결을 바꾸었고, 전개부에서는 왼손 베이스를 또 하나의 성부처럼 세워 입체적 골조를 분명히 했다.

 

이처럼 전진력이 강한 1악장은 자칫 슈베르트 특유의 여백과 머뭇거림을 좁힐 위험도 있었다. 하지만 임윤찬은 음가의 처리와 성부의 균형으로 그 위험을 대부분 상쇄했다. 빠른 템포 안에서도 악상은 납작해지지 않았고, 구조는 오히려 더 또렷하게 부각됐다.

 

2악장에서도 그의 시선은 멈춰 선 아름다움보다 안에서 계속 움직이는 맥박에 가 있었다. 오른손 선율은 충분히 길게 노래했지만 반주의 리듬 위에 안주하지 않았고, 프레이즈의 끝도 단순한 소멸이 아니라 다음을 예비하는 여운으로 남았다. 그 결과 이 악장은 고요했지만 정지하지 않았고, 감정 또한 구조의 흐름 속에서 서서히 얼굴을 드러냈다. 3악장 스케르초는 날렵하게 치고 나갔고, 트리오에서는 음향의 원근이 한순간 깊어졌다. 반복이 많은 피날레 론도에서도 그는 매 귀환마다 아티큘레이션과 페달, 호흡의 결을 조금씩 달리해 같은 재료 안에 미세한 시간의 변화를 새겨 넣었다. 고전적 형식은 끝까지 견고했지만, 그 틀 안에서는 이미 다른 세계의 감각이 조용히 꿈틀거리고 있었다.

 

2부의 스크랴빈은 세 곡의 단순한 병치가 아니라 하나의 거대한 소나타처럼 호흡했다. 임윤찬은 2번에서 3번으로 거의 쉬지 않고 넘어갔고, 4번 직전의 짧은 침묵조차 마지막 비상을 향한 숨 고르기처럼 다가왔다. 2번이 자연의 표면 아래 숨어 있는 불안과 흔들림을 열어 보였다면, 3번은 그것을 인간 내면의 상처와 투쟁으로 끌어올렸고, 4번은 그 긴장을 마침내 빛의 방향으로 밀어 올렸다.

 

소나타 2번에서 그는 바다의 풍경과 함께 그 밑에 깔린 정서를 끌어올렸다. 1악장의 출렁이는 반주 음형 위로 선율이 떠오를 때, 깊은 페달이 두 층위를 하나의 울림 안에 묶었고, 그 안에서 달빛 같은 서정과 설명되지 않는 불안이 동시에 번졌다. 이어진 프레스토에서는 그 부유하던 감각이 곧장 파도의 힘으로 전환됐고, 셋잇단음표의 급류 속에서도 성부의 윤곽은 끝내 무너지지 않았다. 3번 소나타에 이르면 자연의 표제는 사라지고 심리적 드라마가 전면에 나섰다. 1악장의 거친 하행과 불협은 상처의 감각으로 다가왔고, 다음 악장의 가벼운 갤럽 리듬은 위안보다 위태로운 균형에 가까웠다. 느린 악장에서 노래하듯 세워진 중심은 쉬지 않고 이어진 종악장에서 다시 모습을 드러냈고, 폭발적인 질주의 끝에서 음악은 단순한 격앙이 아니라 큰 호흡으로 되돌아오는 감각을 남겼다.

이상권 음악평론가.

이날 해석의 정점은 4번 소나타였다. 1악장에서 떠오른 고음의 동기는 몽환적 암시에 머물지 않고, 예상보다 또렷한 선과 압력으로 청중에게 곧바로 다가왔다. 음 하나하나의 초점이 선명해지자 홀의 공기와 원근감도 함께 재조정되는 듯했다. 이어진 2악장에서 임윤찬은 비상의 충동을 거의 한계까지 밀어붙였다. 정돈된 균형을 과시하기보다 내부에 축적된 에너지가 한순간에 임계점을 넘는 과정을 드러낸 해석이었다. 4번만 떼어 놓고 들으면 다소 과잉으로 비칠 수 있는 해석이지만, 이날은 앞선 2번과 3번이 이미 그 문맥을 충분히 준비해 두었기에 튀지 않고 자연스럽게 자리를 잡았다. 종결부에서 몰아친 화음의 연타는 거칠게 분출했지만, 화성적 색채와 방향이 또렷이 살아 있었고, 그 끝에서 그는 악보라는 설계도 위에 자신만의 별자리를 그려내는 듯했다.

 

마지막 음이 사라진 뒤의 짧은 침묵까지도 이날 연주의 일부처럼 다가왔다. 곧이어 터져 나온 산토리홀의 기립박수는 단지 화려한 기교에 대한 환호만은 아니었다. 피아노라는 익숙한 악기 안에도 아직 듣지 못한 가능성이 남아 있음을, 산토리홀을 가득 메운 객석이 함께 확인한 순간이었다.

 

이상권 음악평론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