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80년 9월22일, 이라크가 이란을 공격하며 이란·이라크전쟁이 시작됐다. 전쟁의 원인은 복잡했지만 가장 직접적인 계기는 1979년 이란혁명이었다. 이란에서 수천년 이어진 왕정과 수십년 지속된 친미체제가 단숨에 무너지고 신정국가가 등장했다는 사실은 전 세계를 충격에 빠뜨렸다. 특히 미국대사관 인질 사건과 국교 단절로 이어진 미국·이란관계의 파탄은 이후 40년 넘게 지속되는 양국 대립의 출발점이 되었다.
위기감은 주변국에서도 확산됐다. 호메이니가 혁명의 수출을 공개적으로 천명하자 사우디아라비아를 비롯한 왕정국가들은 물론 이라크의 사담 후세인도 직접적인 위협을 느꼈다. 그는 혁명의 확산을 차단하는 동시에 아랍세계의 패권자로 도약하겠다는 목표로 전쟁을 선택했다.
1979년 이란혁명 당시 반미 시위 장면.
그러나 계획은 어긋났다. 혁명 직후 혼란에 빠져 있던 이란은 예상보다 빠르게 전열을 정비했고, 전쟁은 장기 소모전으로 변했다. 냉전구도 속에서 미국과 소련, 걸프 산유국들이 양측을 지원하면서 어느 한쪽의 결정적 승리를 허용하지 않는 균형이 유지됐다. 결국 전쟁은 8년간 이어진 끝에 막대한 인명 피해와 경제적 손실만 남긴 채 승자 없이 끝났다.
전쟁의 후유증은 또 다른 전쟁으로 이어졌다. 재정 위기에 빠진 이라크가 1990년 쿠웨이트를 침공하면서 미국 주도의 걸프전쟁이 발발했다. 이를 계기로 미군이 중동에 상주하기 시작했고, 미국 중심의 중동 질서가 구축되기 시작했다. 동시에 이는 이슬람극단주의의 성장을 촉발했고, 훗날 9·11테러로 이어졌다.
9·11 이후 미국은 이라크, 이란, 북한을 ‘악의 축’으로 규정했지만 실제 군사적 표적은 이라크였다. 2003년 미국의 침공으로 사담 후세인 정권이 붕괴되면서 이라크는 내전 상태에 빠졌다. 역설적으로 이란은 이라크 약화를 “미국 덕분에” 이루게 된 것이다.
이후 미국에 남은 핵심 도전 세력은 이란이었다. 이란은 핵 개발을 통한 생존과 대리 세력을 통한 중동지역 내 영향력 확대라는 이중 전략을 구사했다. 레바논의 헤즈볼라, 예멘의 후티 반군, 이라크의 시아파 민병대, 시리아의 아사드 정권 지원이 그것이다.
이에 대해 미국은 경제 제재와 참수작전 등 제한적 군사 압박으로 대응해 왔다. 그러나 2025년 이스라엘이 이란 핵 시설을 타격하면서 상황이 변화하기 시작했고, 2026년 2월28일 미국과 이스라엘은 핵 시설 파괴와 정권 교체를 목표로 전면 공격을 감행했다. 이는 오랜 기간 군사적 직접 개입을 피해 왔던 미국의 대이란 전략이 깨진 순간이었다.
이후 한 달 넘게 이어진 충돌 속에서 트럼프 대통령이 “문명 파괴”까지 언급하며 긴장이 최고조에 이르렀다가 최근 양측은 2주간의 조건부 휴전에 합의했다. 결국 오늘의 충돌은 1979년 이란혁명 이후 47년간 이어져 온 미국과 이란 사이 장기전의 또 다른 국면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