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 SK 전희철 감독의 ‘고의 패배 의혹’이 29점 차 대참사라는 부메랑이 돼 돌아왔다. 호랑이를 피하려다 불곰을 만난 꼴이다. 정규리그 최종전에서 주전들을 대거 제외하는 변칙 운용으로 플레이오프(PO) 대진 상대를 조율하려 했다는 의혹에 휩싸인 SK. 코트 위에는 명가의 자존심 대신 야성을 되찾은 고양 소노의 무자비한 포효만 가득했다.
12일 서울 송파구 잠실학생체육관에서 열린 2025~2026 프로농구 6강 PO 1차전의 전광판은 잔인했다. SK 76, 소노 105. 단순한 경기력 난조를 넘어선 굴욕적인 점수 차였다.
안방에서 마주한 소노는 더이상 정규리그의 만만한 상대가 아니었다. “SK가 우리를 선택했다는 사실이 선수들의 자존심을 건드렸다”던 소노 손창환 감독의 경기 전 일성은 현실이 됐다. 소노의 에이스 이정현은 코트를 갈기갈기 찢으며 29득점을 쏟아부었고, SK의 ‘데이터 우위’(정규리그 4승2패)는 무용지물로 변했다. 단기전인 PO를 지배하는 것은 차가운 숫자가 아닌 뜨거운 기세였다.
경기 초반 흐름은 팽팽했다. SK는 자밀 워니의 골 밑 공략과 김형빈, 알빈 톨렌티노의 외곽포를 앞세워 2쿼터 초반 27-24 역전에 성공하며 명가의 저력을 보여주는 듯했다.
그러나 반전은 거기까지였다. 정규리그 MVP에 빛나는 소노 이정현의 연속 3점포에 전반을 39-50으로 내준 SK는, 3쿼터 들어 신인왕 케빈 켐바오의 폭격에 속수무책으로 무너졌다. 워니가 공을 잡으면 2~3명이 에워싸는 소노의 ‘그물망 수비’에 SK의 주무기인 ‘워니GO’는 완벽히 봉쇄당했다.
기록의 격차는 처참했다. 소노가 39개의 3점슛 중 무려 21개를 림에 꽂아 넣으며 신들린 화력을 과시하는 동안 SK의 외곽포는 11개에 그치며 침묵했다. 성공률로 따지면 소노(54%)가 SK(28%)를 두 배 가까이 압도한 셈이다. 전 감독은 불리한 경기 흐름을 끊기 위해 잇따라 작전 타임을 불렀지만, 이미 상대의 기세에 눌린 선수들의 움직임은 승부의 추를 돌리기에 역부족이었다. 4쿼터 들어 추격의 동력을 완전히 상실한 SK는 결국 주전을 대거 벤치로 불러들이며 안방에서 사실상의 ‘백기’를 들었다.
앞서 SK는 지난 8일 정규리그 최종전에서 납득하기 어려운 장면들을 연출하며 ‘상대 팀 고르기’ 논란의 정점에 섰다. 주전급 선수들을 대거 제외한 것은 물론, 승부처에서 나온 석연치 않은 자유투 에어볼은 팬들에게 큰 실망감을 안겼다.
KBL(프로농구연맹)은 이를 ‘스포츠 정신을 훼손한 불성실한 경기 운영’으로 규정하고 전 감독에게 제재금 500만원을 부과했다. KBL 관계자는 “고의 패배 의혹 자체를 공식 인정한 것은 아니다”라면서도 “다만 프로답지 못한 경기력으로 오해를 자초한 책임이 크기에 전 감독과 구단에 문책성 징계를 내린 것”이라고 설명했다. 그러나 이를 두고 농구계 일각에서는 리그의 공정성을 무너뜨린 행위에 비해 제재 수위가 가볍다는 비판이 나오기도 했다.
이러한 ‘계산기 농구 의혹’은 결과적으로 상대의 독기를 깨우는 패착이 됐다. 소노 손창환 감독은 10일 열린 PO 미디어데이에서 “우리가 선택당했다는 생각도 잠시 들었지만, 크게 개의치 않는다”면서 “상대가 우리를 일부러 골랐다면 ‘소노라는 벌집을 괜히 건드렸다’는 말이 나오게 하겠다”며 으름장을 놨다. 소노의 에이스 이정현은 “SK가 우리를 (파트너로) 선택한 것 같아 묘한 자극을 느낀다. 반드시 결과로 보여주겠다”며 칼을 갈았고, 그 서늘한 경고장은 PO 1차전의 참혹한 스코어로 현실이 됐다.
이날 경기 승리로 기선 제압에 성공한 소노는 사상 첫 4강 PO 진출 가능성을 91.1%까지 끌어올렸다. 역대 6강 PO 1차전 승리 팀이 4강에 오른 사례는 56차례 중 51차례에 달한다. 운명의 2차전은 14일 같은 장소에서 열릴 예정이다. PO 6강은 5전3선승제로 진행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