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제 ‘허수봉의 시간’이다. 지난 10일 대한항공의 통합우승으로 마무리된 V리그 남자부. 사흘이 지난 13일부터 FA 시장이 막을 올린다.
한국배구연맹(KOVO)은 13일 FA 자격을 취득한 남자부 16명의 선수 명단을 공개했다. 통합우승팀인 대한항공의 조재영과 유광우를 비롯해 현대캐피탈 허수봉-황승빈, 우리카드 박진우-오재석-이상현-김영준, KB손해보험 김도훈, 한국전력 하승우-장지원, OK저축은행 정성현-이민규-박창성, 삼성화재 이상욱-김우진 등이 FA 자격을 얻었다.
이번 남자부 FA 시장은 그야말로 허수봉이 압도적인 ‘최대어’다. 아웃사이드 히터로서 수준급 리시브에 국내 선수 최고의 공격력을 보유한 허수봉을 영입할 경우 단숨에 전력을 업그레이드할 수 있기 때문이다. 2016∼2017시즌 고교 졸업 후 V리그에 직행한 허수봉은 차근차근 기량을 쌓았고, 지난 시즌 현대캐피탈의 통합우승을 이끌며 기량이 최정점에 올랐다. 올 시즌에도 정규리그 35경기에 출전해 538점을 기록하며 국내 선수 득점 1위에 올랐다. 공격 종합 2위(성공률 53.37%)로 효율성도 좋다. 무엇보다 오픈 공격 3위(43.53%)에 오를 정도로 외국인 선수급의 해결 능력까지 보유하고 있는 허수봉이다.
포스트시즌에서도 눈이 부셨다. 플레이오프 2차전에서 4세트 패색이 짙은 상황에서 서브쇼로 경기를 뒤집어내는 능력을 보였고, 챔프전에서도 현대캐피탈이 1,2차전을 내주며 벼랑 끝에 몰렸으나 3,4차전을 셧아웃 승리를 거두며 최종 5차전까지 승부를 끌고 갈 수 있었던 것도 허수봉의 존재감이 컸다. 적장인 대한항공 헤난 달 조토 감독도 허수봉에 대해 “유럽 무대에서도 통할 수 있는 선수”라고 극찬했을 정도다.
결국 관건은 돈이다. 허수봉은 2022∼2023시즌을 마치고 생애 첫 FA 자격을 얻어 원 소속팀인 현대캐피탈과 옵션 없이 풀보장 8억원에 도장을 찍었다. 이제 8억원으로는 허수봉을 품을 수 없다. FA 시작가격부터가 ‘연봉킹’ 황택의(KB손해보험)의 12억원을 뛰어넘는 13억원부터라는 게 업계의 관측이다. KOVO 역사상 ‘공식 연봉 15억원’ 시대도 허수봉이 최초로 열어젖힐 게 분명하다는 얘기도 나온다.
원 소속팀인 현대캐피탈은 무조건 허수봉을 눌러앉힌다는 방침이지만, 정태영 부회장 시대를 지나온 현대캐피탈의 자금력은 예전만 못한 게 사실이다. 현대캐피탈의 제시액을 뛰어넘는 연봉을 제시하는 구단이 있다면 이적 가능성은 충분하다.
다만 허수봉을 영입하는 팀은 최대 24억원의 보상금까지 지불해야 한다. 허수봉의 올 시즌 연봉은 옵션 없이 8억원. 허수봉을 영입할 경우 전 시즌 연봉 200%인 16억원에 보호선수 외 보상 선수 1명을 내주거나 연봉 300%인 24억원을 현대캐피탈에 지급해야 한다.
이런 출혈까지 감행하면서 허수봉 영입전에 나설 팀으로는 KB손해보험과 대한항공 정도가 꼽힌다. 다만 두 팀도 워낙 고액 연봉자가 많기 때문에 허수봉 한 명에게 최대로 쓸 수 있는 돈은 15억원 안팎으로 알려져있다. 물론 업계의 예상을 깨고, 의외의 팀이 영입전에 참전할 가능성도 충분하다. 그만큼 영입만 하면 팀을 단숨에 우승후보로 끌어올릴 수 있는 선수기 때문이다.
FA 시장이 개막한 건 13일이지만, 이미 선수들 차원의 물밑 영입전이 시작된 지는 오래다. 허수봉은 플레이오프 2차전을 마친 뒤 “각 팀의 친한 선수들이 ‘우리 팀으로 와’라며 얘기하고 있다”라고 말하기도 했다.
결국 선택권은 허수봉에게 있다. 과연 허수봉은 내년에도 천안 유관순체육관을 홈으로 쓰게 될까. 아니면 자신의 재능을 수도권으로 옮기게 될까. 앞으로 2주, 허수봉의 시간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