돈은 풀렸는데 아무나 못 받는다…투자 시장, 기준이 달라졌다

투자 기준이 바뀌고 있다. 최근 벤처투자 시장에서는 단순히 ‘누가 투자받느냐’보다 ‘어떤 구조로 투자받느냐’가 더 중요한 기준으로 떠오르는 분위기다. 특히 일부 검증된 기업을 중심으로, 상환 조건이 없는 보통주 신주 발행 방식 투자 사례도 일부 확인되고 있다.

 

게티이미지 

시장 전반의 변화로 단정하기는 이르지만, 투자 방식에서도 선별 기준이 작동하기 시작했다는 신호로 읽힌다.

 

13일 중소벤처기업부에 따르면 2025년 국내 벤처투자 금액은 13조6000억원으로 전년 대비 14% 증가했고, 투자 건수도 8542건으로 역대 최대를 기록했다.

 

투자 규모 자체는 회복세를 보이고 있지만, 업계에서는 자금이 모든 기업으로 확산되기보다 수익성과 사업 모델이 검증된 기업에 집중되는 ‘선별 투자’ 흐름이 강해졌다는 분석이 나온다.

 

그동안 국내 벤처투자의 기본 구조는 상환전환우선주(RCPS)나 전환사채(CB)였다. 투자금 회수 안전장치를 확보하면서 향후 주식 전환을 통해 수익을 얻는 방식이다.

 

하지만 최근 일부 투자에서는 이 구조가 달라지고 있다. 투자자가 상환 권리를 두지 않고, 기업과 동일한 조건에서 성과를 공유하는 보통주 투자를 선택하는 사례가 나타난다.

 

업계에서는 이를 ‘리스크 공유형 투자’로 해석한다. 업계 한 관계자는 “회수 안전장치를 걸어두는 단계가 아니라, 이미 검증된 기업에 더 크게 베팅하는 국면”이라며 “투자 구조 자체가 기업에 대한 확신의 수준을 보여주는 신호가 되고 있다”고 말했다.

 

여성 건강 제품 기업 질경이는 최근 SBI인베스트먼트와 대신증권이 참여한 펀드를 통해 30억원을 유치했다. 투자 방식은 전액 보통주 신주 발행이다.

 

질경이는 2025년 매출 130억원, 영업이익 25억원을 기록하며 이미 이익 구조를 확보했다. 중국 라이브커머스를 중심으로 수출이 확대되며 성장성과 현금창출력을 동시에 입증했다는 평가를 받는다.

 

회수 조건 없이 투자금이 들어갔다는 점은, 단순한 성장 기대가 아니라 ‘이미 증명된 사업 모델’에 대한 판단이 반영된 결과로 해석된다.

 

딥테크 영역에서는 여전히 대형 투자 유치가 이어지고 있다. AI 반도체 등 기술 장벽이 높은 분야에서는 수익성보다 기술력과 시장 선점 가능성이 우선적으로 평가된다.

 

다만 공개된 투자 구조를 보면, 개별 기업의 라운드를 보통주 중심 투자로 일반화하기는 어렵다. 업계에서는 “딥테크는 투자 구조 변화보다 기술 경쟁력이 자금을 끌어오는 핵심 변수”라는 해석이 더 많다.

 

플랫폼과 콘텐츠 분야에서도 분위기는 달라졌다. 과거에는 이용자 수나 성장률 중심으로 투자가 이뤄졌다면, 최근에는 수익성과 단위경제(Unit Economics)가 확인된 기업에 자금이 집중되는 흐름이 뚜렷하다.

 

한 투자업계 관계자는 “이제는 ‘잘 될 것 같다’는 스토리보다 ‘이미 된다’는 숫자가 먼저 나와야 투자로 이어진다”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