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술과 현실은 늘 나란히 존재해 왔다. 작가의 눈에 비친 찰나를 직설적으로 기록하든, 시대적 공기를 특정한 형태로 은유하든, 미술은 언제나 현실에 뿌리를 둔다. ‘리얼리즘’이란 사조는 19세기 중엽 선언적으로 정립되었지만, 오늘날에는 단일한 양식을 넘어 각기 다른 진실을 담아내는 다각적 태도로 존재한다. 특히 거대 담론이 사라진 동시대 미술에서 ‘리얼’함이란 화자가 선택한 현실이 무엇인지, 그리고 그것을 어떠한 형태로 감각하는지에 따라 전혀 다른 모습으로 펼쳐진다. 지각이 곧 세계를 구성한다는 현상학적 관점이나, 세계가 객관적 실재로 주어지는 것이 아니라 개인의 인식에 따라 제작된다는 넬슨 굿맨의 논의처럼, 오늘날 리얼리티는 주관적 감각의 층위에 따라 다성적으로 존재한다.
이우성은 ‘현재’를 그리는 작가로 줄곧 호명되어 왔다. 2010년대 초반 청년 세대의 불안과 사회적 현실을 예리하게 투영하며 주목받았던 그는 한국의 사회비판적 리얼리즘의 유산인 ‘걸개그림’ 양식과 다양한 매체를 활용하여 독자적 문법을 구축했다. 3년 만에 열리는 개인전 ‘너에게 물으면 알 수 있을까?’(갤러리현대 신관, 3월18일∼4월26일)는 그간의 ‘현실 기록’을 넘어 존재론적 사유로 확장하는 감각의 지평을 선보인다. 회화, 걸개그림, 사운드 작업 등 40여점의 작품은 전시 제목처럼 작가 자신과 타인에게 건네는 질문이 되어, 해석이 유보된 현재의 순간들과 과거의 기억이 중첩된 풍경을 직조한다.
◆리얼하지 않아 리얼한
◆풍경의 얼굴
인물과 풍경은 이내 서로에게 스며든다. “사람의 눈, 코, 입을 그리듯이 풍경을 그렸다”는 작가의 고백처럼, 그의 화면에서 풍경은 독립된 객체가 아닌, 그곳을 거쳐 간 이들의 사연이 축적된 무대로 그려진다. ‘새벽녘 폭포 아래서’는 풍경의 다층성을 가장 극명하게 드러낸다. 정방폭포 아래 평화로운 일상을 보내는 군집 뒤로, 제주 4·3사건이라는 역사적 비극의 장소성이 중첩된다. 거시적 역사의 상흔과 미시적 일상의 평온함이 충돌하는 지점에서 작가는 ‘삶이란 무엇인가’라는 묵직한 질문을 던진다.
나아가 화면에서 인물을 지워버림으로써 역설적으로 그 자리에 머물렀던 존재를 소환하기도 한다. ‘해변의 사람들’이나 ‘한여름 강릉과 너의 얼굴’에는 제목과 달리 인물이 부재한다. 풍경 앞에서 누구나 한 번쯤 그리운 이를 떠올려 보았듯, 작가는 사적 기억이 각인된 특정한 장소에서 누군가의 얼굴을, 그 속에 침전된 잔상과 그리움을 나직이 불러낸다. 이우성에게 풍경을 그린다는 것은 결국 보이지 않는 누군가의 안부를 묻는 일이자, 그 존재의 초상을 풍경에 빌려 기록하는 일일 것이다.
작가의 시선은 도시의 구석구석까지 닿는다. 러시아워의 정체를 담은 ‘퇴근길 한강대교’는 무표정한 운전자와 휴대폰을 보거나 단잠에 빠진 사람, 지나가는 차 속에서 서로를 발견한 아이와 강아지의 미소를 포착한다. 특별할 것 없어 보이는 일상의 장면이지만, 작가는 분홍빛 하늘처럼 이들을 붉게 물든 마음으로 담아낸다. 세상에 보잘것없는 삶은 없다는 듯, 작가는 이들에게 저마다의 사연이 들리도록 자리를 내어준다.
이우성의 도시 풍경 속에서 배경은 결코 뒤로 밀려나 있지 않다. 무심히 지나치는 거리의 간판들, 성냥갑처럼 빼곡히 늘어선 아파트의 작은 창문들, 길가에 세워진 차에도 삶이 깃들어 있다. 천편일률적인 건물과 차가운 도시의 모습도 작가의 눈을 거치면 노란 인물들의 체온을 닮은 삶의 무대가 된다. 어느 가을날 은행나무 아래 주차장을 그린 ‘황금빛 가을과 꿈꾸는 선생님’에서도 그러하다. 누군가에게는 불청객일 뿐인 금빛 부스러기들은 작가의 화면 속에서 별처럼 흩날리고 ‘꿈꾸는 선생님’의 낭만이 된다.
◆찬란한 삶의 증거들
인물에서 풍경으로 무게 중심이 이동했지만, 이우성이 회화의 틀 안에서 붙잡아두려는 본질은 변함없다. 바로 ‘오늘’이라는 이름의 삶과 그 속에 깃든 가치다. 그가 그리는 ‘오늘’은 단순한 현재의 박제가 아니라, 과거의 기억과 사연이 켜켜이 쌓여 지금의 감각을 밀어 올리는 다층적인 시간이다.
어떠한 현실을 담아낼지 작가로서 수많은 선택이 가능하겠지만, 이우성은 삶을 계속 나아가게 하는 동력을 꾸밈없이 소박한 방식으로 증명하기를 택한다. 그 정성스러운 묵묵함 덕분에 우리는 꽉 막힌 퇴근길 대교 위에서도, 은행이 떨어진 주차장에서도, 차가운 새벽 비를 맞으면서도 기어이 번져나가는 일상의 찬란함을 목격하게 된다.
이우성의 리얼리즘은 전시 제목처럼 수많은 ‘오늘의 질문’의 형태로 계속해서 나아갈 테다. 그러나 그 바탕에는 삶의 보석 같은 순간들을 찾아내고 그것을 세상의 풍경으로 확장시키는 온유한 집념이 자리한다. 거창한 선언이 아니더라도 매일을 기어이 살아내게 하는 힘. 이우성의 화면은 그 증거들로 촘촘히 채워져 있다. 춤과 노래, 속삭임이 일렁이는 그의 풍경 앞에 서서 묻는다. 우리는 이제, 어떠한 현실을 살아갈 것인가.
신리사 미술사·학고재 기획팀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