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자가만난세상] 스포츠를 넘어 돈 되는 공연장으로

기존의 대형경기장은 ‘경기 있는 날만 열리는 공간’이었다. 수만석의 좌석은 비어 있는 날이 더 많았다. 대형 체육행사를 위해 건설해 행사를 끝낸 대형경기장의 유지비는 도시의 부담으로 남았다. 충남도가 KTX천안아산역 인근에 대형 돔구장 건설을 추진하는 것과 관련한 벤치마킹을 위해 방문한 싱가포르 국립경기장은 이 공식을 뒤집었다. 이곳은 더 이상 스포츠시설이 아니라 도시의 소비와 관광을 끌어들이는 ‘상시 가동형 플랫폼’이었다.

핵심은 ‘용도 전환’이다. 축구와 육상 경기만으로는 365일을 채울 수 없다.

김정모 사회2부 기자

싱가포르는 개폐식 돔과 가변형 좌석, 음향·무대 인프라를 결합해 세계적인 팝 공연과 대형 이벤트를 상시 유치하는 구조로 바꿨다. 테일러 스위프트, 콜드플레이 같은 글로벌 아티스트의 투어가 이어지고 수만명의 관람객이 한 번에 도시로 유입된다. 관람객은 티켓만 사는 것이 아니라 숙박·식음·쇼핑을 소비한다. 공연 하나가 도시의 하루 매출을 바꾼다.



이 변화의 진짜 포인트는 ‘경기장 바깥’에 있다. 국립경기장이 포함된 싱가포르 스포츠 허브는 쇼핑몰, 식당, 체육시설, 수변공간이 결합된 복합 클러스터이다. 관람객은 공연 전후로 도시에 머물며 소비가 이어진다.

이벤트가 없는 날에도 지역 주민과 관광객이 찾는 생활형 공간으로 작동한다. ‘한 번에 많이 모으는’ 이벤트와 ‘매일 조금씩 쓰게 만드는’ 일상 소비가 한곳에서 결합되는 구조인 셈이다.

결국 싱가포르가 만든 것은 경기장이 아니라 ‘콘텐츠 유통망’이다. 글로벌투어의 필수 경유지로 자신을 포지셔닝하고 일정·마케팅·관광을 묶어 하나의 패키지로 설계했다. 이는 단순 시설투자가 아니라 도시 전체를 무대로 삼는 기획의 문제다. 공연 유치 경쟁에서 이기기 위해서는 항공·숙박·비자·홍보까지 연결된 총체적 전략이 필요한데 싱가포르는 이를 국가 차원에서 밀어붙였다.

이 모델이 배워야 메시지는 분명하다.

첫째 ‘큰 경기장’이 아니라 ‘비어 있지 않은 경기장’을 만들어야 한다.

둘째 시설보다 중요한 것은 콘텐츠와 운영이다.

셋째 이벤트를 도시경제로 연결하는 동선과 체류 전략이 성패를 가른다. 단순히 좌석 수를 늘리는 것은 해법이 아니다. 채우는 방식이 더 유효하다.

국내에서도 대형 돔구장 논의가 이어진다. 그러나 결국 질문은 하나로 귀결된다. “얼마나 크게 지을 것인가”가 아니라 “무엇으로 채울 것인가”다. K팝과 스포츠라는 강력한 콘텐츠를 갖고도 이를 묶어내는 플랫폼 전략이 없다면 경기장은 다시 ‘비는 날이 더 많은 공간’으로 돌아갈 수 있다.

싱가포르의 선택은 분명했다. 경기장을 도시의 엔진으로 바꾸겠다는 결단, 그리고 그것을 가능하게 한 운영의 디테일이다. ‘돈 되는 공연장’은 우연이 아니라 설계의 결과다. 이제 필요한 것은 더 큰 시설이 아니라 더 치밀한 기획이다.

이 지점에서 충남 천안아산 돔구장 구상은 주목된다. 방향은 맞지만 관건은 ‘채우는 전략’이다. 공연·스포츠를 체류형 소비로 연결하는 구조가 없다면 또 하나의 빈 경기장이 될 수 있다. 결국 승부는 규모가 아니라 콘텐츠와 운영에 달려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