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설왕설래] 납득 어려운 장동혁의 미국행

30년 전의 일이다. 1996년 4월 총선에서 신생 정당 자민련이 50석을 얻어 정국의 캐스팅보트를 쥐게 되자 김종필(JP) 총재는 의기양양했다. 한껏 고무된 JP는 일본 미야자키현 방문을 추진했고, 출국일이 다가오자 들뜬 기색을 감추지 못했다. 하지만 경북 의성의 김화남 당선자가 돌연 탈당하자 JP는 출국 이틀 전 방일 계획을 전격 취소한다. 당시 여당인 신한국당의 ‘의원 빼가기’에 맞서 내부단속이 급하다는 판단에서였다. 산전수전 다 겪은 이 노정객은 당시 정국이 워낙 긴박하게 전개돼 자기가 여유롭게 외유나 즐길 때가 아니라는 것을 본능적으로 알았던 셈이다.

6·3 지방선거를 50여일 앞두고 장동혁 국민의힘 대표가 5박7일 일정으로 미국 방문길에 나서 뒷말이 무성하다. 이번 방문은 미국 국제공화연구소 초청에 따른 것으로, 공화당 인사 및 미 의회 상·하원 관계자들을 만나 한·미동맹과 한반도 정세 등을 논의할 예정이라고 한다. 한국의 제1야당 대표가 미국 조야를 찾아 외교적 존재감을 키우겠다는데 누가 토를 달겠는가. 문제는 ‘왜 하필 지금’이냐는 시기의 부적절함이다.

 

정치만큼 타이밍이 중요한 게 없다. 아무리 의도가 좋더라도 시기가 부적절하면 메시지는 왜곡되기 마련이다. 현재 여론조사를 보면 국힘은 대부분의 격전지에서 더불어민주당 후보에게 압도적으로 뒤지고 있다. 경북을 제외한 모든 광역단체장 선거에서 패배할 것이라는 관측까지 나온다. 최대 인구의 경기도는 지사 후보를 구하지 못해 공천을 미뤘고, 수도권 시장·군수 후보를 찾기도 쉽지 않다고 한다. 분위기 반전을 위해 사투를 벌여도 모자랄 판에, 총사령관격인 당 대표가 일주일 가까이 국내를 비우는 것은 상식적으로 납득하기 어렵다. 당내에서도 “미국에 유권자가 있느냐”는 비판이 쏟아지는 이유다.

일정 변화도 의아하다. 당초 2박4일에서 미국 체류 일정이 늘어나고, 출국 하루 뒤에 사회관계망서비스(SNS)로 공개했다. 당당한 외교 행보가 아닌 ‘몰래 출국’ 모양새가 됐다. 오죽하면 당 안팎에서 지지율 정체와 공천 잡음을 피하기 위한 ‘현실 회피’라는 비아냥이 나오겠는가. 5박7일간의 공백이 가져올 후유증이 작지 않을 것 같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