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남 합천군의 시계는 지금 그 어느 때보다 빠르게 흐르고 있다. 지난해 합천군의 인구 4만명선이 무너졌다는 소식은 단순한 통계 수치를 넘어 지역 사회에 큰 충격을 안겼다. 2015년 이후 불과 10년도 되지 않아 1만명의 인구가 ‘증발’한 현실은 지방소멸이 더 이상 먼 미래의 경고가 아님을 보여준다. 더욱 심각한 것은 인구 구조의 불균형이다. 합천군 인구의 약 47.6%는 65세 이상이다. 청년층은 일자리와 주거를 찾아 대도시로 떠나고 남겨진 고령층은 노후화한 주택에서 돌봄의 ‘사각지대’에 놓여 있다. 최근 5년간 단독주택을 제외한 신규 주택 공급이 전무했다는 사실은 합천이 과연 ‘살고 싶은 도시인가’라는 질문을 던진다. 노후 주택 비율은 70%를 상회하고 빈집은 가파르게 늘고 있다. 이러한 절박한 위기 상황에서 합천군은 행정의 모든 역량을 ‘주거 혁신’에 집중하기로 했다.
◆청년의 꿈을 담는 그릇, ‘기회의 공간’ 설계
합천군 주거 혁신의 첫 번째 화두는 단연 청년이다. 지역의 미래를 책임질 청년과 신혼부부가 정착하지 못하는 가장 큰 이유는 ‘적정 가격의 질 좋은 주거 공간’이 부족해서다. 군은 이 같은 난제를 해결하기 위해 133억원을 투입해 6층 규모의 행복주택 건립에 박차를 가하고 있다.
전국 평균을 크게 웃도는 초고령화 지표를 가진 군에게 노인 주거 문제는 복지를 넘어선 생존 전략이다. 군은 2028년 완공을 목표로 116가구 규모의 ‘고령자 복지주택’을 준비 중이다. 합천군에 따르면 이번 프로젝트의 핵심은 물리적 공간(Hardware)과 돌봄 서비스(Software)의 완벽한 결합이다. 문턱 제거, 높낮이 조절 세면대, 안전 손잡이 등 ‘무장애(Barrier-Free)’ 설계를 전 가구에 적용함은 물론 건물 저층부에는 경로식당과 물리치료실, 건강관리실이 들어선다.
눈여겨볼 대목은 ‘지역사회 통합건강돌봄’ 시스템과의 연계다. 주거지 내에서 의료와 돌봄 서비스를 즉각적으로 제공받음으로써 어르신들이 익숙한 삶의 터전에서 마지막까지 존엄을 지키며 살 수 있는 이른바 ‘에이징 인 플레이스(Aging in Place)’ 환경을 구축한다. 이는 자녀 세대의 부양 부담을 획기적으로 낮추는 동시에 고령층의 고립감을 해소하는 사회적 안전망 역할을 수행할 것으로 전망된다.
◆경제적 파급효과로 지방행정 패러다임 전환
군의 시선은 단기적인 주택 공급에 머물지 않고 미래 도시 구조의 재편으로 향한다. 국토교통부의 ‘지역제안형 특화 공공임대주택’ 공모에 선정된 프로젝트가 그 중심에 있다. 합천역세권 개발과 연계된 이 사업은 청년, 자녀 양육 부부, 은퇴자, 귀농인이 한 마을에 모여 사는 100가구 규모의 ‘세대 통합형’ 주택 단지를 지향한다.
단절됐던 세대 간의 소통을 위해 육아 친화 시설과 공동 세탁실, 공유 주방 등 세대 통합 시설을 대거 배치한다. 이는 주거를 매개로 느슨해진 지역 공동체를 복원하려는 거대한 사회적 실험이다. 역세권이라는 지리적 이점과 결합한 이 특화 주택은 합천을 찾는 귀농·귀촌인들에게 강력한 유인책이 될 것이며, 도시의 활력을 원도심에서 역세권으로 확장하는 가교 역할을 할 것으로 보인다.
이번 주거 혁신 정책에 투입되는 예산은 지방소멸대응기금과 군비 등을 포함해 수백억원대에 달한다. 군은 이를 단순한 ‘소모성 복지 예산’으로 보지 않는다. 주거 안정이 인구 유입으로 이어지고, 늘어난 인구가 지역 상권을 살리며 이것이 다시 지자체의 세수 증대와 지역 경제 활성화로 연결되는 ‘선순환 구조’의 마중물로 보고 있다.
군 행정의 패러다임이 ‘사후 관리’에서 ‘사전 투자’로 바뀌고 있다. 집을 짓는 것은 곧 미래를 짓는 것이라는 확신에서다. 군은 주거 혁신을 통해 인구 정책의 패러다임을 ‘현금 지원’ 중심에서 ‘정주 인프라 구축’ 중심으로 완벽히 전환했다.
◆남겨진 과제와 미래를 향한 제언
물론 장밋빛 전망만 있는 것은 아니다. 306가구라는 공공임대주택이 공급된 이후 이를 효율적으로 운영하고 관리할 수 있는 전문적인 시스템 구축이 필수적이다. 또한 입주민들이 지역 사회에 조화롭게 녹아들 수 있도록 돕는 다양한 공동체 프로그램의 내실화도 풀어야 할 숙제다.
하지만 지방소멸이라는 거대한 파도 앞에서 군이 보여준 이 대담한 행보는 매우 시의적절하다는 평이다. 주거는 인간의 가장 기본적인 욕구이자 지역에 뿌리를 내리게 하는 가장 강력한 접착제이기 때문이다. 군의 실험이 성공적으로 안착한다면, 이는 대한민국 전역의 소멸 위기 지자체들에게 ‘위기를 기회로 바꾸는 공간 전략’의 표준 모델이 될 것이라는 게 군의 설명이다.
집이 바뀌면 삶이 바뀌고, 삶이 바뀌면 도시의 운명이 바뀐다. 합천군이 짓고 있는 것은 단순한 콘크리트 벽이 아니라, 3만9000여 군민이 내일을 기대하게 만드는 ‘희망의 주춧돌’이다. 합천군 관계자는 “과거에 시도하지 않았던 강력한 주거 정책을 통해 청년층의 주거 부담을 낮춰 인구 유출을 막고, 고령층의 생활 안정을 도모해 전 세대가 살기 좋은 합천을 만들겠다”고 밝혔다.
◆박민좌 郡 경제문화국장 “단순 집짓는 행정 아닌 삶 설계하는 행정해야”
경남 합천군의 ‘공간 혁명’이 본궤도에 올랐다. 지방소멸의 파고를 막기 위한 대규모 주거 정책들이 연이어 발표되면서 군민들의 기대와 궁금증이 커지고 있다. 그 변화를 이끄는 박민좌(사진) 합천군 경제문화국장은 정책의 행간에 숨은 구체적인 실행 전략과 행정적 결단은 공무원으로선 조심해야 한다고 말했다.
합천군에 따르면 박 국장은 13일 인터뷰 내내 ‘속도’와 ‘실효성’을 강조했다. 인구 4만명 선이 무너진 현실 앞에서 과거 방식의 출산 장려금이나 일시적인 현금 지원으로는 인구 유출의 둑을 막을 수 없다는 판단에서다. 박 국장은 “이제는 집을 짓는 행정에서 삶을 설계하는 행정으로 넘어가야 한다”며 주거 혁신의 당위성을 역설했다.
특히 그는 최근 5년간 신규 주택 공급이 전무했던 합천의 열악한 환경을 언급하며 직접 발로 뛰며 확보한 예산과 공모 사업의 성과를 구체적으로 제시했다. 지난달 23일부터 시작한 ‘청년·신혼부부 행복주택’ 입주자 모집은 합천군이 가장 공을 들인 대목 중 하나라고 한다.
박 국장은 “청년들에게는 보증금 1000만원이 큰 짐이 될 수 있다. 그래서 임대보증금을 100만원에서 200만원 수준으로 대폭 낮췄다”고 설명했다. 또 “월 임대료도 소득 구간에 따라 최저 3만원까지 책정했다”면서 “이는 지자체가 수익을 포기하더라도 청년들의 ‘주거 사다리’를 확실히 놓아주겠다는 의지의 표현”이라고 강조했다.
‘합천형 신도시’로 소개된 역세권 개발 사업에 대해서는 더욱 구체적인 타임라인을 제시했다. 남부내륙철도 합천역 건립에 맞춰 추진되는 이 사업은 현재 기본계획 및 실시설계 용역이 진행 중이다. 박 국장은 “총사업비 1250억원이 투입되는 이 거대 프로젝트는 2029년 착공해 2031년까지 완료할 계획”이라고 말했다. 특히 주목할 점은 이곳에 들어설 ‘한수원 직원 사택 60호’다. 두무산 양수발전소 건설에 따른 한수원 직원들을 신도시로 유입시켜 지역 경제의 핵심 소비층으로 만들겠다는 복안이다. 또한 역세권 2지구 약 3만3000평 부지에는 단순한 주택뿐만 아니라 도로, 상하수도, 도시가스 관로 매설 등 완벽한 기반 시설 조성이 병행된다.
그는 행정 내부의 패러다임 전환을 다시 강조했다. 박 국장은 “과거에 시도하지 않았던 강력한 주거 정책은 비난을 받을 수도, 예산상의 어려움을 겪을 수도 있다. 하지만 인구 유출을 막고 전 세대가 살기 좋은 합천을 만드는 것은 지금 우리 세대가 해야 할 가장 시급한 시대정신”이라고 강조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