반도체 슈퍼사이클이 불러온 역대급 유동성이 대한민국 부동산 시장의 부의 서열을 재편하고 있다. 삼성전자와 SK하이닉스 임직원들이 손에 쥘 ‘인당 13억 원’ 규모의 성과급이 단순한 보너스를 넘어 서울 상급지의 신고가를 갈아치우는 강력한 ‘주거 진입 자금’으로 변모했기 때문이다.
◆ 입사 5년에 자산 8억 원... 서울 매수자 절반이 ‘3040’
14일 관련 업계에 따르면 삼성전자와 SK하이닉스 엔지니어들의 자산 축적 속도는 가히 압도적이다. 30대 초반에 입사해 5년 정도 근무한 대리·과장급의 경우, 연평균 1억 5000만 원 안팎의 총소득을 기록한다. 여기에 삼성전자의 무주택자 대상 5억 원 저리 대출 엔진이 결합하면 상황은 달라진다.
김학렬 스마트튜브 부동산조사연구소장은 “5년 동안 모은 현금 자산 약 3억 원에 사내 대출 5억 원을 더하면 가용 자산만 8억 원에 달한다”며 “여기에 SK하이닉스 사례처럼 인당 13억 원 수준의 성과급까지 더해지면, 30대 직장인이 단숨에 상급지 진입을 노릴 수 있는 ‘현금 부자’로 등극하게 된다”고 분석했다. 실제로 대법원 등기정보광장에 따르면 지난 1월 서울 집합건물 소유권 이전의 54.7%(1만 2098건)가 3040세대에서 발생했다.
◆ “분당 진입보다 잠실 셔틀이 빠르다”... 현장이 말하는 ‘북상 법칙’
이들의 상급지 이동을 가능케 하는 일등 공신은 기업들의 완벽한 통근버스 시스템이다. 직장인 커뮤니티 블라인드에서 SK하이닉스의 한 직원은 “오히려 분당은 판교IC에서 나와 이매부터 미금까지 정류장마다 서야 해서 더 오래 걸린다”며 “서울행 셔틀은 고속도로를 타고 바로 진입해 시간 차이가 거의 없다”고 전했다.
삼성전자 직원들 역시 사당·이수·도곡·잠실 등을 주요 거주지로 꼽으며 “셔틀이 워낙 잘 되어 있어 강남권이나 송파는 웬만하면 다 살 수 있다”는 분위기다. “셔틀 타면 지각 처리가 되지 않는다”는 특수한 사내 문화는 거리에 대한 심리적 장벽을 완전히 무너뜨렸다. 일터는 경기 남부에 두되, 삶의 터전은 인프라가 증명된 서울 상급지에 두려는 욕망이 현실화되는 배경이다.
◆ 재건축 호재와 유동성 결합... 잠실 60억·판교 18억 신고가
시장은 이미 실거래가로 응답하고 있다. 잠실 아시아선수촌(전용 151㎡)은 지난달 31일 60억 원에 거래되며 역대 최고가를 경신했다. 1986년 지어진 노후 단지임에도 재건축 기대감과 더불어 시장에 풀린 막대한 유동성이 신고가 경신을 이끈 원동력이 됐다는 분석이다.
특히 강남구와 송파구 등 상급지에서는 자본 축적이 견고한 40대 매수세가 뚜렷했다. 지난 1월 강남구의 40대 취득 건수(369건)는 30대의 약 두 배에 달했다. 부동산 업계 관계자는 “성과급 잭팟을 맞은 반도체 임원·부장급 등 고연봉 40대들이 재건축 호재가 있는 강남권 단지를 최적의 자산 피난처로 점찍고 있다”고 풀이했다. 판교 역시 지난 2월 판교원9단지(전용 84㎡)가 17억 8000만 원에 거래되며 이 같은 자금력을 증명했다.
◆ ‘의치한약수반도체’가 지탱하는 강남 하방 지지선
부동산 업계에서는 ‘의치한약수반도체’라는 신조어가 상징하듯, 삼성전자와 SK하이닉스 종사자들이 자산 시장의 새로운 주류로 등극했다고 평가한다. 자산 축적이 끝난 핵심 인력들이 성과급을 종잣돈 삼아 상급지로 진격하는 흐름은 하반기에도 계속될 전망이다.
한 부동산 업계 관계자는 “삼성전자와 SK하이닉스의 인당 13억 원 성과급은 부동산 시장에 엄청난 심리적 압박으로 작용할 것”이라며 “반도체 머니가 유입되는 마·용·성(마포·용산·성동)과 강남권의 주택 시장 지형도는 그 어느 때보다 견고해질 전망이다”라고 제언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