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고] 삼성노조 파업, 반도체 산업 ‘왝더독’ 되나

꼬리가 몸통을 흔든다(Wag the dog·왝더독). 지금 대한민국 경제의 심장부인 삼성전자에서 이 표현을 떠올리게 하는 장면이 펼쳐지고 있다. 삼성전자 노조가 성과급 상한 폐지 등을 두고 5월 총파업을 예고했다. 조합원 93%가 파업에 찬성했다. 단순히 한 기업의 노사 갈등으로 치부하기엔, 그 꼬리가 흔들고 있는 몸통의 무게가 너무나 무겁다.

우리는 역사의 교훈을 잊지 말아야 한다. 1970∼1980년대 세계 반도체 시장을 호령하던 미국이 제조 주도권을 동아시아로 넘겨주게 된 계기 중 하나는 비대해진 비용 구조와 경직된 노사관계였다. 치솟는 인건비와 잦은 파업 리스크를 감당하지 못한 결과, ‘제조 경쟁력 상실’이라는 뼈아픈 대가를 치러야만 했던 것이다.

김덕호 성균관대학교 국정전문대학원 겸임교수

현재 삼성전자가 처한 상황은 그때보다 엄중하다. 현재 미국은 반도체 지원법(CHIPS Act)을 통해 5년에 걸쳐 총 약 78조원을 집행 중이다. 중국도 과거 1·2차 펀드에 이어 최근 역대 최대 규모인 75조원의 3차 반도체 펀드를 출범시키며 국가적 총력전을 펴고 있다. 한 치 앞을 내다볼 수 없는 패권 다툼 속에서 내부의 분배 갈등으로 골든타임을 허비하는 것은 스스로 제조 강국의 지위를 포기하는 것이나 마찬가지다. 우리의 내분은 곧 맹추격하는 경쟁국들에게 시장 주도권이라는 몸통을 통째로 내어주는 결과로 귀결될 것이다.



이번 삼성노조의 파업 예고가 더욱 뼈아픈 이유는 우리 사회의 고질적 병폐인 노동시장 이중구조를 정면으로 자극하기 때문이다. 삼성전자의 보상 체계는 대한민국 산업계의 암묵적 표준이다. 노동시장 최상층에 위치한 대기업 노조의 요구가 일시적 호황을 빌미로 끝없이 확대될 때, 그 유무형의 비용 부담은 결국 피라미드 하단의 하청업체에 대한 단가 압박이나 고용 위축으로 전가될 수밖에 없다. 이는 노동시장 내 격차를 더욱 벌리고 상대적 박탈감을 증폭시키는 기폭제가 될 뿐이다. 단일 기업의 분배 투쟁이 국가 산업 생태계 전체의 임금 질서를 마비시켜서는 안 된다.

경제적 파급효과는 실물에만 그치지 않는다. 삼성전자는 코스피 시가총액의 25% 이상을 차지하는 한국 증시의 기둥이다. 특히 반도체는 24시간 365일 멈춰서는 안 되는 연속 공정 산업이다. 파업으로 공정이 단 며칠이라도 중단될 경우 발생하는 손실은 천문학적이며, 이는 곧 국민연금을 비롯한 수백만 개인 투자자들의 자산 손실로 직결된다. 꼬리가 국민 자산이라는 몸통에 치명상을 입히는 꼴이다.

권리에는 반드시 책임이 따른다. 일시적 초과이익을 명분으로 기업의 장기적 연구개발 투자 여력과 미래 경쟁력을 담보 잡는 행위는 노사 모두의 공멸을 부를 뿐이다. 삼성전자 노조는 지금의 투쟁이 산업 경쟁력과 국민 경제라는 거대한 몸통을 멍들게 하는 이기적 꼬리 흔들기가 아닌지 공동체적 관점에서 재고할 필요가 있다. 사측도 합리적인 보상안을 제시하되, 원칙을 저버리는 요구에는 타협하지 않도록 단호해야 한다.

대한민국 반도체는 이제 특정 기업만의 것이 아닌 국가 경제의 안보 자산이다. 글로벌 패권 경쟁의 파고 속에서 우리에게 필요한 것은 내부의 소모적인 출혈 경쟁이 아니라, 위기를 기회로 바꾸는 대승적 결단과 성숙한 노사 상생의 모델이다. 꼬리가 몸통을 흔드는 비극이 현실화되기 전에 노사 양측의 현명한 선택을 기대한다. 기업의 장기적인 투자 동력 확보와 기업의 지속가능성이라는 더 큰 목표를 바라보는 노사의 혜안이 그 어느 때보다 절실한 시점이다.

 

김덕호 성균관대학교 국정전문대학원 겸임교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