살인자의 정신/올스턴 체이스/김현우 옮김/글항아리/3만2000원
미국에서 유독 많은 영화·드라마로 만들어지는 사건이 있으니 ‘유나보머(Unabomber) 폭탄테러’다. 1978년 미국 시카고 일리노이대 주차장에서 소포폭탄이 처음 발견된 후 1995년까지 주요 대학과 항공업계를 겨냥한 연쇄 폭탄테러가 이어지면서 미국 사회에 큰 충격을 줬다. 범인의 정체는 더 큰 충격을 안겼다. 명문 하버드대에 16세에 입학하고 미시간대에서 수학 박사학위를 받은 뒤 버클리대 교단에 섰던 엘리트 테드 카진스키였다. 그는 폭탄테러를 멈추는 조건으로 자신의 선언문 ‘산업사회와 미래’를 주요 매체에 게재하라고 요구했다. 이 글의 문체를 알아본 친동생 데이비드가 FBI에 신고하면서 비로소 검거됐다.
서구 지성의 역사에서도 이 사건이 충격적이었던 것은 폭력이 사상 유포의 수단으로 동원되며 공론장의 토론 규범을 허물었고, 그의 기술 비판이 단순한 광기가 아니라 기존 산업사회 비판 전통과 맞닿아 있었기 때문이다. 동시에 그는 기술 비판 자체를 테러와 결합해 오염시켰다. 이후 급진적 반기술 담론은 유나보머식 폭력성과의 거리를 증명해야 하는 부담을 떠안게 됐다.
철학을 전공한 저자 올스턴 체이스는 이 사건의 근원을 하버드 시절로 거슬러 올라간다. 1959년 가을, 심리학 수업을 듣던 카진스키는 저명한 성격심리학자 헨리 머리 교수가 주도한 실험에 참가했다. 카진스키는 훗날 이 실험에서 ‘격렬하고 모멸적인’ 공격을 받았다고 회고했다. 저자는 머리의 지인 수십 명을 취재하고, 카진스키 변호인단 조사관들과 대화하고, 기록보관소 자료를 섭렵하는 2년간의 추적 끝에 이 실험이 카진스키에게 미친 구체적 영향을 분석한다. 이는 하버드가 한 학생에게 무엇을 했는가라는 더 큰 질문으로 이어진다.
배움을 좋아했던 한 사람이 학생과 교수로서 23년을 보내면서 점차 살인자로 변해가는 과정은 독자의 인식 체계를 뒤흔든다. 저자는 이를 통해 현대 엘리트 교육이 어떻게 인성을 왜곡하는지, 냉전 시대의 황폐한 전망이 어떤 부작용을 낳았는지 추적한다. 지식인이면서 살인자였던 카진스키. 저자는 이 두 사실을 잇는 연결 고리를 끝까지 쫓아간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