금융당국이 은행·보험업계 자본규제 합리화에 나선다. 금융회사가 실제 위험보다 과도하게 많은 자본을 쌓아두게 하는 규제의 비효율을 걷어내겠다는 취지다. 이렇게 확보한 99조원의 추가 자금은 생산적 분야와 중동 피해기업 지원 등을 위해 활용할 예정이다.
금융위원회·금융감독원은 16일 서울 중구 은행회관에서 제5차 생산적금융 대전환 회의를 열고 은행·보험업권 자본규제 합리화 방안을 발표했다.
우선 은행권을 대상으로 재발 가능성이 낮은 대규모 손실사건을 운영리스크로 3년 이상 인식했다면 산출에서 배제해주기로 했다. 그동안 은행들은 대형 금융사고가 발생하면 해당 손실액을 10년 동안 리스크로 반영해야 했다. 이는 은행의 보통주자본(CET1) 비율 하락으로 이어져 대출 여력을 위축시키는 원인이 됐다. 다만 충분한 재발방지 대책 마련 등 요건을 갖춰 당국의 심사를 받아야 한다. 홍콩 H지수 주가연계증권(ELS) 불완전판매의 경우 손실사건을 3년 이상 인식해야 한다는 점에서 대상에서 제외된다.
구조적 외환포지션 승인 대상을 해외 장기 지분투자(비연결 자회사), 해외점포 이익잉여금까지 확대한다. 구조적 외환포지션은 환율 변동에 따른 자본비율 변동성을 줄이기 위한 포지션으로, 시장리스크 산출에서 제외된다. 환율 급등으로 은행이 대출을 조이는 부작용을 방지하겠다는 것이다.
은행이 신용위험 변별력이 저하된 신용평가모형을 재개발할 경우엔 신속하게 심사한다. 최신 신용평가모형을 통해 은행이 성장성 있는 기업 선별능력을 높일 수 있도록 지원하기 위해서다.
보험권에 대해선 위험액 산정 방식을 합리화하는 데 방점을 찍었다.
국민성장펀드 등 정책프로그램 투자 시 위험계수를 20% 이하로 경감한다. 기존에는 비상장주식에 투자하면 투자금의 49%를 위험액으로 잡아야 했다. 또 장기보유 특례(위험계수 20%) 적용대상에 비상장주식·펀드를 포함해 정책프로그램에 10년 이상 투자계획을 수립하면 특례가 적용되도록 했다.
적격 벤처투자에 대한 위험계수도 49%에서 상장주식 수준인 35%로 경감한다. 기존에 도로, 항만 등 공공서비스 목적의 전통적인 인프라에 적용했던 ‘인프라 특례’ 범위에 신재생에너지, 인공지능(AI) 기반시설 등 비전통적 인프라까지 포함해 위험계수 20%를 적용한다.
대출·채권 등 신용위험액 감소를 위한 ‘매칭조정’ 제도도 활성화한다. 현재는 자산과 부채의 현금흐름이 고정되면서 100% 매칭될 것을 요구해 미스매칭률이 0%지만, 앞으로는 변동금리 자산에 미스매칭률 10% 이내에서 매칭조정을 허용한다. 국채보다 높은 자산 수익률을 할인율로 활용함에 따라 부채가 감소해 지급여력비율(K-ICS)이 개선될 수 있다.
정부의 일부보증 인프라 대출에서 해당 보증분은 무위험(위험계수 0)으로 분류하고, 기존에 과도했던 레버리지펀드와 블라인드펀드 관련 위험액 측정방식 규제도 완화한다.
보험사가 요구자본을 산출할 때 자체 통계를 활용한 내부모형을 도입하도록 한다. 보험부채 할인율에 적용되는 유동성 프리미엄 산출 시엔 수익증권 중 금리부자산을 포함한다. 유동성 프리미엄이 올라가면 보험부채 할인율이 높아져 보험부채가 감소하는 효과가 있다.
보험권의 주택담보대출 관련 자본 적립 기준은 강화한다. 주택담보대출비율(LTV) 60∼80% 구간의 주담대 위험계수를 은행권 수준에 맞춰 기존 3.5%에서 4.0%로 상향 조정한다.
금융당국은 이 같은 제도 개선을 통해 은행권 74조5000억원, 보험권 24조2000억원 등 총 98조7000억원의 추가 자금공급 여력을 확보할 수 있을 것으로 추산했다. 이억원 금융위원장은 “이번 조치는 일종의 ‘정책 추경 조치’”라며 “추가 자금공급 여력이 위기 극복과 우리 경제 재도약의 마중물이 될 것”이라고 기대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