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계부를 정리하다가 예상치 못한 숫자를 마주한다. ‘경조사비’ 500만원. 몇 년간 결혼식마다 빠지지 않고 보냈던 축의금이 쌓인 결과다. 하지만 정작 돌아올 결혼은 없다.
서울 서초구에 거주하는 직장인 이모(34) 씨는 이 금액을 다시 들여다보기 시작했다. “축의금만 500만원… 이걸 그냥 끝낼 수는 없겠더라고요.” 결국 그는 다음 달 지인들을 초대해 ‘비혼 파티’를 열기로 했다. 모바일 초대장에는 계좌번호도 함께 담았다.
결혼이 선택지가 되면서, 축의금은 더 이상 ‘언젠가 돌아올 돈’이 아닌 지출로 남는 구조가 됐다. 일부 2030 세대 사이에서는 이를 ‘정리해야 할 비용’으로 인식하는 시선도 나타난다. 비혼 파티와 독신 선언식처럼 기존 결혼식 형식을 변형한 사례도 눈에 띈다.
◆결혼이 보편 경로에서 이탈했다
결혼 지표는 이미 방향을 바꿨다. 17일 국가데이터처 국가통계연구원 ‘청년 삶의 질 2025’ 보고서에 따르면 2024년 기준 30~34세 남성 미혼율은 74.7%, 여성은 58.0%다. 청년 남성 10명 중 7명 이상이 결혼하지 않은 상태다.
2000년과 비교하면 변화 폭은 더 뚜렷하다. 같은 연령대 미혼율은 남성은 약 3배, 여성은 5배 가까이 증가했다.
초혼 연령도 크게 높아졌다. 남성은 33.9세, 여성은 31.6세로 20여 년 전보다 각각 4년 이상 늦어졌다.
20대에서 결혼을 ‘반드시 해야 한다’ 또는 ‘하는 것이 좋다’고 답한 비율도 2014년 51.2%에서 2024년 39.7%로 낮아졌다.
결혼은 더 이상 자연스럽게 이어지는 과정 아닌, 선택해야 하는 이벤트로 바뀌고 있다. 문제는 여기서 끝나지 않는다. 결혼을 하지 않아도, 비용은 계속 발생한다.
◆2억원 청구서와 10만원의 압박
청년층의 결혼 지연 배경으로는 비용 부담이 주요 요인 중 하나로 거론된다. 하나금융연구소 조사에 따르면 최근 3년 내 결혼한 신혼부부의 결혼 비용은 약 2억원 수준으로 나타났다. 주거비와 예식 비용이 동시에 오르면서 결혼은 대규모 자본이 필요한 이벤트로 변했다.
이와 별개로 경조사비 지출은 이어진다. 신한은행 조사에 따르면 지인 결혼식에 직접 참석할 경우 10만원을 낸다는 응답이 67.4%로 가장 많았고, 참석 기준 평균 축의금은 11만원이었다.
2억원이라는 진입 비용과 10만원이라는 반복 비용이 동시에 청년층을 압박하는 구조다.
물가 상승으로 5만원권 한 장으로는 눈치가 보이고, 10만원은 생활비에 직접적인 부담이 된다. 축의금이 ‘언젠가 회수되지 않는 비용’처럼 인식되는 배경이다.
◆축하와 비용 사이, 흔들리는 관계
이 틈에서 등장한 것이 비혼 파티와 독신 선언식이다. 온라인상에서는 모바일 초대장에 계좌번호를 함께 담는 사례도 확인된다.
반응은 엇갈린다. “그동안 낸 돈을 생각하면 자연스러운 흐름”이라는 시각이 있는 반면, “축하하러 갔다가 비용만 지출하는 느낌”이라는 반응도 적지 않다.
축의금이 관계를 확인하는 장치였던 시대에서, 이제는 비용을 계산하게 만드는 요소로 받아들여지는 분위기도 읽힌다.
이는 오랜 기간 유지돼 온 상부상조 중심의 경조사 문화에 균열이 생기고 있음을 보여주는 신호로 해석된다.
이번 주말에도 모바일 청첩장이 하나 더 도착한다. 습관처럼 송금 버튼을 누르려다 잠깐 망설이게 된다. 10만원을 입력하기 전, 잔액보다 먼저 ‘이 관계가 앞으로도 이어질지’를 떠올리게 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