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왕 국빈 방미 열흘 앞두고… ‘총리 사퇴론’ 불거진 영국

갈수록 확산하는 ‘엡스타인 파일’ 논란
야권 “스타머 총리 책임지고 물러나야”
찰스 3세에 불똥 튈까 英 왕실도 ‘곤혹’

찰스 3세 영국 국왕의 국빈 방미가 약 10일 앞으로 다가온 가운데 미국 성범죄자 제프리 엡스타인(2019년 감옥에서 사망)을 둘러싼 논란이 또 영국 정부를 강타했다. 과거 엡스타인과 가깝게 지낸 피터 맨덜슨(72)을 주미 영국 대사로 임명한 키어 스타머 현 총리를 향해 ‘모든 책임을 지고 물러나야 한다’는 주장이 다시 제기된 것이다. 찰스 3세의 친동생 앤드루 마운트배튼윈저(66)도 엡스타인 스캔들에 연루된 만큼 찰스 3세의 미국 방문은 순탄치 않을 전망이다.

키어 스타머 영국 총리가 16일(현지시간) 다우닝가 10번지 총리 관저에서 사회관계망서비스(SNS) 업체 관계자들과 만나 온라인 공간에서 어린이들을 보호할 방안을 주제로 대화하고 있다. AFP연합

16일(현지시간) AP 통신에 따르면 영국 야당 지도자들은 맨덜슨과 엡스타인의 관계를 들어 스타머 총리에게 거듭 사임을 촉구했다. 지난 2024년 12월 스타머 총리에 의해 주미 대사로 지명된 맨덜슨은 이듬해인 2025년 9월 전격 해임됐다. 과거 이메일을 통해 수시로 엡스타인과 접촉하고 심지어 성범죄 혐의를 받는 엡스타인에게 응원 메시지까지 보낸 사실이 드러났기 때문이다.

 

그간 스타머 총리는 맨덜슨의 대사 임명은 적법 절차에 따라 이뤄졌다고 주장했다. 엡스타인의 관계를 묻는 질문에 맨덜슨이 “전혀 무관하다”는 거짓말을 했다고도 했다. 스타머 총리 또한 맨덜슨에게 감쪽같이 속아넘어갔다는 뜻이다. 그런데 최근 영국 일간 ‘가디언’은 주미 대사 인선 과정에서 정부가 스타머 총리에게 “맨덜슨은 보안 심사를 통과하지 못해 대사 자격이 없다”고 보고했다는 기사를 게재했다. 이것이 사실이라면 스타머 총리는 맨덜슨이 부적격자라는 사실을 알면서도 그의 주미 대사 임명을 강행한 셈이 된다.

 

제1야당인 보수당 케미 바데녹 대표는 “스타머 총리는 틀림없이 사임하게 될 것”이라고 꼬집었다. 소수 야당인 자유민주당 에드 데이비 대표 또한 “스타머 총리가 영국의 의회 의원들과 대중에게 거짓말을 해왔다면 물러나야 한다”고 지적했다.

2019년 감옥에서 스스로 목숨을 끊은 미국의 억만장자 성범죄자 제프리 엡스타인(사망 당시 66세). 키어 스타머 영국 총리는 그가 임명한 피터 맨덜슨 전 주미 영국 대사가 엡스타인의 절친이었다는 이유로, 또 찰스 3세 영국 국왕은 그의 친동생 앤드루 마운트배튼윈저(전 왕자)가 역시 엡스타인과 가까웠다는 이유로 나란히 곤욕을 치르고 있다. AP연합

이 와중에 찰스 3세는 오는 27일부터 30일까지 나흘 일정으로 미국을 방문한다. 지난 2025년 9월 찰스 3세의 초청으로 영국을 국빈 방문해 극진한 환대를 받은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이 답례로 찰스 3세와 부인 커밀라 왕비의 국빈 방미를 초대한 데 따른 것이다. 마침 올해는 미국이 영국 식민지에서 벗어나 독립을 선언한 1776년 이후 250주년이 되는 해라는 점에서 영국 국가원수의 미국 방문은 의미가 매우 각별하다.

 

하지만 영국 국내 여론은 싸늘하기만 하다. 미국의 이란 침략이 국제법 위반이란 지적이 끊이지 않을뿐더러 트럼프가 “이란 전쟁 수행을 돕지 않는다”며 동맹인 영국을 비난하고 조롱했기 때문이다. 영국인들 사이에는 ‘지금 같은 시기에 찰스 3세가 미국에 가서 트럼프 비위나 맞추는 것은 무척 굴욕적인 일’이라는 생각이 널리 퍼져 있다.

 

더욱이 미국의 야당인 민주당 의원들도 찰스 3세의 방미를 벼르고 있다. 찰스 3세의 친동생 앤드루 마운트배튼윈저가 엡스타인 스캔들에 연루된 만큼 영국 왕실이 직접 성범죄 피해자들과 만나 사과해야 한다는 취지에서다. 애초 민주당은 트럼프를 엡스타인 스캔들의 핵심 인물로 지목했으나, 트럼프와 엡스타인의 은밀한 관계를 보여주는 정황은 아직 드러난 것이 없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