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마포에서 이란전쟁 갑론을박…“호르무즈해협 힘 깨닫는 계기됐다” [이주의 워싱턴]

워싱턴 ‘세마포 월드 이코노미 서밋’
전문가·당국자 이란 전쟁 갑론을박
“이란은 호르무즈해협 힘 깨닫고
에너지는 안보·신뢰로 시장 재편”
스페인 장관 “중견국 연대도 중요”
이주의 워싱턴 - 세계의 시선이 쏠린 워싱턴의 한 주, 핵심과 맥락을 짚습니다.

 

이번주 미국 워싱턴에서 열린 ‘세마포(Semafor) 월드 이코노미 서밋’에선 휴전 진행 중인 이란전쟁이 향후 세계 정치와 경제에 어떤 영향을 미치는지에 대해 각계 전문가들이 의견을 피력했다. 이 행사는 미국 매체 ‘세마포’가 주최하는 글로벌 경제·정책 컨퍼런스로, 경제·정치 분야의 전문가, 주요 기업 최고경영자(CEO), 전·현직 당국자들이 모여 글로벌 현안을 논의한다. 때마침 진행 중인 이란 전쟁과 인공지능(AI)이 가장 자주 언급된 화제였다.

지난 13일(현지 시간) 호르무즈 해협을 접한 이란 케슘섬 항구 시설물들이 현지 목격자들이 미국-이스라엘의 소행이라고 전한 공습으로 파괴돼 있다. AP연합뉴스

이란 전쟁과 관련 세마포에서 오간 발언들을 종합하면 전문가들은 이란 전쟁의 여파가 세계 정치와 경제에 미칠 영향이 지속될 것이라며 촉각을 모으고 있다. 호르무즈해협은 이란의 새로운 ‘무기’로 떠올랐으며, 에너지시장의 구조를 재편할 도화선이 될 수 있다. 이란전쟁 협조 여부로 미국과 ‘껄끄러워진‘ 스페인은 미국과의 관계 개선을 모색하면서도 ‘중견국 연대’ 필요성을 느끼고 있다. 이란 전쟁과 관련해 세마포에서 오간 주요 언급을 소개한다.

아모스 호흐슈타인 전 미국 백악관 에너지·안보 보좌관. 세마포 제공

◆“이란, 전쟁으로 호르무즈해협 힘 깨달아”

 

아모스 호흐슈타인 전 미국 백악관 에너지·안보 보좌관(TWG 글로벌 파트너)은 세마포 행사에서 16일(현지시간) “전쟁이 어떤 방식으로 끝나든, 이란은 호르무즈 해협을 통제하게 될 것”이라며 “한번 병 속에서 나온 정령은 다시 들어가지 않는다”고 말했다. 그는 “최종 종전 문서에 무엇이 담기든 상관없이, 이란은 이제 미국과 지역 국가들에 대해 자신들이 협상 지렛대를 갖고 있다는 것을 알게 됐다”며 “그들은 그 지렛대를 유지하려 할 것이고, 절대 포기하지 않을 것”이라고 강조했다. 이란이 이번 전쟁을 통해 호르무즈해협 봉쇄가 가진 협상력을 확실히 알게 됐다는 얘기다.

 

◆“에너지시장, 안보·신뢰가 핵심 변수로 재편될 것”

 

파티 비롤 국제에너지기구(IEA) 사무총장은 14일 이란 전쟁이 세계 에너지 지도를 실질적으로 다시 그리게 될 것이라고 밝혔다. 그는 “해협이 다시 열리더라도 우리는 이전 상태로 돌아가지 않을 것”이라고 말했다. 1970년대 에너지 위기가 원자력 발전을 확대하고, 자동차 산업 구조를 변화시켰던 것, 2022년 러시아의 우크라이나 침공으로 재생에너지 급성장을 맞았던 것처럼 이번 사태로 전 세계적으로 에너지 시장에 구조적 변화가 생길 것이라는 전망이다. 그는 “문제는 어떤 형태의 반응이 나타날 것인가”라고 말했다.

 

비롤 총장은 전쟁으로 에너지 안보·신뢰가 핵심 변수로 부상할 것으로 봤다. 더 많은 국가들이 에너지 안보를 최우선 과제로 삼게 될 것이며, 불시의 공급 중단 가능성과 에너지의 정치 무기화 가능성이 무역에 ‘위험 프리미엄’을 추가하게 될 것이라는 얘기다.

카를로스 쿠에르포 스페인 경제장관. 세마포 제공

◆스페인 장관 “대미 관계 소중하지만 중견국 연대도”

 

세마포 행사에는 트럼프 행정부와 이란 전쟁으로 각을 세운 스페인의 고위당국자가 참석해 눈길을 끌었다. 스페인은 이번 전쟁에서 미국의 영공 통과권과 주둔권을 인정하지 않아 트럼프 대통령과 갈등을 빚은 바 있다.

 

카를로스 쿠에르포 스페인 경제장관은 이란 전쟁을 둘러싼 양국 간 이견과는 별개로 미국과의 무역 관계는 분리되어 유지되어야 한다고 밝혔다. 쿠에르포 장관은 “우리는 국제법을 벗어난 일방적인 전쟁에 참여하지 않겠다는 입장을 처음부터 분명히 했다”며 “이 문제는 미국과의 경제적 양자 관계와는 매우, 아니 완전히 다른 논의”라고 강조했다. 쿠에르포 장관은 “미국과의 관계는 우리가 소중히 여기고 반드시 지켜야 할 관계”라고도 말했다.

 

쿠에르포 장관은 한편으론 글로벌 분열이 심화되는 상황에서 마크 카니 캐나다 총리가 제안한 ‘중견국 연대’ 구상에 스페인이 대응할 준비가 되어 있다고 밝혔다. 카니 총리는 트럼프 대통령과 통상 문제로 갈등을 빚는 중 세계지식포럼(다보스포럼)에 참석해 ‘중견국 연대’ 구상을 밝힌 바 있다. 중견국이 모여 강대국의 일방주의에 맞서야 한다는 취지다. 쿠에르포 장관은 “스페인과 캐나다의 경제 규모를 고려할 때 양국 간 무역 규모는 지금보다 훨씬 커저야 한다”며 “우리는 그 잠재력을 어느정도 과소평가해왔다”고 말했다.

캐빈 헤싯 미 국가경제위원회(NEC) 위원장. 세마포 제공

◆트럼프 행정부 당국자, “석유 증산”·“세계경제 회복력 높아”

 

세마포 행사에는 트럼프 행정부 당국자들도 참석해 이란 전쟁에 대한 세계의 우려를 일축했다. 더그 버검 내무장관은 미국의 석유·가스 기업들이 규제 절차를 완화해 궁극적으로 생산을 늘리는 방안에 대해 한시적으로 수용할 의지가 있다고 밝혔다. 그는 자신과 크리스 라이트 에너지부 장관이 에너지 업계 경영진들과 최근 약 45분간 회동을 갖고 생산 확대 방안을 논의했다며 “기업들은 지금이 투자할 시점이라는 가격 신호를 받고 있기 때문에 모두 적극적으로 나서고 있다”고 말했다. 트럼프 대통령은 취임 직후부터 기업들에게 석유 증산을 꾸준히 촉구해온 바 있다.

 

케빈 헤셋 미국 국가경제위원회(NEC) 위원장은 이란 전쟁이 연말까지 이어질 경우 세계 경제가 침체에 빠질 수 있다는 우려를 일축했다. 켄 그리핀 시타델 창업자가 호르무즈해협이 6∼12개월 봉쇄될 경우 글로벌 경기 침체가 올 수 있다고 언급한 것을 겨냥한 것이다. 그는 “글로벌 경제가 과거보다 훨씬 더 회복력이 강해졌다는 방대한 학문적 연구가 있다”며 2000년대의 유가 충격이 1970년대 오일쇼크와 비교해 경제에 미친 영향을 분석한 2007년 논문을 예로 들었다. 그는 “현재 중요한 질문은 올해 경제가 강할 것인가인데, 우리는 매우 자신 있다”며 “데이터에서 매우 긍정적인 신호가 많이 보이고 있다”고 강조했다. 그는 올해 미국 국내총생산(GDP) 성장률이 4~5%에 이를 수 있다고 전망했다.

존 케리 전 미 국무장관. 세마포 제공

◆존 케리, “이란 전쟁, 2015년 합의와 유사하게 끝날 것”

 

버락 오바마 전 대통령의 국무장관이었던 존 케리 전 국무장관은 세마포에서 이란 전쟁이 결국 협상을 통한 합의로 마무리될 가능성이 높으며 형태는 2015년 핵합의와 크게 다르지 않을 것이라고 전망했다. 케리 전 장관은 2015년 이란핵합의(JCPOA) 협상에 직접 참여한 바 있다. 이 합의는 이란의 우라늄 농축을 15년 동안 중단하기로 했는데, 트럼프 행정부는 20년으로 이란에게 제안한 것으로 알려져 있다. 그는 트럼프 대통령의 호르무즈해협 역봉쇄 결정이 이란을 협상 테이블로 다시 끌어들이는 계기가 될 것이라고 내다봤다. 트럼프 대통령은 JCPOA를 일방 탈퇴함으로써 대이란 관계에 불을 붙인 바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