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교황은 몇 개 사단이나 거느리고 있소?” [김태훈의 의미 또는 재미]

1945년 제2차 세계대전이 끝나고 양대 초강대국인 미국과 소련(현 러시아) 사이에 동서 냉전이 본격화했다. 미·소 간의 핵전쟁 위험이 극에 달했던 1980년대 초중반 교황청이 국제사회의 핵무기 경쟁 완화를 이끈 것은 널리 알려진 사실이다.

 

1982년 교황 요한 바오로 2세(1978∼2005년 재위)는 ‘핵무기 보유국들이 서로 검증 가능한 방식으로 군축을 해야 한다’는 취지의 강령을 채택했다. 1989년 교황과 만난 미하일 고르바초프 소련 공산당 서기장은 그 직후 소련 국민에게 종교와 양심의 자유를 보장하는 내용의 법률을 제정했다. 이 조치는 몇 년 뒤 냉전 종식과 소련 해체라는 대변혁으로 이어졌다는 평가를 받는다.

이오시프 스탈린(1879∼1953) 전 소련 공산당 서기장. 그는 2차대전 도중 가톨릭 교황의 권위를 부정하며 “교황에겐 몇 개 사단이나 있소”라는 냉소적 질문을 던진 것으로 전해진다. 세계일보 자료사진

2022년 2월 러시아의 우크라이나 침략 후 교황 프란치스코(2013∼2025년 재위)는 블라디미르 푸틴 러시아 대통령을 향해 “우크라이나 침공과 전쟁을 멈추라”고 촉구했다. 전쟁이 2년을 넘긴 2024년 3월 이번에는 우크라이나를 향해 “백기 들고 협상할 용기가 있는 이가 진짜 강한 사람”이라고 호소했다.

 

이에 볼로디미르 젤렌스키 우크라이나 대통령이 “우리보고 백기 들고 항복하라는 얘기냐”며 항의해 국제적 논쟁으로 비화하기도 했다. 교황의 발언은 ‘우크라이나 영토 보전도 물론 중요하지만 일단 국민 목숨부터 살리는 게 먼저 아니겠느냐’는 뜻이었을 것이다.

 

현 교황 레오 14세(2025년 즉위)는 가톨릭 역사상 최초의 미국인 교황이다. 미국은 5300만명가량의 가톨릭 신자를 보유한 만큼 교황을 배출할 자격이 충분하다고 하겠다. 그럼에도 이제야 미국인 교황이 탄생한 것은 경제력과 군사력 둘 다 세계 최강인 미국이 교황청까지 장악할 경우 혹시나 생겨날 수 있는 부작용을 우려한 결과로 풀이된다.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왼쪽)과 가톨릭 역사상 최초의 미국인 교황인 레오 14세. 교황이 미국·이란 전쟁을 들어 트럼프를 ‘평화의 파괴자’로 지목하자 트럼프는 교황을 겨냥해 “범죄에 나약하고 외교는 형편없다”는 폭언을 퍼부었다. 게티이미지

역시나 올해 들어 미국인 교황과 미국 대통령의 관계는 최악으로 치닫고 있다. 교황이 미국의 이란 침공 등 팽창적 대외 정책을 비판했기 때문이다. 도널드 트럼프 대통령은 교황을 겨냥해 “범죄에 나약하고 외교는 형편없다”는 폭언을 퍼부었다. 요즘 미국에선 프랑스가 유럽 최강국이던 시절 교황도 프랑스 국왕의 지배를 받은 ‘아비뇽 유수’(1309∼1378)가 새삼 재평가를 받고 있다는 후문이다.

 

2차대전 도중인 1944년 모스크바를 찾은 윈스턴 처칠 영국 총리는 훗날 회고록에서 이오시프 스탈린 소련 공산당 서기장으로부터 “교황은 휘하에 몇 개 사단이나 거느리고 있소”라는 질문을 받았다고 회상했다. ‘소련이 가톨릭 국가인 폴란드 그리고 바티칸 교황청과 잘 지내는 것이 좋을 것’이라는 처칠의 충고에 스탈린이 코웃음을 치며 그렇게 대꾸했다는 것이다. 아마도 스탈린은 전쟁의 와중에 소련이 필요로 하는 것은 강력한 군대일 뿐 종교 지도자의 축복 따위가 아니란 뜻에서 던진 말일 것이다. 이란과 전쟁 중인 미국에 회의적인 교황을 대하는 트럼프의 싸늘한 시선이 80여년 전 스탈린의 그것과 놀랍도록 닮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