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금은 공동체·연대 이야기가 더 절실한 시대”

‘빌리 엘리어트’ 연출가 스티븐 달드리

5년 만에 4번째 시즌… ‘거장’ 첫 방한
“산업화 이룬 韓, 英 탄광촌과 닮은꼴
빌리는 가족 아닌 공동체 다룬 서사”

무자비한 구조조정이 단행되던 1980년대 영국 탄광촌. 우연히 발레를 접한 소년이 가족과 사회의 편견에 맞서 자신의 재능과 꿈을 펼쳐나가는 영화·뮤지컬 ‘빌리 엘리어트’를 만든 연출가 스티븐 달드리가 한국에 왔다. 5년 만에 네 번째 시즌을 시작한 자신의 작품을 응원하기 위해서다. 첫 장편영화 ‘빌리 엘리어트’(2000)로 이름을 알린 후 연극·영화에서 명작을 여럿 만든 거장의 첫 방한이다.

영화·뮤지컬 ‘빌리 엘리어트’의 연출가 스티븐 달드리. “우리가 더 파편화될수록 사람들은 오히려 함께 모여 음악과 춤, 연극과 이야기를 경험하고 싶어 한다”며 공동체와 그 속의 연대가 지닌 중요성을 강조한다. 신시컴퍼니 제공

13일 서울 종로에서 기자들과 만난 달드리는 “오랫동안 한국에 꼭 오고 싶었다. 그런데 한 번도 기회가 닿지 않았다. 전적으로 일 때문이었다”며 “한국에 대해 많이 안다고 할 수는 없지만, 그래도 알고 있는 한 가지는 전쟁 이후 한국이 놀라울 만큼 성공적이고 매우 빠른 산업화를 이뤘다는 점”이라고 말했다.

“그런 여러 산업적 이동과 단계들을 거쳐 오는 과정은 대단히 성공적이기도 했지만, 동시에 어떤 노동 영역들은 곧바로 불필요해지기도 했다는 뜻이기도 하죠. (공동체의 해체를 다루는) ‘빌리 엘리어트’는 한국에서도 울림을 가질 수 있겠다고 생각합니다.”



특히 영화 개봉 5년 후 뮤지컬로 ‘빌리 엘리어트’를 옮기면서 달드리는 분열을 치유하려는 탄광촌 공동체의 노력에 더 많은 초점을 맞췄다. 그는 “빌리 한 사람이나 그 가족만의 이야기가 아니라, 실제로는 공동체 전체의 이야기를 하고 싶었다. 그것이 뮤지컬을 만든 분명한 목표 가운데 하나였다”고 말했다.

영국을 대표하는 이 연출가는 늘 공동체의 균열과 살아남은 연대를 집요하게 포착해왔다. 영화 ‘디 아워스’(2002)에선 서로 다른 시대의 여성들을 통해 정서적 연대를 더듬었고 ‘더 리더’(2008)는 전후 독일 사회가 짊어진 죄책과 기억의 문제를 개인 관계 속으로 끌어들였다. 드라마 ‘더 크라운’(2016∼)에선 왕실이라는 제도를 단순한 권력 구조가 아니라 국가와 가족, 전통과 의무가 충돌하는 거대한 공동체의 장으로 다뤘다. 그처럼 ‘공동체’를 늘 다루는 것에 대해 달드리는 “공동체가 함께 모이는 이야기, 동료들이 함께 모이는 이야기는 지금 더욱 들을 가치가 있다고 생각한다”고 설명했다.

“점점 더 서로에게서 고립되고 공동체라고 상상해온 것들이 무너지는 시대이지만 사람들은 극장에 가고 싶어 합니다. 사람들이 함께 모여 무언가를 보고 함께 경험할 수 있을 때, 그 경험은 오히려 더 중요해지고 더 강력해지고 있다고 생각합니다. 우리가 더 파편화될수록 사람들은 함께 모여 음악과 춤, 연극과 스토리텔링을 경험하고 싶어 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