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동기의시대정신] 2500년 전 이스라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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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사입력 2026-04-20 23:34:56 기사수정 2026-04-20 23:34:56
오페라 ‘나부코’ 속 노예들 합창은 고향 잃은 고대 히브리인의 슬픔 세계에 한이 없는 민족은 없지만 물고 물리는 역사 떠올리니 처연
기원전 539년, 페르시아의 키루스 대왕이 바빌론을 점령했다. 그는 곧바로 칙령을 내려 바빌론에 억류된 여러 민족에게 신앙 회복과 귀향을 허락했다. 수만 명의 히브리인이 반세기 만에 예루살렘으로 돌아갔다. 구약성경은 이 이방인 왕을 “야훼의 목자”, “기름 부음 받은 자”라 부른다. 히브리 전통에서 극히 이례적인 예우다. 그 페르시아가 지금의 이란이다.
지난 11일, 세종문화회관 무대에 베르디의 오페라 ‘나부코’가 올랐다. 나부코는 예루살렘을 함락하고 히브리인을 포로로 끌고 간 바빌로니아의 군주, 성경 속 느부갓네살 왕의 이탈리아식 이름이다. 극은 권력을 둘러싼 욕망과 비틀린 사랑, 신을 자처한 왕의 오만과 파멸이 맞물리는 구조다. 그러나 이 거대한 서사에서 극의 중심을 붙잡는 이는 따로 있다. 무대 위를 배경처럼 채우고 있는 이름 없는 히브리인들이다.
김동기 국가미래연구원 연구위원 전 KBS PD
백미는 단연 3막의 엔딩 ‘히브리 노예들의 합창(Va, pensiero)’이었다. “가거라 상념이여, 금빛 날개를 타고. 가서 내려앉아라, 저 비탈과 언덕 위에. 따스한 흙냄새와 고향의 산들바람….” 고요하던 객석이 일렁이기 시작했다. 무대 아래 객석 통로로 베일을 두른 이들이 그림자처럼 걷고 있었다. 그들의 노래와 손에 든 촛불의 너울이 바로 곁을 스쳤다. “오 이토록 아름다운, 잃어버린 나의 조국” 대목에 이르자 코끝이 시큰했다. 이 히브리 민족이 지금의 이스라엘이다.
고향을 잃은 고대 히브리인의 슬픔은 성경 시편 137편에 또렷이 남아 있다. “우리는 바빌론 강가에 앉아 시온을 기억하며 울었다.” 베르디는 이 구절에서 극의 모티브를 길어 올렸다. 훗날 팝 그룹 보니 엠이 부른 ‘리버스 오브 바빌론(Rivers of Babylon)’의 가사도 여기에서 왔다. 70년대 말 디스코 열기 속에 그저 신나게 따라 부르던 그 노래다.
2500년. 사막 위 모래알처럼 아득한 시간이 흘렀다. 관대함을 자랑했던 페르시아는 신정 체제 아래 극도로 폐쇄적인 나라가 되었다. 나라 잃은 설움에 울던 히브리인들은 이제 그 설움을 타민족에게 되물리는 역설에 놓여 있다. 오페라는 히브리인의 해방을 바빌로니아 왕 나부코의 결단으로 묘사하지만, 역사가 전하는 이야기는 다르다. 그들을 고향으로 돌려보낸 것은 바빌론을 정복한 페르시아였다. 그리고 현재 이란과 이스라엘은 전쟁 중이다. 한때 구원자와 피구원자였던 이들이 가장 날 선 적이 되었다.
도무지 한쪽 편에 설 수 없는 전쟁이다. 시위대를 짓밟고 자유를 옥죄는 이란 체제를 지지할 순 없다. 그러나 민간인 피해를 외면한 이스라엘의 군사 행동 또한 정당화될 수 없다. 트럼프의 언사는 참담하다. “이란을 석기시대로 되돌려놓겠다.”, “문명 전체를 지워버리겠다.” 250년 역사를 가진 나라의 대통령이 수천 년 문명을 향해 내뱉을 수 있는 말인가. 협상과 반목이 오가는 사이 무고한 생명들이 꺼져간다. 워싱턴DC에 개선문을 올리겠다는 호언 앞에 그저 망연할 뿐이다. 내 앞의 선율은 이토록 처연하고 아름다운데, 자꾸만 ‘아우슈비츠 이후 서정시를 쓰는 야만’이 된 듯 죄스럽다.
나부코가 초연된 1842년, 밀라노는 오스트리아 제국의 지배 아래 있었다. 나폴레옹 전쟁 이후 민족주의가 들불처럼 번지던 때였다. 프랑스·스페인·오스트리아 등 열강의 통치 아래 통일된 나라를 갖지 못했던 이탈리아인들은, 자신의 설움을 히브리인의 노래에 투영했다. 앙코르가 터져 나왔다. 8회 예정이었던 공연이 그해에만 57회 무대에 올랐다.
이후 이탈리아 전역에 “비바 베르디(Viva VERDI)”라는 낙서가 번졌다. ‘이탈리아의 왕 비토리오 에마누엘레(Vittorio Emanuele Re dItalia)’의 이니셜을 숨겨 적은 것이다. 작곡가의 이름이 곧 통일운동(리소르지멘토)의 함성이 된 셈이다. 결국 1861년, 이탈리아 왕국이 선포되고 비토리오 에마누엘레 2세가 초대 국왕으로 즉위했다. 바빌론 강가의 절망이 베르디를 거쳐 이탈리아의 희망이 되었다. 40년 뒤 베르디가 세상을 떠났을 때, 밀라노 시민 30만명이 거리로 나와 그의 운구 행렬을 배웅했다. 오늘날 히브리 노예들의 합창은 이탈리아 제2의 국가로 불린다.
노래의 후일담이 이쯤에서 끝났으면 참 좋았을 것 같다. 하지만 우리는 안다. 히브리인의 노래에 기대어 약자의 슬픔을 나누고 통일의 꿈을 키웠던 이탈리아가 100년 뒤 무솔리니의 파시스트 정권을 낳았다는 걸. 나치 독일과 결탁해 그 히브리인들을 아우슈비츠로 보냈다는 걸.
어릴 땐 ‘한의 민족’이라 하여 한국이 세계에서 제일 슬픈 민족인 줄 알았다. 그런데 세계로 눈을 돌려보니 한이 없고 슬픔이 없는 민족이 없다. 구원자가 적이 되고, 피해자가 가해자가 된다. 포로였던 자가 정복자가 되고, 해방자였던 자가 압제자가 된다. 켜켜이 쌓아 올린 문명도, 영혼을 울리는 선율도 이 역설을 끊어내지 못했다.
공연장을 나서며 본 광화문의 봄밤이 너무나 평온하고 찬란해 오히려 낯설었다. 역사에서 배울 수 있는 유일한 교훈은 인류가 역사로부터 아무것도 배우지 않는 것이라던 헤겔의 냉소가 공연과 현실 사이를 서글프게 메운다. 히브리 노예들의 합창은 어느 한 민족의 노래가 아니다. 나라를 잃고, 고향을 잃고, 돌아갈 곳을 잃은 모든 이들의 노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