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어, 밀지 마세요!”
23일 오후 6시 31분쯤, 서울지하철 1·2호선 신도림역의 부평행 급행열차가 멈추는 승강장은 차에 타려는 이들과 안에서 밀리는 이들로 엉켜 소란스러웠다. 조금이라도 집에 일찍 가려는 승객들은 한 발이라도 걸치려 열차 안으로 몸을 욱여넣었고, 차에 타고 있던 승객들은 들어오는 사람들로 놀라 균형이라도 잡으려 애썼다.
수도권 직장인에게 1호선 퇴근길은 치열하다. 1분 1초라도 빨리 집에 가려 개찰구까지 뛰고, 혹시라도 타려는 차가 도착했는지 대합실의 행선 표시기를 확인한다. ‘당역 접근’ 혹은 ‘당역 도착’처럼 열차의 접근과 도착을 알리는 글자라도 보게 되면 다음 차까지 기다릴 시간이 아까워 타려는 이들의 발걸음은 종종걸음이다.
도시철도는 국내 교통수단 중에서 ‘정시성’이라는 장점이 있다. 정해진 시간에 도착하고 정해진 시간에 떠난다는 특성이다. 그래서 예측 가능하고, 목적지에 언제 도착할지 예상이 가능한 사실상의 유일한 교통수단이 된다. 하지만 ‘열차 시간표’라는 약속 앞에서 승객들은 의문과 피로를 동시에 느낄 때가 있다.
도시철도 운영 효율을 결정하는 핵심 요소 중 하나는 열차 시간표에 적힌 30초 내외의 정차 시간이다. 승객의 안전한 승하차와 출입문 개폐까지 포함한 공학적 설계의 산물이다. 하지만 실제 현장에서는 설계된 값이 무색할 정도로 매 역의 정차 시간은 고무줄처럼 늘어났다가 줄어들기를 반복하며 승객들의 체감 시간을 교란한다.
세계일보는 지난 20·23일 두 차례에 걸쳐 퇴근길 부평행 급행열차에 올라 정차 시간을 일일이 기록하며 승객들이 경험할 정차의 질감을 직접 확인했다. 도착 시간은 열차가 멈춘 후 출입문이 열리는 순간을 기준으로 했고, 출발 시간은 문이 완전히 닫힌 순간을 기록해 온전한 ‘정차 시간’을 체크하고자 했다. 열차 시간표는 코레일 홈페이지에서 받은 올해 2월28일자를 기준으로 했다.
23일 용산역에서 출발 예정(오후 6시17분)보다 3분12초 늦은 6시20분12초쯤 문을 닫고 출발한 부평행 급행열차는 시작부터 시간표를 크게 벗어났다. 지난 20일 측정에서 1분 늦게 출발했던 것과 비교하면 지연의 골이 훨씬 깊었다.
다음 역인 노량진역에 도착했을 때 시계는 오후 6시23분58초를 기록했다. 도착 예정 시간(오후 6시20분)보다 3분58초 늦었는데, 앞선 용산역에서 지연된 출발이 영향을 준 것으로 보였다. 지난 20일의 노량진역 도착 시간(오후 6시23분08초)보다도 지연 폭이 50초 더 컸다.
노량진역에서 열차는 24초간 정차했다. 대방역과 신길역에서도 각각 19초와 20초간 머물며 지연을 만회하려 했지만 이미 벌어진 4분에 가까운 격차를 줄이기엔 역부족이었다. 영등포역 정차 시간도 20초로 시간표상의 예정 정차 시간(30초)보다 짧았지만 환승객이 몰리는 신도림역에서 격차는 더 커졌다.
신도림역에서 열차는 34초 동안 멈췄다. 지난 20일의 40초 정차보다는 단축됐지만, 많은 승객이 몰렸고 안전 확보 등을 위한 정차로 예정 시각(오후 6시29분30초)보다 3분1초 늦은 6시32분31초에야 역을 떠날 수 있었다.
경인선과 경부선이 갈라지는 구로역은 반전의 구간이었다. 지난 20일에는 승무원 교대 등으로 1분59초 서 있었지만, 23일에는 예정 정차 시간(1분)보다 훨씬 짧은 40초 만에 문을 닫고 오후 6시34분47초에 출발하면서 누적 지연 시간을 2분10초대까지 줄였다.
개봉역에서 28초, 역곡역에서 37초간 정차하며 부천역에 도착한 열차는 28초간 정차하며 쌓인 지연 시간을 계속 줄여나갔다. 부평역 한 정거장 전인 송내역에서 열차는 29초간 머물렀다. 네 곳의 총 정차 시간은 122초로 역 한 곳당 정차는 30.5초를 기록해 예정 정차 시간(30초)을 거의 준수했다.
목적지인 부평역에 도착했을 때 시계는 열차 시간표상 도착 예정 시각인 오후 6시50분30초보다 2분26초 늦은 오후 6시52분56초를 가리켰다. 지난 20일의 도착 시간(오후 6시54분54초)보다는 개선됐지만, 출발역에서의 지연이 종착역까지 끈질기게 따라붙는 구조적 한계를 그대로 노출했다.
다만, 용산역에서 출발하는 열차의 시각은 반대로 인천 등지에서 용산으로 들어오는 열차의 도착 시각과 맞물려 돌아간다는 점을 고려할 필요가 있다. 상행선의 작은 지연이 회차 과정을 거쳐 하행선의 ‘지각 출발’로 이어지고, 다시 노선 전체의 정체를 부르는 악순환의 고리가 형성되는 셈이다. 그 속에는 승객들의 무리한 탑승 등 지연을 유발하는 시민의식의 문제 등도 복합적으로 얽혀 있다.
이처럼 역마다 발생하는 몇 초의 변수는 전체 운행에 나비효과처럼 작용해 퇴근 시간을 조금씩 늦추고 있었다. 문이 닫혔다가 다시 열리는 이른바 ‘재개폐’가 없었음에도 불구하고 정차 시간은 고무줄처럼 늘어났다가 줄어들기를 반복했다.
부평역에서 만난 한 승객은 “예정된 시간표만 잘 지키더라도 덜 불편할 것 같다”며 “다른 승객들도 같은 마음일 것”이라고 말했다. 코레일은 주요 역의 시간표와 출퇴근시간대 열차 간격을 조정하는 등 승객들의 불편을 줄이기 위해 지속 노력하고 있다. 하지만 두 차례의 실측 데이터는 설계와 현실의 간극을 메울 근본적인 대책이 시급함을 조용히 웅변하고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