설계사무소에서 10여년을 보낸 이력 탓일까. 건축물이나 도시공간을 볼 때마다 습관적으로 설계자가 형태를 만들어낸 이유를 추측해 본다. 대개 설계자들은 건축물이나 도시공간이 조성되는 대상지의 여건을 고려해 형태를 만든다. 그러다 보니 건축은 땅을 이길 수 없다는 통설이 사실처럼 받아들여지기도 한다.
국립과천과학관을 처음 봤을 때도 건축가가 비행기나 우주선을 닮은 형태로 과학관을 설계한 이유를 짐작해 봤다. 그리고 이곳에서도 건축물이 들어선 대지가 단서가 됐다. 건축가는 지하철 4호선 대공원역 6번 출구에서 오각형 형태의 대지로 들어오는 축을 설계의 시작점으로 설정하고 대지의 양쪽을 지나는 두 도로의 선형에 맞춰 건축물의 윤곽을 결정지었을 것이다.
최종적으로 건축가는 자신이 도출한 형태에 당위성을 부여하기 위해 평면적으로는 ‘성운(Nebula)’과 ‘눈(Eye)’, 입체적으로는 ‘비행기’와 ‘우주선’ 같은 직관적인 이미지를 덧입혔다. 국립과천과학관을 설계한 삼우설계는 “Touching the Universe”라는 개념과 함께 “건축에서 과학을 통해 우주로, 미래로 펼쳐지는 인류의 비전”을 표현하고자 했다.
국립과천과학관 역시 이러한 ‘턴키텍처’의 한계를 피하지 못했다. 기본설계와 비교했을 때 건축물의 전체 길이는 짧아졌고 외형은 뭉툭해졌다. 비행체에서 느껴지는 특유의 날렵함이나 긴장감도 사라졌다. 무엇보다 건축물에 진입하는 과정에서 방문자들이 느꼈을 공간적 경험이 평범해진 것이 컸다. 당초 계획은 대공원역에서 데크(Deck)로 된 과학광장을 거쳐 중앙홀 2층으로 진입하는 방식이었다. 관람객이 중앙홀에 들어서는 순간 위아래로 펼쳐지는 공간의 부피감을 마주하고, 중앙홀 1층에서 각 전시실로 흩어지는 역동적인 동선을 경험하게 하려는 의도였다. 동시에 데크 아래에는 주차장을 두어 천체투영관과 천문대가 있는 안쪽공간을 야외공간으로만 사용할 수 있도록 했다. 하지만 실시설계 때 공사비 절감을 이유로 데크를 없애고 주차공간을 야외공간 한쪽에 배치했다. 현재 중앙주차장과 서주차장이다. 중앙홀의 설계가 바뀌면서 방문자들에게 중앙홀은 위아래로 확장되며, 더 넓은 세상으로 나아가는 경험이 아니라 그저 천장만 높은 백화점식 로비가 되었다.
국립과천과학관 건립은 2001년 4월 21일, 제34회 과학의 날을 맞아 김대중 대통령이 직접 발표했다. 과학의 날이 4월 21일로 정해진 이유는 1967년에 과학기술 전담 부처인 ‘과학기술처’가 처음 발족한 날을 기념하기 위해서다. 그런데 우리나라 최초의 과학의 날인 ‘과학데이’는 그보다 33년 앞선 1934년 4월 19일이었다. 일제강점기, “조선 사람이 직접 물건을 만들고 과학을 알아야 독립을 할 수 있다”고 믿었던 과학자 김용관 선생이 진화론의 창시자 찰스 다윈의 기일을 ‘과학데이’로 정했다. 흥미로운 건 민간 주도의 ‘과학데이’가 정부 주도의 ‘과학의 날’로 바뀌면서 ‘기술’이 함께 등장했다는 점이다.
과학과 기술의 흐릿한 경계는 국립과천과학관을 둘러보는 내내 느껴진다. 하지만 “보편적인 진리나 법칙의 발견을 목적으로 한 체계적인 지식”이라는 의미의 ‘과학(科學)’을 ‘자연과학’으로 한정하더라도, 그 발현 방식이 기술만 있는 것은 아니다. 대표적으로 예술, 수학, 철학 그리고 건축이 과학을 드러내는 방식들이다.
현대로 접어들며 과학과 기술은 서로 다른 위상을 갖게 됐다. 미국의 저명한 과학 역사학자인 폴 포먼에 따르면, 근대(Modernity) 시기에 과학은 많은 경우 기술을 포함하고 있었다. 이에 반해, 기술은 응용과학 정도로 여겨졌다. 하지만 포스트 모더니티(Post-Modernity) 시기로 넘어오면서 둘의 위상은 역전되어, 과학은 오직 기술적 성취나 경제적 효용을 위한 도구로 전락했다. 폴 포먼의 관점에서 보면, 비행체를 닮은 국립과천과학관도 1980년대 이후 기술의 하부 구조로 포섭된 과학의 자화상일지도 모른다.
더불어 설계자가 국립과천과학관을 비행체에 빗대어 설명하는 데에는 건축을 과학의 발현으로 보지 않는 관점도 깔려 있다. 영국의 건축 이론가인 에이드리언 포티는 자신의 책 ‘건축을 말한다(Words and Buildings)’에서 건축이 과학과 별개의 분야가 되면서, 역설적으로 건축을 과학처럼 보이게 하려는 시도가 은유를 통해 나타났다고 봤다. 그는 이를 ‘과학 은유’로 정의했는데, 주목할 점은 ‘과학 은유’가 과학과 건축을 서로 구분하지 않았던 18세기 후반 이전에는 존재하지 않았다는 사실이다.
과학은 단순히 사실의 나열이자 지식의 축적에 머물지 않는다. 그것은 세계를 해석하는 수많은 방법 중 어떤 문제에도 적용할 수 있는 ‘방법의 방법’이다. 결국, 세계를 과학적으로 인식한다는 것은 어떤 현상이나 사태를 관성적으로 수용하기보다 “이것은 진리인가?”라는 근원적인 의문을 갖는 태도에서 시작된다. 이는 해석의 문제에 초점을 맞추거나 “이것이 내게 맞는 말인가?”를 묻는 인문학적 탐구자와 과학자를 구분 짓는 가장 결정적인 지점이다.
국립과천과학관의 외형이 비행체라는 ‘과학 은유’를 차용한 것은 어쩌면 시대적 상황의 투영이다. 과학이 기술에 포섭되고, 오직 기술만이 과학의 유일한 발현 경로라고 인식되는 현실에서 국립과천과학관이 비행체가 되어야 하는 건 피할 수 없는 선택이었을지도 모른다.
그럼에도 우리가 이 거대한 비행체 안에서 진짜로 목격해야 하는 것은 화려한 기술의 결과물이 아니다. 합리적이고 실험적이며 회의적인 사고방식, 그리고 대상을 낯설게 바라보며 ‘왜?’라는 질문을 멈추지 않는 대담한 과학적 태도다. 우리는 정밀과학으로 가득한 전시실에서, 바로 이 ‘과학하는 마음’을 마주해야 한다.
방승환 도시건축작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