봄날의 산책은 느슨한 걸음으로 시작됐다. 개와 나란히 걷는 길 위로 벚꽃잎이 흠뻑 쏟아져 있었다. 평온한 오후였고, 날이 좋아서인지 산책 나온 사람들로 공원이 가득했다. 바람에 날린 꽃잎들이 덮개가 열린 유아차 위로, 주인과 함께 걷는 크고 작은 개들 위로 떨어졌다. 개 한 마리가 주위를 빙빙 돌다 내 개와 코끝을 마주했다. 손댈 수 없게 사납던 나의 개는 열 살이 넘어가면서 다른 개들에게 비로소 너그러워진 참이었다. 어린 개와 마주치면 잠시 숨을 낮추고 상대가 호들갑을 떨도록 내버려두었다.
개들이 서로의 냄새를 맡는 동안 나는 상대 견주와 어색한 사이에 으레 할 법한 대화를 이어갔다. 얘는 아직 애기죠? 정말 귀엽게 생겼네요. 이제 막 한 살 됐어요. 걔는 몇 살이에요? 열 살이요. 어머, 어쩜 그렇게 동안이에요? 얼굴이 살짝 간지러워지던 찰나였다. 길 끝에 나타난, 보행보조기를 밀고 있는 노인과 그의 곁에 붙어선 여자가 제법 빠른 속도로 다가오고 있다는 느낌이 들었다. 착각인지 아닌지 가늠해 보기도 전에 노인이 보조기를 앞으로 쭉 내밀며 돌진했다. 개들을 향해 일부러 달려드는 건가 싶을 만큼 거침없는 속도였다. 어린 개는 잽싸게 피했지만 그들에게 등을 돌리고 있던 내 개는 보조기 바퀴에 발이 깔리고 말았다. 작은 바퀴긴 했지만 처음 겪는 일에 나는 그야말로 혼비백산했다.
길이 저렇게 넓은데 굳이 이쪽으로 온다고? 개의 발과 발톱 사이를 꼼꼼히 살펴본 뒤 고개를 들어보니 노인과 여자는 이미 사라지고 없었다. 나는 분한 마음에 씨근대며, 혹여 개가 다리를 절룩거릴까 봐 불안해하며 산책을 이어갔다. 평온함이 사라지자 길에 쌓인 꽃잎들이 미끄러지기 딱 좋은 부산물로만 보였다. 공원을 절반도 돌지 못하고 나는 몸을 돌려 집으로 향했다. 그런데 공원 입구 쪽으로 나와 보니 정자에 보조기를 세워 두고 앉아 있는 노인과 여자가 눈에 띄었다. 나를 발견한 여자가 내게로 뛰어왔다.
안보윤 소설가